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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프론텍 ‘냉간단조 오퍼레이터’ 김미정 씨

경기 시흥시 정왕동. 이곳은 ‘공단대로’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공단의 특성상 남성 근로자가 월등히 많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다고 하지만 사무직이 아닌 현장직 여성 작업자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예외는 있게 마련.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 프론텍의 단조공장에서는 이례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작업복을 입고 면장갑을 낀 여성 작업자들이 ‘냉간단조 오퍼레이팅’ 업무를 능숙하게 해낸다. 냉간단조는 금속재를 실온에서 형(形)으로 압축해 부품을 성형하는 가공법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 근로자 대부분이 ‘경력단절여성’이라는 사실이다. 프론텍 단조공장에서 만난 김미정(36) 씨도 그중 한 명. 2002년부터 2011년까지 9년 동안 의류공장에서 원단의 품질을 검사하다 결혼 후 임신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출산휴가를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근속 10년을 코앞에 두고 사회생활을 정리해야 했다.

“어려서부터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결혼 후에도 일을 하려고 했는데 임신과 출산이 반복됐고, 육아에 발목을 잡히면서 집에 머물렀죠. 5년간 육아와 살림만 했더니 답답하고 지치더군요. 남편의 홑벌이만으로는 네 식구 생활비를 대기에 버겁기도 했고…. 마침 지난해부터 첫째(6)와 둘째(3)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돼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9년간 의류공장 근무 경험 살려 자동차 부품 제조기업 입사
아내•엄마•직장인 ‘1인 3역’ 소화, “일하며 가정 지키는 게 꿈”

경력단절여성의 일자리 찾기 과정은 험난했다. 높은 급여를 포기하는 대신 두 가지 조건을 고수했다. 일단 직장과 집의 거리가 가까워야 했다. 오후 5시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때문에 김 씨의 퇴근이 무조건 이보다 빨라야 했다. 대부분의 직장 근무시간이 오전 9시~오후 6시인 점을 감안하면 그에게 맞는 일터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현실의 높은 벽을 체감할 즈음, 지인이 하루 5시간만 일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알려줬다. 김 씨는 여성을 위한 원스톱 취업 전문기관인 시흥여성새일지원본부의 문을 두드렸다. 상담사는 9년간 의류공장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현장직 일자리를 찾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마침 프론텍에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외국인 근로자와 책임감이 부족한 일용직 근로자를 대체할 인력으로 여성 근로자를 찾고 있었다. 김 씨는 2015년 5월 프론텍 제조1팀 사원으로 입사했다. 5년 만의 ‘컴백’이었다.

김 씨가 처음 맡은 업무는 ‘부품 조립’. 부품의 간격을 메뉴얼대로 정확하게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간격이 맞지 않으면 제품에 불량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밀함이 요구됐다. 김 씨는 의류공장에서 원단을 검수하며 쌓은 ‘꼼꼼함’과 ‘세심함’을 무기로 삼았다. ‘적당히 일하다 집에 간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손을 빠르게 움직여 5시간 내에 작업량을 완수했다.

회사는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김 씨를 주목했다. 김 씨를 비롯한 여성 작업자들을 냉간단조 오퍼레이터 라인에 전격 배치했다. 김 씨의 업무는 재료를 유압기에 넣어 제조한 후 조립까지 하는 것으로 늘었다. 역할이 달라진 만큼 책임감이 커졌다. 김 씨는 회사가 여성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3개월 과정의 연수에 적극 참여했다. 외부 강사로부터 냉간단조 훈련도 받았다. 회사가 도입한 새로운 장비도 익숙하게 다루기 위해 시간을 투자했다.

사내 공정 학습 모니터링은 김 씨의 작업 역량을 크게 향상시켰다. 2015년 12월 29일 김 씨는 동료 여성 작업자와 함께 ‘여성 작업자의 냉간단조 오퍼레이팅 시연회’를 선보였다. 이를 지켜본 업계 관계자들은 30분 만에 작업을 마친 김 씨에게 박수를 보냈다.

“처음에는 일도 하고 아이들도 돌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지금은 시간선택제를 통해 작업자로 성장하게 된 것이 무척 기뻐요. 저를 비롯한 여성 작업자의 투입으로 회사의 생산성과 품질이 향상됐다고 하니 뿌듯합니다.”

김 씨는 요즘 아내, 엄마, 직장인 ‘1인 3역’을 소화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과 아이들의 출근과 등원을 도운 뒤 오전 10시 30분 회사로 출근한다. 5시간 동안 현장에서 부품과 씨름하다 퇴근하면 오후 4시 30분. 아이들을 챙겨 집으로 오면 저녁 식사 준비와 청소, 빨래를 해치운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어느새 밤 10시. 김 씨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며 “요즘엔 체력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꿈을 묻는 질문에 “지금처럼 일하며 가정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 엄마, 직장인 세 가지 역할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아이들이 크면 기능인으로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엄마에게도 꿈은 소중하니까요.”

시간선택제 일자리로 5년 만의 컴백한 ‘냉간단조 오퍼레이터’ 김미정 씨

▶김미정 씨는 “전업주부에서 냉간단조 오퍼레이터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제도 덕분”이라고 말했다.


㈜프론텍 민수홍 대표

㈜프론텍 민수홍 대표

ⓒ홍중식 기자

“시간선택제로 생산성 68% 증가, 경력단절여성 채용은 축복”

한 대의 자동차가 탄생하려면 약 2만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 이 부품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것이 볼트와 너트다. 프론텍은 볼트와 너트를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 제조기업이다. 1978년 설립 후 민수홍 대표가 2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힘이 좋은 남성 작업자를 중심으로 현장을 꾸렸습니다. 지금은 설비가 자동화돼 기계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힘이 아니라 ‘꼼꼼함’, ‘세밀함’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경력단절여성을 대상으로 한 ‘시간선택제’. 프론텍은 2013년 11명의 경력단절여성을 시간선택제로 채용하며 조직의 인사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중요도를 기준으로 업무를 구분하던 것에서 ‘일상적인 업무’와 ‘돌발적인 업무’로 나눠 하루 5시간만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여성 작업자를 ‘일상적인 업무’에 배치한 것이다. 업무 역량이 노련한 경력사원은 돌발적인 업무를 맡으며 회사의 개선사항을 찾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나아가 경영진은 격주마다 시간선택제 여성 작업자와의 회의를 통해 작업 중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개선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 시간선택제 운영 이후 시간당 생산성이 68% 증가했고, 평균 근로시간은 11.5% 감소했다. 시범운영을 통해 효과를 확인한 프론텍은 지난해 35명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창출했다. 올 5월 25일 민 대표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일각에선 회사의 방침을 두고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투자’라고 표현합니다. 경력단절여성이기 때문에 투자한 게 아니라 프론텍의 직원이기 때문에 투자한 겁니다. 회사가 직원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프론텍은 앞으로 전일제 근로자가 시간선택제 근로자로 전환하거나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전일제 근로자로 전환하기를 희망하는 경우, 자유롭게 근무 형태를 바꾸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동시에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직장문화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 김건희 (위클리 공감 기자)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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