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보호책 더불어 '역지사지’ 문화 정착돼야”
정부가 사회적 약자 보호 대책을 마련, 시행에 들어갔다. 사회통합 및 국민경제 발전의 저해 요인인 부당처우를 근절하기 위한 방편이다. 현장에 있는 이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4인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표준계약서 세분화 필요
연극배우 이재윤(가명·39) 씨는 팬 층이 꽤 두텁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연극에도 다수 출연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프로필도 뜬다. 소속사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유는 없다. 2016년 한 상업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그는 지금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중이다.
“작품을 하면 회당 얼마씩 받아요.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에 캐스팅되기 전까지는 백수죠. 하하.”
그는 “꿈꿨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만은 없지만 처우 개선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 이 바닥”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배우 일을 하면서 틈틈이 ‘투잡’을 뛰고 있다. 입시생들에게 연기 교습을 하고, 러시아어에 능숙해 외국어 과외도 한다. 공연 관련 소일거리도 들어오는 대로 거들고 있다.
“저야 상업작품에 간간이 출연하니까 그나마 낫죠. 순수예술 쪽으로 가면 정말 힘들어요. 특히 꿈에 부풀어 갓 발을 디딘 후배들을 보면 많이 안타깝죠. 재밌는 게, 어쨌든 문화예술 분야란 말예요. ‘고급문화’라는 인식에 고급인력은 몰리지만 그들을 수용할 만한 ‘괜찮은 일자리’가 없어요. 근데 해마다 관련 학과 학생들은 계속 배출된단 말예요.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많아요. ‘열정페이’가 팽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부당한 처우를 받는다고 해도 호소할 방법이 없다. 3대 지상파, 외주 제작사 등이 표준계약서를 사용하겠다고 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실제로 시행되는 경우는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표준계약서를 쓰는 건 권고 조항이고, 강력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최근 들어 표준계약서 보급 확대를 위해 계약서 체결 시 정부에서 사회보험료를 50% 지원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인 걸로 안다”면서 “이 같은 유도책은 굉장히 고무적”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다만 지원책을 ‘예술인’이라는 큰 카테고리로 묶을 것이 아니라 분야별 특성을 살려야 한다”면서 “음악인, 화가, 배우 등 각각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 다른 환경을 파악해, 복지정책을 좀 더 세분화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보다 대중 인식 바뀌어야
한선희(가명·41) 씨는 한때 대기업 직원이었다. 8년을 다니다가 출산하면서 그만뒀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경력단절여성이 됐다. 육아에 전념하다 다시 도전한 건 모 금융사 상담 업무. 여러 차례 교육을 받고 시험에 통과해 당당히 합격했다. 일을 한 지 약 6개월 남짓. 그는 “같은 기수로 들어온 상담원 중 나만 남았다”며 힘없이 웃었다.
입사 직후에는 기존 상담원들의 텃세로 힘들었다는 그는 “조금 지나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사람에게 시달린다’는 게 뭔지 절감했어요. 소위 말해 ‘진상 고객’이 있어요. 흔히 남성의 음담패설을 많이 떠올리는데, 제가 겪은 고객의 10명 중 7~8명은 여성분이었어요. 상식 밖의 질문을 하고는 답을 못하면 ‘니가 그러니까 거기서 그 짓을 하고 있지’라는 식의 인격모독으로 이어지죠. 정말 서럽더라고요.”
그는 “최근 정부에서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의무조항을 신설한 건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고 했다.
“직원이 요청할 경우 고객에게서 격리 조치를 해주고, 직원 치료 및 상담 지원을 해준다고 들었어요. 상시 고충처리기구도 마련했다는데,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한데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아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직원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한씨는 “정부 정책보다 대중들의 인식이 바뀌는 게 시급한 것 같다”고 거듭 강조했다.
“저도 이 일을 하게 되면서 제가 살아온 시간을 반성해봤어요. 혹시나 나도 누군가에게 ‘갑질’을 한 적이 있지 않았나, 하고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조금만 역지사지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출근하기 전, 거울 앞에서 항상 마인드컨트롤을 해요. 친절하자, 울지 말자, 하고요. 그런데 일반 대중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저도 오래 견디기는 힘들 것 같아요.”
‘고용불안’ 해결책 마련됐으면
추위가 한풀 꺾인 지난 2월 말.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한상호(가명·60대 중반) 씨를 만났다. 그는 9개월 전부터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제설 작업, 설 연휴 밀려드는 택배, 한파 등으로 고생했던 겨울이 지나고 있어 한결 낫다”고 했다.
“요즘 하도 경비원 폭행이니 뭐니 하며 언론에 많이 나오는 바람에 입주민들과 갈등으로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그런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일부 주민 중에는 경비라고 다소 하대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요. 지난달엔가 제가 순찰 돌고 있는 사이에 아가씨 하나가 택배를 찾으러 왔었나 봐요. 한참을 기다렸는지 저를 보자마자 대뜸 불같이 화를 내더라고요.”
그는 “최근 처우 개선 차원에서 경비원을 폭언·폭행 할 경우 형법상 가중 처벌을 받는다고 나온 건 반가운 일이지만 경비원들의 가장 큰 고심은 ‘고용불안’”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경비원들은 ‘간접고용’ 형태로 일한다. 경비원들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고용한 용역업체에 고용된 사람들이다. 입주민들은 경비노동자라는 사람을 고용한 게 아닌 업체를 고용했기 때문에 업체를 변경했을 경우 이들은 자동 해고된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관련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들은 불안에 떨어야 한다.
한상호 씨는 “실제로 연말연시에 아파트 단지마다 대규모 해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나도) 언제 해고 통보를 받을지 모른다. 요즘은 50대 초반 지원자도 많아 경비 자리를 새로 구하기도 녹록지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처벌 강화 좋지만, 조직문화부터 변해야
차호진(가명·36) 씨는 지방의 한 백화점 내 고급 브랜드의 화장품 매장에서 일한다. 점포 내에는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그의 관리를 받기 위해 내방하는 단골손님도 많다.
“초기에는 상품 관리, 판매 등의 업무만 했는데, 피부 관리까지 맡으면서 일이 많아지긴 했죠. 어떤 고객은 관리 도중 성희롱성 발언을 하기도 해요. 지금은 비교적 능숙하게 대처하지만 신입 때는 뒤에서 운 적도 많았어요.”
그는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8시 30분에 퇴근한다. 꼬박 열 두 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주말 근무도 불사해야 한다.
“이 같은 근무 조건이야 제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죠. 연차도 쌓여 비교적 탄력적으로 조율할 수도 있고요. 다만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조직 내 무조건적인, 복종에 가까운 친절을 강요하는 문화입니다. ‘모니터 제도’라고 직원들이 인사 잘하는지 감시 체크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 막상 ‘블랙컨슈머’들에게 역으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모니터링 해줄 장치가 없어요.”
차 씨는 “예를 들어 고객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면 해당 고객을 상대로 형사적인 고발 조치를 할 수도 있지만, 사건이 공론화되면 백화점 이미지도 함께 추락해 자칫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갑질 고객을 만나면 가능하면 조용히 해결하는 게 상책’이라는 풍조가 여전히 팽배하다”고 말했다.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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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