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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무수한 점 꾹꾹 예술을 환기하다' 故 김환기 화백

김환기(1913~1974)의 1970년 작 노란색 전면점화 ‘12-V-70 #172’가 약 63억3000만 원에 낙찰돼 지난 11월 말 홍콩에서 열린 경매에서 약 6개월 만에 작가 자체 최고가뿐 아니라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최고가 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12-V-70 #172’는 김환기가 1970년 뉴욕에서 그린 것으로 가로173㎝, 세로 236㎝의 대형작품이다. 김환기의 상징색인 푸른색이 아닌 노란색 배경에 점을 그린 전면점화로 그 희소성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1970년 작 노란색 전면점화 국내 미술 경매 최고가 기록
푸른색 아닌 노란색 배경의 희소성으로 주목

2015년 10월에는 김환기의 전면점화 ‘19-Ⅶ-71 #209’가 약 47억2100만 원에 낙찰되며 45억2000만 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빨래터’가 가진 국내 경매 최고가 기록을 약 9년 만에 경신했다. 뒤이어 2016년 4월 ‘무제’(약 48억7000만원)와 6월 ‘무제 27-Ⅶ-72 #228’(약 54억 원)가 경매에서 연이어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로써 김환기의 작품은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1~5위를 모두 차지하게 됐고, 명실공히 ‘환기 시대’를 맞이했다. 이 다섯 작품의 낙찰 총액만 250억 원이 넘는다.

한국의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한국적인 자연미를 가장 아름다운 추상으로 표현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는 한국 회화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1950년대 파리와 1960년대 뉴욕 생활을 통해 접한 서양의 사조를 접목해 자신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예술세계를 세련되고 승화된 조형언어로 창조했다.

 

김환기 화백

▶1971년 뉴욕 아틀리에서의 김환기 화백의 모습.

 

김환기의 작업을 시기별로 나눠보면 1933년부터 1937년까지의 일본 유학 시기, 1937년부터 1956년까지의 서울 시기, 1956년부터 1959년까지의 파리 시기, 1959년부터 1963년까지의 서울 시기와 1964년부터 작고한 1974년까지의 뉴욕 시기로 나뉜다.

1933년 도쿄로 떠난 김환기는 1937년 도쿄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 시기의 작품은 추상화를 지향했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모티프와 구상적인 형태가 남아 있었다. 1937년 귀국해 1940년 서울에서 두 번째의 개인전을 연 이후 그의 작품 활동은 뜸했지만, 1948년 이후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해 1956년 파리로 떠날 때까지 적극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양식과 회화세계를 형성해간다. 파리 시기를 포함하는 1950년대의 작품 활동은 ‘한국적 미’를 추구하고 발견한 과정으로 달, 구름, 나무, 매화, 사슴과 학, 달 항아리를 주요 소재로 삼는다. 특히 파리에 머무는 동안은 고국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과 함께 한국의 미가 농축돼 전통과 현대적 표현 사이의 조화를 모색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지며, 서구의 작가들과 구별되는 작품 세계를 창조하려 노력했다.

김환기는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는데, 1970년에 돌아온다는 그의 편지와는 달리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뉴욕에서 작고했다.

1964년 뉴욕에 정착한 후 그는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게 되지만, 인간과 자연의 교감 그리고 화합이라는 동양적인 자연관을 지키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갔다. 그가 즐겨 그렸던 소재의 형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단순화되고 비구상적으로 바뀌어 1970년대 접어들면 오로지 단색의 색, 점 그리고 점선에 의한 전면점화 작품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적 자연미를 가장 아름다운 추상으로 표현
한국의 정서, 동양적 은유, 서구적 미학 절묘한 조화

"내 작품은 공간의 세계란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 가지를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어쩌면 내 맘속을 잘 말해주는 것일까."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江山)."-김환기의 일기 중에서 국내 경매 사상 최고가를 잇따라 경신한 김환기의 작품 5점도 모두 1970년대 뉴욕에서 제작된 전면점화 작품이다. 김환기 작품세계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전면점화는 모던하면서도 한국의 정서와 동양적 은유 그리고 서구적 미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 보편적인 조형미로 말미암아 해외시장에서도 글로벌한 공감대와 감동을 형성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다. 또 최근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저금리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술품이 안전한 대체투자처로 인식돼 여유자금이 유입됨으로써 고가 미술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현재의 김환기 열풍에 일조했다.

 

1위

▶‘12-Ⅴ-70 #172’(1970).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

 

2위

▶무제 27-Ⅶ-72 #228’(1972).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 ‘

 

3위

▶‘무제’(1970).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

 

4위

▶‘19-Ⅶ-71 #209’(1971).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4위를 차지하고 있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

 

5위

▶‘무제 3-V-71 #203’(1971, 45억6240만 원).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5위를 차지하고 있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 ‘

 

한국의 대표 추상화가이지만, 항상 전통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김환기. 돌아가지 못하는 고국, 항상 그리워한 고향의 푸른 바다와 청송, 거기에 두고 온 친구와 가족. 그는 이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무수한 점들을 찍어나갔다. 그리움이 무수한 점이 되어 먹처럼 번져나가는 김환기의 작품은 머나먼 뉴욕에서 그가 고국과 고향, 가족, 친구를 그려낸 애절한 독백이다.

 

세계시장에서 한국 미술품의 위상 10위전 급부상

세계 미술시장은 2011년 이후 처음으로 하락세를 기록했다. 세계 경제의 부진을 비롯해 중국의 경제위기로2014년과 비교하면 약 7% 하락해 2015년 638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5년간 세계 미술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던 중국이 그 자리를 미국에 내주며 2위로 떨어졌고 영국은 3위를 지켰다. 특히 중국은 경제의 불안정성과 정부의 미술품 거래 제재가 강화되며 2014년 대비 27%나 하락했다.

이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이머징 시장, 즉 제3세계 미술시장의 성장이다. 2015년 한국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세계 10위권에 드는 기록을 세웠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에 불과하다. 미술시장 분석기관 아트프라이스는 "한국의 10위권 진입은 지난해 세계 경매시장에서 일어난 가장 놀라운 변화"라며 "한국은 네덜란드, 일본, 벨기에를 제치고 시장의 10대 메이저가 됐다"고 평가했다.

세계시장에서 한국이 부상한 이유로는 한국 미술품의 위상이 높아진 점을 들 수 있다. 국내 양대 경매회사인 케이옥션과 서울옥션이 국제무대 홍콩에서 기록적인 성과를 거뒀으며, 김환기를 비롯해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등 한국의 대표작가들이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의 작품은 국내 컬렉터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글로벌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국내 미술시장의 성장과 매출 상승을 이끌었다. 이제 한국의 미술품은 경매를 비롯해 세계 주요 아트페어, 비엔날레에서 호평을 받는 가운데 전 세계 미술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거두며 미술시장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 손이천 ( 케이옥션 경마사 )/ 사진 제공 · 재)환기재단, 환기미술관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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