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연중 전시 공연 페스티벌, 기차 없이 떠나는 문화 여행

지난 2011년 개관한 ‘문화역서울284’가 올해로 6주년을 맞았다. 역 기능을 상실한 후 한동안 박제된 역사로만 남았던 옛 서울역이 문화의 새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더 폭넓은 콘텐츠로 관람객을 맞이할 계획이다.

 

서울역

ⓒ 문화역서울 284 제공


지난 2003년. KTX 서울역이 생긴다고 했을 때, 일각에서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역사와 추억이 담긴 서울역을 이제는 밟을 수 없겠다는 마음이었다. 당시 보기 드문 건축양식이었던 서울역. 특히 돔 형태의 푸른 지붕이 이국적이었다. 그런 서울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가 싶었다. 몇 년이 흘렀을까. 언제부턴가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박물관으로 쓴다는데, 미술관이 됐다는데….” 다 맞는 말이다. 박물관이기도 하고, 미술관이기도 하다. 때때로 공연장이 되기도 하고, 축제의 장이 되기도 한다. 옛 서울역사가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새 옷을 입었다. 용도는 다르지만 다시금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 됐다.
 
그 전까지는 한동안 방치됐었다. 철도역의 기능을 상실하고, 적절한 용도를 찾지 못해서다. 3년 후인 2007년 8월, 관리를 맡게 된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공간의 가능성과 잠재성을 내다봤다. 사진·미술·디자인·건축 전시회, 음악회, 콘퍼런스, 패션쇼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해봤더니 반응이 꽤 좋았다. 본격적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2008년 설계에 들어갔고, 2009년 첫 삽을 떴다.
 
약 2년간의 원형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11년 8월 9일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여기서 284는 번지수가 아니다. 옛 서울역의 사적번호다.

100년 전 대합실·식당 그대로 재현

복원공사는 1925년 건립 당시 자료를 근거로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100년을 뛰어넘는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붉은 벽돌이 특징인 르네상스 양식의 옛 서울역사에는 1층에 대합실과 귀빈실, 2층에 이발소와 양식당 그릴이 있었다.
 
복원 공사 이후 1층, 2층은 공연, 전시, 이벤트, 워크숍 등의 다목적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복원 전시실’로 변신한 옛 이발소 자리에는 서울역사를 복원하면서 나온 부자재와 역사적 사료들을 전시해놓았다. 이곳은 상설 운영된다.

신수진 문화역서울 284 감독은 “옛 서울역을 문화재로만 접근하면 보존해야 하는 ‘멈춘 공간’이 되고 만다”면서 “역사만으로 볼 게 아니라 문화예술을 통한 새로운 장소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곳은 시간이 켜켜이 쌓인 역사성에다, 현재의 예술적 경험까지 담아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곳의 전시와 공연은 기획, 대관으로 나뉜다. 기획은 신 감독의 지휘 아래 문화역서울 284의 예술팀이 직접 연출하는 전시 및 공연이다. 기획전시든, 대관전시든 중요한 건 공간 정체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유치하는 것. 신 감독은 “식당, 대합실, 역장실… 이곳에는 구분된 공간이 있고 이들 방에는 각각의 기능이 있었다. 따라서 작품이 해당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지를 중요하게 따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간과 싸우지 않고 어우러질 수 있는지, 그러면서 동시에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역 전시실

1 1925년 서울역 개관 당시 3등 대합실. 똑같이 구현한 현재 이곳에서는 다양한 전시가 열린다. 2 옛 서울역에 있던 이발소 공간. 현재는 복원해 전시실로 이용 중이다. 3 옛 서울역의 귀빈예비실. 역시 그대로 복원 후 전시장으로 이용 중이다. 4 2015년 기획프로그램 ‘페스티벌 284 : 미친광장’ 공연장 RTO ⓒ 문화역서울 284 제공

