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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현장 르포| 서해 최북단, 연평도를 가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연평도. 긴 밤이 지난 뒤 맞이하는 연평도의 새벽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분주하다. 연평도는 밤샘 조업이 금지된 곳이라, 해병대의 출선 허가가 떨어져야 배들이 출항할 수 있다. 이에 꽃게 등을 잡기 위해 바다로 나가야 하는 수십 척의 어선들은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부터 배의 시동을 켜놓고, 출선 허가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새벽 4시 50분, '출선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어선들은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앞다투어 먼바다로 속도를 높이며 출항한다.

 

 연평도

▶ 연평도 연평부대 소속 장병들이 일출과 일몰 시간에 해안정밀탐색작전을 펼치고 있다.

 

같은 새벽 시간, 연평도를 지키는 군 장병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일출과 일몰 시간, 해병대 연평부대 소속 장병 5명은 해안 정밀탐색작전에 나선다.

"밤사이 이상한 물건들이 떠내려오지는 않았는지, 수상한 정황들은 없는지 구석구석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선두에 선 원동현 상사의 우렁찬 목소리에 기가 잔뜩 들어가 있다. 이들은 연평도 외항선착장이 있는 당섬의 해안가를 걸으며 밤새 연평도 해안에 이상은 없는지, 목함 지뢰 등이 떠내려오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또한 장병들이 걸어서 수색이 불가능한 절벽 등의 바닷가는 해병대 연평부대 수색대가 고속정을 타고 나가 살핀다.

연평도에 해가 뜨면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그들을 지키는 군 장병들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1,2차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긴장 고조
북측 포격 도발로 군 장병 2명, 민간인 2명 사망

육안으로도 북녘 땅이 쉽게 보이는 연평도에는 2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960년대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조기 어장으로 유명했으나, 현재는 대다수의 주민들이 꽃게잡이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연평도는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와 함께 서해의 어업 중심지로 북서쪽으로 휴전선과 인접하고 있어 군사 전략적인 가치가 크다. 북한과는 3.4km, 북방한계선(NLL)과는 1.4km 떨어진 연평도에는 6·25전쟁 이래로 해병대 연평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조용하고 작은 섬 연평도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9년 6월에 발생한 1차 연평해전 때문이었다. 당시 북한 경비정은 북방한계선을 넘어 우리 영해를 침범했고, 우리 해군의 고속정이 선체를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남북한 해군 함정이 6·25전쟁 이후 최초의 해상 교전을 벌이게 됐다. 이 사건으로 한동안 연평도를 중심으로 한반도는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고, 꽃게잡이가 금지되면서 연평도 주민들은 생계를 위협받기도 했다.

2002년 6월에도 2차 연평해전이 발생해 6명이 전사하고 1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서해 북방한계선 해상에서 교전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2010년에는 백령도 인근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피격돼 승조원 46명이 전사하는 사건이 발생해 전 국민의 공분을 샀고, 같은 해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기습 포격을 감행하면서 남북한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은 북한이 연평도 해병대 기지와 민간인 마을에 포탄 160여 발을 발사해 해병대 장병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한 사건이다. 이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북한이 민간을 상대로 우리 지역에 직접적인 포격을 가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된다. 이에 대응해 우리 군은 북한의 해안포 진지에 80여 발의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마을 주민들 대다수는 그때의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5년간 수많은 언론에 시달린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 이야기를 하는 걸 꺼렸지만 마을 토박이로 살아온 주민 김모 씨는 "연평도에 살면서 그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점심쯤이라 밥을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군에서 '포격 연습을 할 테니 놀라지 말라'고 방송을 하더라고요. 조금 있다가 정말 '펑', '펑' 소리가 났는데 소리가 굉장히 컸습니다. 그 소리가 평상시와는 다르게 좀 이상했어요. 진짜 크게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죠. 깜짝 놀라서 밖으로 나가보니 옆집에 포탄이 떨어져서 불이 난 거예요. 저는 우리 군에서 오발 사고를 낸 줄 알았어요. 옆집의 불을 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방송이 나오더라고요. '지금은 연습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니까 빨리 대피소로 들어가라'고요. 너무 놀라 급히 대피했죠.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다른 마을 주민 이경선 씨 역시 그때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말했다.

"저는 연평도가 고향이 아닙니다. 여기 들어와서 산 지 24년 됐어요. 처음에 지인이 연평도 무서운 곳 아니냐고 걱정을 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죠.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당섬 선착장으로 나왔는데, 그때 2차 폭격이 시작됐어요. 선착장에 수많은 마을 주민들이 나와 있었는데, 바로 옆 바다로 포탄이 떨어졌죠. 아마 선착장에 떨어졌으면 마을 주민 수백 명이 죽었을 거예요."

포격 사건 당시, 휴가를 떠나려고 선착장에서 배에 타고 있던 해병대 장병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신속하게 부대로 복귀했다. 연평부대 조정민 상사는 "연평도는 평소 남북관계에 따라 긴장되는 상황들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근무하는 것보다 애국심이 높아진다"며 "포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복귀한 장병들도 연평도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강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연평도

▶ 연평도 길가 담벼락에는 포격전 당시 북한의 포탄이 떨어진 장소를 그대로 보존해놓은 장소가 있다. 

