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10월 27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2층 회의실에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지난해를 끝으로 현역 선수에서 은퇴한 차두리가 들어섰다. 이 위원장이 차두리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력분석관으로 임명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두 가지 점이 다소 의외였다. 우선 코치가 아닌 전력분석관이라는 생소한 직함이 등장했다는 점, 둘째로 감독 선임도 아닌 ‘일개’ 코칭스태프를 임명하는 자리에 기술위원장이 배석해 기자회견을 가졌다는 점이다.

▶러시아월드컵 예선 탈락 위기에 놓인 축구 대표팀을 구원할 책무를 맡은 차두리 전력분석관. ⓒ뉴스1
이 두 가지 요소는 한국 축구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과 맞물려 있다. 울리 슈틸리케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현재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의 과정 속에 있다. A조에서 4경기를 치른 지금 2승 1무 1패(승점 7)로 이란(승점 10), 우즈베키스탄(승점 9)에 이어 3위로 처져 있다. 이번 예선은 6개 조로 이뤄진 A, B조의 상위 두 개 팀에 러시아행 본선 직행 티켓이 주어진다. 만에 하나 한국이 11월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 예선 5차전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조 3위 이하로 반환점을 돌게 되고,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이런 급박한 위기 상황이 최종 예선 도중 차두리의 ‘소방수 투입’이라는 ‘비정상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직접적인 이유다.
월드컵 예선 탈락이라는 최악의 위기감
최종 예선 후반 레이스 새판 짜기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의외에 대해 다시 설명해보자. 먼저 차두리가 정상적인 코치가 아닌 전력분석관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이유는 그가 ‘자격 미달’이기 때문이다.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되기 위해서는 A급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차두리는 현재 B급 자격증만을 가지고 있다. 원천적으로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자격이 없기에 전력분석관이라는 편법을 썼다.
과거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 당연히 특혜 시비가 일었다. 축구협회가 먼저 원칙을 깼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많았다. 이후 축구협회는 각급 대표팀의지도자 선임에서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번에 차두리를 전격 발탁하면서 또다시 원칙을 깨고 말았다. 그랬기에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 위원장은 "모든 비난은 (선임을 결정한) 나에게만 해달라. 다만 차두리에게는 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해달라"고 호소했다. 기술위원장 스스로 이번 차두리 선임이 편법임을 인정한 셈이다.
축구협회가 왜 이런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을까. 결국 이런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월드컵 예선 탈락이라는 한국 축구 ‘최악의 재앙’이 현실이 될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즈베키스탄전을 이기지 못한다면 슈틸리케 감독의 중도 퇴진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를 영입한 기술위원회도 동반 책임을 져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차두리 카드’가 과연 효과를 볼 수 있을지에대해 검토해보자. 슈틸리케호가 지금 내부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부재라는 시선이 적지 않다. 차두리는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단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내면서 선수단의 정신적 구심점이 돼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적지 않다. 우선 그는 ‘살아 있는 전설’ 차범근 감독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현역 생활을 할 때 태어났기에 독일이 제2의고향이며 독일어는 원어민 수준이나 마찬가지다. 독일 출신인 슈틸리케 감독과는 정서적, 언어적으로 직접 통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차두리의 국가대표 은퇴 경기도 멋지게 마련해줬을 정도로 인연이 깊다. 차두리는 또기성용, 이청용, 손흥민 등 현 국가대표팀의 핵심 역할을 하는 유럽파를 비롯해 거의 모든 선수들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팀 내에서 정신적인 리더, 맏형 역할을 해줄 세대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차두리도 이런 여러 상황을 잘인식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과의 교감이라는 측면에서 차두리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슈틸리케 감독이 훈련하는 선수들을 지켜보는 모습. ⓒ뉴스1
그는 기자회견에서 "분명한 것은 팀이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인가 엇박자가 난다. 감독님이하는 발언들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선수들 사이에 밸런스가 안 맞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선수들과 감독님의 중간에서 팀이 원활하게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다짐했다.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 사이 가교 역할 ‘차두리 카드’
11월 15일 우즈베키스탄전에 명운 걸려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축구협회가 또 한 번 특유의 조급증과 단견을 드러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는 앞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고 나갈 다양한 인재풀을 어떻게 중·장기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과제와도 연결된다.
국가대표팀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팬들의 절대적인 신망을 갖고 있는 슈퍼스타급 인재를 불시에 투입해 일단 ‘불을 끄고 보자’는 식으로 대처했던 것이 지금까지 축구협회가 가지고 있던 큰문제점이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본선 1년을 앞두고 최강희 대표팀 감독이 자진 사퇴를 선언하자 ‘홍명보 카드’를 급하게 당겨 쓴것이 그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원래 홍명보는축구협회가 러시아월드컵을 대비해 ‘아껴두고 있던 카드’였지만 대표팀이 위기 상황이 되자 서둘러 조기 투입을 결정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모두 기억하고 있듯이 대표팀에도, 홍명보 감독 개인에게도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차두리 카드도 이런 식으로 소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전에 대비한 25명의 엔트리를10월 31일 발표했다. 최종 예선 정식 엔트리 23명보다도 2명이 많았다. 우즈베키스탄전이 벌어지기 전에 열리는 캐나다와의 평가전(11월 11일)을 통해 좀더 내부 경쟁력을 점검한 뒤 최종 명단을 정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슈틸리케 감독도 긴장하고 있다. 그는 차두리의 전력분석관 선임에 대해 "전술적인 부분에선 큰 영향력을 끼치지 않겠지만 교감이라는 측면에서 선수들이 느끼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서상 나에게 못 하는 것을 선수들이 차두리 분석관에게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독 스스로가 ‘전력분석관’을 전력용이 아니라 정서용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찌 보면 역설적인 상황이다.
차두리를 ‘탑재’한 슈틸리케호는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글· 위원석(스포츠서울 체육1부장) 2016.11.07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