서울역 전시장 중앙홀

5 2016년 기획프로그램 ‘페스티벌 284 : 영웅본색’이 열린 중앙홀ⓒ 문화역서울 284 제공

연중 전시·공연·페스티벌

현재 이곳에서는 대관 전시인 ‘다빈치 코덱스’ 전이 4월 16일까지 열린다. ‘코덱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78년부터 1519년까지  남긴 3만 장 정도의 방대한 기록물을 말한다.  무기와 식물류, 수학, 과학, 해부학, 기하학 자료 및 발명품 구상 등 다양한 소재의 스케치와 연구 내용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외 7명의 작가가 다빈치의 코덱스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예술, 과학, 첨단기술의 결합을 보여준다. 신 감독은 “예술과 과학이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시”라면서 “그간 추구했던 장르의 구분, 경계 없는 예술, 융복합의 방향성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기획행사는 지난 2015년 이래 네 차례 마련됐다. 그중 ‘은밀하게 황홀하게 : 빛에 대한 31가지 체험’이 대표 프로젝트로 꼽힌다. ‘빛’이라는 키워드로 기존 전시에서 변화를 꾀했는데, 이는 옛 서울역사가 근대 건축물로서 지닌 역사성과 그 시기 발달한 예술 장르의 교집합을 찾은 결과다. 당시 신 감독은 “건물이 만들어질 무렵인 1910~1920년대 유럽에선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빛의 효과를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못 하나 마음대로 박을 수 없는 문화재라는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이기도 했다.

매년 가을이면 페스티벌도 열린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는 ‘페스티벌 284 : 영웅본색(英雄本色)’이 큰 인기를 끌었다. 2015년 ‘페스티벌 284 : 미친광장(美親狂場)’에 이어 마련된 행사로,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적 삶’을 주제로 관객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진행했다.

페스티벌은 문화역 전관과 광장을 연계해 열었다. 문화공간의 문턱을 낮춘다는 의미에서다. 사실 옛 서울역은 여유롭게 미술작품을 즐기기엔 다소 불편한 점이 있다. 환승센터에는 끊임없이 수많은 차들이 오가고, 광장 주변은 공사와 시위로 늘 어수선하다. 유동인구는 많지만, 다들 제 갈 길이 바쁜 사람들이다. 교통의 요지, 서울의 중심이지만 동시에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신수진 감독은 이에 “그래서 기회가 더 많다”고 역설했다.

그는 “처음 리스크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모두 도전 거리가 됐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는 방법을 고안하다 보니 작품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고, 관람객들은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수진 ‘문화역서울 284’ 예술감독
“문화재라는 한계,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

 

문화역서울 284 예술 감독 신수진

ⓒ 임영근

개관 6년째다. 초창기와 지금을 비교해달라.
초기는 아무래도 자리를 잡는 단계였다. 작가와 전문가 중심이었고, 찾는 사람들도 마니아층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폭이 좀 더 넓어졌다. 지표로도 나타났다. 개관 첫해 7만 9000명이었던 방문객은 이듬해 2배가 넘는 16만 5000명으로 증가했다. 지금은 주말, 주중 상관없이 하루 평균 약 1800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주 관람객층이 궁금하다.
아무래도 젊은 층이다. 젊은 층이 견인차가 되어 서서히 가족 단위, 넥타이 부대로 넓혀가고 있다. 옛 서울역사는 참 재밌는 곳이다. 유동인구가 굉장히 많은데, 역설적이게도 지나가다가 이곳을 들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이 ‘일부러’ 이곳에 오는 사람이다. 때문에 이곳만의 장소성을 강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문화역서울 284’가 단순히 ‘위치(Location)’가 아니라 ‘장소(Place)’로서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문화재다 보니 기획의 한계도 있을 것 같다.
‘이래서, 저래서 못하겠다’고 한다면 한없이 어려운 공간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게 또 가능성이 되고, 도전이 된다. 참여 작가들은 이를테면 여기서 왜 음향이 안 좋냐고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기술적인 문제를 어떻게 같이 극복해나갈지 논의한다. 그렇게 한 단계 뛰어넘는다. 자연히 관람객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초기엔 ‘못도 제대로 박지 못하는 곳에서 어떻게 전시를 하느냐’는 걱정도 있었다. 그게 기회가 됐다. 텅 빈 역 안에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빛’을 활용한 ‘은밀하게 황홀하게’ 전도 그래서 나온 새로운 시도였다.

연초다. 올해 과제는?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거다. 아직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이곳 입구는 성벽처럼 가려져 있다. 예전 서울역은 그야말로 아무나 드나드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열린 공간을 만들려면 관객의 동선을 파악하고, 그들을 물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전시기획자이면서 심리학자이기도 하다. 심리학적 차원에서 수용자 입장을 생각하며 이 부분을 계속 연구해나갈 것이다. 이후에는 운영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게 과제다. 관객들을 맞이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건 무대 위에서 드러난다. ‘무대 뒤’ 시스템을 안정되게 구축해야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콘텐츠 개발도 꾸준히 해야 한다. 프로그램 자체를 어떻게 친숙하게 가공하느냐의 차원에서다.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

▶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로봇에게 윤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인 ‘윤리기술 대변자’가 유망 직업으로 부상할 것이다. 사람과 감정을 나누는 로봇 ‘세라’가지난 1월 17일 개막한 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 등장해 포럼 참석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