 

포격 사건 이후 다시 연평도로 돌아온 주민들
폐허가 된 고향 재건하고 일으켜 세우는 데 주력

당시 포격 사건으로 마을 주민들은 긴박한 마음으로 탈출하듯 연평도를 떠났다. 하지만 머지않아 마을 주민 대다수가 다시 연평도로 돌아왔다. 한평생을 살아온 삶의 터전이 바로 연평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고향은 참혹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집과 건물들은 폭격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괴돼 있었다. 마을 주민 강모 씨는 "연평도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포격 이후 인천항으로 나갔는데 할 일이 없더라고요. 내 모든 삶의 터전이 연평도에 있잖아요. 우리가 살길은 다시 여기, 연평도에서 시작하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그렇게 마을 주민들 대다수는 다시 연평도로 돌아와 마을을 정상화하기 위한 복구작업에 힘을 쏟았다. 정부의 지원과 군의 협력 등으로 마을은 최대한 빨리 원상 복귀됐고 주민들도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겉모습은 원래대로 복구됐지만 포격으로 받았던 마음속 충격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이 씨는 "마을 주민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후 연평도는 남북한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끊임없이 언론매체와 사람들 사이에서 상징적인 장소로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북한과의 첨예한 대립구도 속에서도 연평도는 과거의 상처들을 치유하며 서서히 안정과 평화를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씨는 "이 같은 평화가 지켜지는 이유는 연평도를 지키는 군 장병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우리 연평도는 해병대가 잘 지키고 있어요. 저에겐 장병들이 다 자식 같아서 '우리 아이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군이 연평도를 지키고 있고, 우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우리가 다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거죠. 우리 아이들 모두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너무 열심히 일합니다. 엄청 고생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죠."

해병대 연평부대도 포격 사건 이후 연평도의 안전을 위해 전력을 증강하고 작전 활동도 보강해놓은 상태다. 일단 K-9 자주포를 증강 배치했고, 이스라엘산 스파이크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으며, 대포병 레이더를 신형으로 교체한 것은 물론, 포격 음향탐지장비와 고성능 영상감시체계도 추가 배치했다. 이와 함께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하고 병력을 1200명 증원했다. 이 밖에 최대 사거리의 차기 다연장 로켓포와 유도 로켓포도 배치할 예정이다.

조정민 상사는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북의 도발 시 5분 안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고 있다"면서 "특히 모든 군이 3주에 한 번은 전투복도 벗지 않은 채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평도

▶ 안보교육장에는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으로 사망한 전사자의 살아생전 모습들이 전시돼 있다.

 

연평도는 포격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 우선 2012년 포격 사건으로 파괴된 가옥 일부를 그대로 보존해 분단의 아픔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안보교육장'을 만들어 오픈했다. 이곳에선 포격 당시 상황과 폐허로 변한 연평도의 모습을 실감나는 영상으로 소개하며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 도발의 역사와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 연평도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과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 등을 직접 보고 느껴볼 수 있다.

 

 연평도

▶ 안보교육장에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파괴된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놓고 있다.

 

안보의식 투철한 장병들
연평도 지키는 일에 크나큰 자부심

안보교육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한 '평화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는 포격으로 사망한 2명의 전사자와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의 얼굴이 부조돼 있어 고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릴 수 있다.

 

 연평도

▶ 연평도 평화공원에는 제2연평해전에서 사망한 6명의 전사자와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사망한 2명의 전사자를 추모하는 장소가 마련돼 있다.

 

평화공원을 나오면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산화한 서정우 하사 전사 지역과 민간인 사망자 추모비를 만날 수 있다. 고 서정우 하사는 전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휴가를 포기하고 중대로 복귀하던 중 북한의 2차 포격으로 장렬히 산화했는데, 그곳에 고 서정우 하사의 해병대 모표가 소나무에 깊이 박혀 있어 그날의 아픔과 서 하사의 충성스러운 군인정신을 느껴볼 수 있다.

 

또한 바로 인근에는 포격으로 목숨을 잃은 2명의 민간인 사망자 추모비도 마련돼 있다. 이 추모비의 받침돌에는 '그날을 영원히 기억하자', '북한의 만행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이 밖에 군의 사기를 드높이고 국민의 군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연평도 당섬에 '연평해전 전승비'가 세워져 있으며, 6·25 참전용사들의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육용사 충혼탑'도 건립돼 있다.

 

연평도 

▶ 연평도에 들어가는 당섬 입구에는 군의 사기 앙양과 국민의 애국심 고취를 위해 연평해전 전승비가 건립돼 있다.

 

동시에 연평도의 부활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일단 군의 인력 보강으로 군 가족들의 유입이 많아지면서 연평도는 다양한 연령층이 조화로운 삶을 누리며 사는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 연평도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닐 수 있는 '연평 초중고등학교'가 있는데, 이곳에는 120~130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또한 자식을 군에 보낸 아들을 찾는 면회객들의 방문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당섬 선착장에서 만난 면회객 최모 씨는 "1년 전 아들이 연평도에 가게 됐다고 말해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하지만 직접 연평도에 와보니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라 괜한 걱정을 했다"고 전했다.

2년 6개월 전 연평도에 들어온 연평부대 조정민 상사는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이곳에 들어와 있다.

"사실 처음에 들어올 때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적응을 하고 나니 이곳이 무척이나 편하고 좋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져 스트레스도 없고, 아이들과 아내 모두 이곳을 좋아합니다. 저 역시 연평도에서 근무하는 게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군인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지역에서 근무할 때와 비교해 갑작스러운 비상상황 등으로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시간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지난해 북한이 고사포를 쏘고 우리가 대북방송을 하는 등 긴장된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는 모두 한 달 동안 퇴근을 하지 않고 비상대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뿐만 아니라 모든 장병들이 비상시 현장을 지켜야 한다는 '안보의식'이 투철하기 때문에 장시간 대기에도 어떠한 불평불만도 없었죠. 그만큼 이 연평도를 지키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지요."

 

글/사진 · 김민주 (위클리 공감 기자) 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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