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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해마다 가을이 되면 고은 시인은 난감해진다. 노벨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자택에 기자들이 몰려와 인터뷰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벌써 10년 넘게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어느 해에는 대형 방송 중계차가 집 앞에 진을 치며 법석을 떨기도 했다. 여든이 넘은 노(老)시인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 민망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년에는 제발 찾아오지 마시라"고 하소연했다.

언론에서는 '한국 문인은 언제 노벨문학상을 받나?'라는 상투적인 내용을 보도한다. 번역을 잘해야 한다는 둥, 그러려면 전문 번역인을 양성해야 한다는 둥,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도 번역해야 한다는 둥 대책이 제시되곤 한다.

프랑스어권에 한국 문학을 보급하는 일에 앞장선 위베르 니센 교수가 방한했을 때 필자는 한국 문인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프랑스 악트 쉬드 출판사 사장을 겸임하며 고은, 이청준, 황석영, 이문열 등 한국 문인들의 작품을 프랑스어판으로 출판한 '지한파(知韓派)' 인사다. 자주 받은 질문이었는지 그는 망설임 없이 "해당 국가의 문학 열기가 중요한 요인이므로 한국에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대답했다.

니센 교수의 분석대로라면 한국 문인의 수상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문학의 열기는커녕 '문학의 시대는 갔다'라는 담론이 공공연히 나돌 지경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서점에 가보라. 문학 매장이 점점 줄어든다. 한국 소설보다 일본 소설 코너가 더 넓은 서점도 적지 않다. 한국 소설가들은 맥을 못 춘다.


노벨문학상

 


미국이나 유럽의 대형 서점에는 대체로 입구 부근의 가장 좋은 목에 '픽션' 코너가 있다. 고전, 신간, 공상과학(SF), 추리 등 장르별로 다양한 소설들을 비치해놓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공쿠르상, 르노도상 수상작은 여전히 주목의 대상이어서 지식인 모임에서는 이 책을 읽지 않고는 대화에 끼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소설이 조롱당하고 있다. 엉뚱한 이야기를 해대는 상대에게 "지금 소설 쓰느냐?"라고 핀잔을 준다. 소설이 거짓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것이다. 소설은 남을 속이는 엉터리 거짓말에 불과한가? 소설에 대한 학문적 정의는 '가공(架空)의 진실'이다. 지어낸 허구이긴 하지만 진실을 추구하는 스토리라는 것이다.

역사 연구나 언론 보도가 찾는 가치는 '사실'이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사실대로 기술하고 그 의미를 탐구하는 영역이다. 소설은 사실은 아니지만(실화를 바탕으로 해도 작가가 문학 속성에 맞게 변형 창작) 인간의 내면세계를 밝히면서 진실을 그린 작품이다. 이렇게 소설의 가치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에 노벨문학상이 주어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 아닐까.

사회 지도층 인사가 한국 작가 작품을 거의 읽지 않고 문인이 변방 지식인으로 밀려난 '문학 황무지'에서 노벨상이라는 꽃은 언감생심 아니랴. 작가들도 독자와 소통하는 폭을 넓혀 동시대인의 고민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공감하는 작품을 써야 할 것이다.

노벨문학상은 세속적인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문화 수준의 상징이다. 그래서 한국 문인이 이 상을 받는 날을 애타게 기다린다.

 

· 고승철(소설가) 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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