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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서독 시민과 동등 대우 봇물 트다 ‘동독 대탈출’

올해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이 3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최근 해외 거주 북한 고위직들이 연이어 탈북하면서 탈북민 정책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10월 11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관계부처들은 긴밀하게 협업해서 탈북민 정착을 위한 제도를 재점검하고 자유와 인권을 찾아 올 북한 주민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체계와 역량을 조속히 갖춰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 국회와 통일부도 탈북민 정착 지원사업 개선을 위한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탈동민’ 정책이 통일 과정에서 얼마나 긍정적으로 기여했는지 독일의 교훈을 살펴보고자 한다.

1990년 10월 3일 이뤄진 동서독 통일은 단순한 흡수통일로 볼 수 없다. 독일 통일은 군사적 힘의 우위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1990년 3월 18일 동독에서 실시된 동독 주민들의 자유선거를 통해 이룩한 것이다. 이러한 동독 주민들의 선택이 가능했던 중요 요인 중 하나가 서독의 탈동민 정책이었다.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서독의 동독 주민 및 탈동민 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우리와 유사한 혈통적 민족주의다. 1949년 5월 23일 제정된 서독 헌법인 기본법 제116조에는 "독일인은 독일 국적을 소유하거나 독일 혈통의 난민 또는 박해받는 자로서 1937년 12월 31일 당시 독일 영토에 들어오는 것이 허용된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분단 이전 독일제국의 존속과 혈통주의 국적 원칙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독 정부의 국적정책은 독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동독지역 주민들은 동독 시민권뿐 아니라 서독 국적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혈통주의에 기반을 둔 서독 정부는 동유럽 사회주의 지역에서 오는 독일 혈통자들을 ‘이민자(Aussiedler)’로 칭하고, 동독에서 탈출해 서독으로 온 사람들의 국내 이주를 의미하는 ‘이주자(U··bersiedler)’로 구분해 정책을 펼쳤다. 인도적 차원뿐 아니라 혈통주의에 기반을 두고 일부만 독일인의 피를 가져도 독일인으로 인정한 동족 정책 덕분에 동유럽 거주 독일 출신들 상당수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서독으로 이주했다.

둘째, 긴급 수용 이후 서독 시민과 동등하게 대우한 탈동민 정책이다. 탈동민들은 일차적으로 외국 주재 서독 기관이나 서베를린의 마리엔펠데(Marienfelde)와 서독 하겐 지역에 있던 긴급수용소(Notaufnahmelager)라는 중앙수용소에서 일차적으로 등록을 한다. 이곳에서 동독 체제에 대한 불만 등에 따른 정치적 탄압 때문에 탈출했는지 여부를 심의한다. 이후 탈동민으로 인정되면 본인의 의사를 물어 친척이나 지인이 있는 경우 그들이 근거리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친척·지인이 없는 경우 각 주의 규모와 인구 균형 등을 고려해 전국적으로 분산 배치했다. 지역 배치 후 이들은 서독의 우월한 복지 시스템에 바로 편재되어 별도의 재교육이나 준비기간 없이 취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독 주민들과 동등한 국가적, 사회적 혜택을 누리면서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젊은 세대의 연이은 탈출로 동독 사회와 경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독 정부가 비밀경찰과 당원들을 동원해 동독 주민들을 감시했으나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급기야 동독 정부는 1961년 베를린 장벽을 세운다. 장벽 설치 후에도 장벽을 넘어 탈출하는 흐름이 지속됐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전까지 탈동민 규모는 당시 동독 총인구의 6분의 1에 해당해 약 350만 명을 넘어섰다.

셋째,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한 동독의 정치범 석방(Freikauf) 사업이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구축된 후 서독으로의 탈출을 시도하다 검거된 동독인들은 체제 반역자로 분류되어 최대 징역25년형까지 선고받았다. 서독 정부는 1963년 이래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은밀한 작업을 진행한다. 이들의 석방과 서독으로의 이주를 위해 동서독 변호사를 통해 동독 고위층과 비밀협상을 했다. 초기에는 그 대가로 현금을 지불하다 이후 동독이 원하는 현물 지불을 하고 석방된 정치범을 서독으로 이송했다. 이 정치범 석방 협상으로 통일되기 직전까지 동독 감옥에서 석방된 사람은 3만4000여 명이다.

서독의 이 ‘은밀한 정책’은 동독 엘리트들 사이에 조용히 퍼졌다. 이 과정에서 서독이 ‘우리를 지켜주는 대안체제’라는 신뢰가 확산됐다. 그리고 동독 지역에서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민주화 투쟁이 조직화될 수 있게 했다. ‘하나의 민족이자 대안체제’로서 서독체제가 존재했기에 동독 엘리트와 젊은 세대가 동독 지역을 떠나는 것을 넘어서, 동독 내부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저항세력을 조직하고 민주화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다.

 

박영자 기고인

 

글·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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