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연초부터 수출에 비상이 걸려 정부는 수출 회복과 투자 활성화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했다. 대통령 주재로 무역투자진흥회의가 열려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 미래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투자활성화 대책과 신성장정책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수출 회복을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내수시장이 협소하고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수출을 통해 외화를 획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성장을 모색해왔다.

▶1960년대부터 정부는 입체적인 차원에서 수출산업 기반을 조성해왔다. 사진은 항공기에 수출품을 싣는 모습.
한국 수출의 역사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64년에 수출 1억 달러를 처음으로 달성한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개발을 통한 빈곤 퇴치' 정책으로 1960년대에 연평균 8%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962년에는 1차산업 제품의 수출 비중이 73%를 차지했지만 그 후 수출 진흥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공산품 수출 비중이 1965년부터 1차산업 제품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에는 '수출 진흥 확대회의 박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서(동아일보 1967년 8월 21일자)' 같은 기사가 자주 등장했다. 당시 수출 주력 품목은 생사, 중석, 선어, 합판, 면직물, 신발류 같은 노동집약적 경공업 제품이었다.
1970년대는 수출 진흥정책이 더욱 강력히 추진되고 중화학공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개편됐다. 중화학공업에 역점을 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1972∼1977) 동안 자본 및 기술집약적인 비금속 광물제품, 철강제품, 기계류, 화학제품의 수출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수출품목의 급속한 변화를 바탕으로 5년 동안 48.5%의 수출 증가율을 나타냈다. 이 시기에는 섬유, 합판, 가발, 철광석, 전자제품 같은 노동집약적 경공업 제품이 주요 수출품목이었다.
1970년대는 더 많은 수출이 국가 경제정책의 지상 과제였지만 그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신문에서는 수출정책을 양 위주에서 질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며 '수출정책의 질적 전환'을 촉구하는 사설(동아일보 1971년 10월 26일자)을 발표하기도 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10년 동안 수출액은 21배의 초고속 신장세를 나타냈고, 1977년에는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 이는 1964년 1억 달러 수출 돌파에 이어 13년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1980년대는 개방화가 이뤄진 시기였다. 이른바 '3저(低) 효과'를 바탕으로 호황이 장기화됐고 수출 증대가 지속됐다. 정부의 수출 진흥정책이 계속돼 1986년에는 역사상 최초로 31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이 무렵의 수출 주력 품목은 의류, 철강판, 신발, 선박, 음향기기였다.
이런 성과에 따라 우리 국민은 자신감을 가지게 됐고 그 여세를 몰아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1970년대에 비해 수출액을 2.1배나 높게 달성했다. 정부는 기업의 수출 촉진을 위해 세금 감면 혜택, 융자 우대, 수출자유지역 설치, 수출공업단지 개발 같은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출에 의한 고속 성장은 달콤한 과일이었지만 그 과일이 열리도록 노동자들의 과도한 희생을 요구함으로써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0년대 접어들어 우리나라는 수출 시련기에 직면해야 했다.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항의에 직면해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글로벌 시장경제 체제가 구축되면서 해외에서 직접 생산하는 자본재 수출 방향으로 수출정책에 엄청난 변화가 이뤄졌다.
국내에서 생산해 외국으로 수출하던 패턴이 바뀌어 중국이나 베트남에 대한 직접 투자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1997년에는 외환위기로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가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한 끝에 2000년부터 이전 단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수출산업의 리더는 반도체였다. 컴퓨터, 자동차, 선박도 각각 100억 달러 넘게 수출해 저력을 과시했으며, 석유제품, 철강판, 합성수지, 영상기기 등도 해마다 50% 이상의 수출 신장세를 유지하며 우리나라의 10대 수출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2010년 이후에는 반도체, 선박, 자동차, 디스플레이, 석유제품이 수출 주력 상품이 되었다.

대통령이 직접 무역투자진흥회의 주재
수출 통해 국민 자신감, 그 영광 다시 한 번
그동안 수출을 진흥하기 위해 한국수출입은행, 수출신용정보센터, 한국수출보험공사 같은 기관이 설립됐다. 또한 금융 지원, 조세 지원, 외환관리 지원, 무역정책 지원 같은 각종 수출 지원정책은 수출을 촉진하는 밑거름이 됐으며, 특히 수출보조금(Export Subsidy) 지원정책은 수출 관련 기업에 큰 도움이 됐다.
한 나라의 수출이 증진되려면 수출지향적인 정책체계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정부는 입체적인 차원에서 수출산업의 기반을 조성해온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발표(2016년 2월 18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5년 수출액은 5269억 달러로 주요 71개국 중 처음으로 6위에 올랐다. 1964년에 수출 1억 달러를 처음으로 달성했으니 51년 만에 5269배나 성장한 것이다. 실로 놀라울 정도다.
이제 앞으로가 문제다. 지난 2013년 5월 첫 회의 이후 무역투자진흥회의가 수차례 열렸다.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며 무역투자와 관련된 기업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기원전 3세기 전에 편찬된 중국의 〈관자(管子)〉에 기원전 7세기 때 고조선이 제(齊)나라와 무역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한시대에는 대외 무역이 한층 더 발전했다고 한다. 현재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거나 체결을 앞두고 있다. 저 유구한 무역과 수출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는 수출전략의 새로운 출구를 반드시 개척해나갈 것이다.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 사진 · 동아DB 2016.03.07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