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리 규윤이는 개만큼이나 눈을 좋아하는 것 같구나." 초등학생 손자와 함께 사는 J 할머니는 눈만 오면 '날뛰는' 손자를 흐뭇하게 지켜보곤 한다. "지 아비도 어렸을 때 눈이 오면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는데, 부전자전인가보다."
크게 보면 강우의 일종이지만, 형태를 달리하는 강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개도 마찬가지여서 비가 쏟아지면 몸을 피하지만 눈이 펑펑 내리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문제일 수도 있는데, 눈을 보고 반색하는 건 개와 대다수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 하얀 눈이 오면 개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고양이나 소, 돼지, 닭 등과 달리 왜 사람과 개는 하얀 눈을 좋아할까?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면 좋지 않나요?", "소록소록 내리든, 펑펑 쏟아지든 그 나름 아름답잖아요?" 눈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 어른, 남녀를 가리지 않고 대체로 비슷하지만 '왜?'에 대한 근본적인 답으로는 약하다.
개의 행동 등을 집중적으로 관찰해온 서구의 동물학자와 수의사들도 이런저런 추정만 할 뿐 똑 부러진 답을 내놓지 못했다. 서구의 과학자나 전문가들은 ▶바뀐 환경에 대한 설렘 ▶더운 날씨보다 추운 날씨에 대한 선호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 등이 눈에 대한 개들의 '환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서구 과학자들의 추론 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먹이가 되는 동물보다는 대체로 포식동물이 눈이 오는 걸 반긴다는 것이다. 늑대나 북극곰이 대표적인 예. 북극곰의 경우 얼음이 얼고 눈이 내려야 물개 등을 잡아먹기 쉽다. 요즘같이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해 결빙 시간이 줄어들면 사냥 시간도 그만큼 짧아지는 탓에 지구온난화는 곰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된다.
북극곰과 비슷한 맥락에서 눈 덮인 산야는 늑대들에게 배를 불릴 수 있는 '향연의 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여름철에는 늑대가 우거진 숲 속에 은신한 사슴 등을 공격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추격전을 벌여도 달리기 실력에서 밀려 종종 허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눈이 수북이 쌓이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슴 같은 동물들은 상대적으로 날렵한 늑대의 추적을 따돌리기 어렵다.
한마디로 눈이 쌓이는 겨울은 먹이동물에게 몸을 숨기기도, 도망을 치기에도 불리한 환경이다. 인간 또한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점을 감안하면 눈이 달갑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1960, 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겨울이면 꿩이나 노루 등을 사냥하며 재미를 좇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수렵으로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인류의 조상이나 겨울철이 배를 불리기 가장 좋은 개과 동물인 늑대 등에게는 흰 눈이 하나의 '청신호'였을 수도 있다. 수천 년 정도의 세월만으로는 유전자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고, 그렇다면 사람과 개는 여전히 눈을 좋아하는 조상들의 DNA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인류는 개를 길들이기 시작했던 아주 초창기부터 개와 함께 흰 눈밭에서 합동 사냥작전을 펼쳤을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이나 개도 학습의 동물이어서 마냥 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잦은 폭설로 악명 높은 미국 북동부 지역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질리게 눈이 많이 오고 겨울이 긴 탓"이라는 얘기도 있다. 또 알래스카 등 한대지방에서 썰매를 끄는 개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개들은 어린 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을 덜 좋아하는 것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글 · 김창엽 (자유기고가)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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