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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힙합천하, 솔직하고 당당한 음악으로 전성시대

"We are not a team, this is competition.(우린 팀이 아니야, 이건 경쟁이야.)"

"겸손이 미덕이라 여기는 대한민국에 낯선 모습이 방송 전파를 탔다. 출연자들은 당당히 자신이 최고라고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에게 따가운 일침을 가한다. 이런 소위 '쎈' 언니, 오빠들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환호한다. 2015년 힙합이 미디어를 점령하면서 생겨난 광경이다.

올해 한국은 힙합 르네상스를 맞았다. 엠넷(Mnet)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는 시즌4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했고, 올해 처음 시작한 여성 래퍼 경쟁 프로그램인 '언프리티랩스타'는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을 반영해 시즌1에 이어 하반기에 시즌2를 연달아 방영했다.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 가요제에서도 정준하가 만든 중독성 있는 랩이 한동안 네티즌의 유행어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힙합의 인기를 여실히 보여줬다.

 

쇼미더머니4

▷ 올해 시즌4를 방영하며 힙합 장르의 인기를 이어간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4’.

 

대중성과 실력 모두 갖춘 래퍼의 등장
힙합 문화의 솔직함과 신선함에 열광

음원 차트를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11월 중순 주요 음원 사이트를 보면 산이&매드클라운, 지코, 다이나믹듀오, 아이콘 등이 발표한 힙합곡이 10위권 이내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힙합이 상위권 성적표를 받으며 음악계의 우등생으로 변모한 것이다.

연봉 10억 원 정도를 버는 래퍼 도끼는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집인 서울의 228㎡ 규모의 펜트하우스를 공개했다. 최근 힙합 신곡을 낸 박재범은 노래 가사에서 "더 콰이엇(래퍼)과 자신의 연봉을 합하면 20억은 나오겠지"라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힙합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힙합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90년대다.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힙합을 선보였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드렁큰타이거, 윤미래, 에픽하이, 다이나믹듀오 등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갖춘 실력 있는 힙합가수들이 등장해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입지를 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 힙합은 소수 팬만이 즐기는 마니아 음악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댄스 음악이 큰 인기를 끌던 그 당시, 댄스그룹에 소속된 래퍼의 국어책 읽는 듯한 어색한 랩은 대중의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이렇듯 예전에는 실력이 좋으면 대중적이지 않고, 대중적이면 실력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힙합가수는 그 둘을 모두 갖췄다. 아이돌 래퍼인 빅뱅의 지디, 블락비의 지코, 아이콘의 바비 등은 자신만의 개성 있는 랩을 구사하며 아이돌 래퍼에 대한 편견을 깼다.

 

언프리티랩스타2 출연가수

▷ 최근 힙합 가수들은 인기 대중가수들과 협업을 통해 가요와의 경계를 허물며 인기를 끌고 있다. 힙합 음악 프로그램 ‘언프리티랩스타2’ 출연 가수들의 공연 모습.

 

또한 '언더(홍대입구 등의 음악클럽에서 하는 공연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연예계로 진출한 버벌진트, 산이, 스윙스, 도끼 등의 래퍼들은 인기 대중가수들과 협업을 하며 대중적인 힙합 곡을 선보였다. 이러면서 힙합은 가요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대중에게 거부감 없이 스며들었다.

힙합이 신선함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파고든 점도 주목할 만하다. 큰 인기를 끈 '슈퍼스타K' 이후 모든 방송사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가요 프로그램이 속속 나왔다. 하지만 가요의 홍수 속에서 시청자들은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싶어 했다. 이 가운데 힙합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힙합가수

▷ 최근 힙합이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으면서 인기 래퍼들도 대거 탄생했다. 왼쪽부터 래퍼 도끼, 더콰이엇, 잔다크, 유빈.

 

헝그리 정신으로 성공 이룬 래퍼들
삼포세대에게 희망의 메시지 되기도

또 힙합 프로그램에 출연한 참가자들은 '겸손이 미덕'이라는 관습을 뒤엎었다. 자신이 잘하는 것에 대해 관객에게 당당히 어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참가자가 있으면 '디스랩(상대방의 허물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가사를 담은 랩)'으로 따끔한 한마디를 던진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느꼈다. 누리꾼들은 "우리 부장님에게도 한마디 해줬으면 좋겠다", "쎈 언니 최고" 등의 댓글을 남기며 뜨거운 호응을 보였다.

치열한 경쟁 속엔 감동도 있다. 힙합가수들의 고난을 이겨낸 성공 스토리는 우리의 눈시울을 붉힌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꿈을 향해 오롯이 노력한 결과 대형기획사의 힙합 아이돌이 된 쇼미더머니3 우승자 바비, 언더에서 유명했지만 생활고에 시달려 취업을 했다가 회사에 사표를 내고 다시 꿈을 위해 도전해 최종 우승한 쇼미더머니4 베이식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헝그리 정신'으로 시작해 자신의 노력만으로 성공을 이뤄낸 래퍼들의 이야기는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이르는 말) 등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과 위안이 되어준다. 쇼미더머니3 우승자 바비는 무대에서 "엄마 집 조금 있으면 사드릴 테니 미리 짐 싸놓으세요"라는 소감을 전해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하지만 급격한 고도성장의 그늘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힙합이 남을 무조건적으로 욕하고 선정적인 것을 표현해도 된다는 식으로 변질되는 것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이에 대해 힙합그룹 블랙트리 소속 래퍼 잔다크는 "힙합은 삶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해요. 삶에는 좋은 것도 있고 싫은 것도 있잖아요. 싫은 부분을 꼬집어 이야기하는 디스랩은 힙합의 일부분인데 요즘 디스랩이 힙합의 대부분인 양 포장이 돼 아쉬워요. 래퍼들이 이런 부분을 경계하고 중심이 잡힌 가사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힙합은 이제 대중문화로서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삼포세대를 포함한 지금의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의 한마디를 전해주는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인정받았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래퍼 잔다크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대중가요 상위권은 록발라드와 댄스가 휩쓸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지금은 힙합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앞으로 유행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명곡은 시간이 지나도 대중의 가슴속에 남아 있잖아요. 힙합도 지금의 기세라면 좋은 음악이 많이 나와서 대중과 함께하지 않을까요. 저도 그런 음악을 만들 거고요"라며 힙합에 대한 기대와 포부를 밝혔다.

 

· 박샛별 (위클리 공감 기자)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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