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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큰다. 육아휴직 시간도 덩달아 쏜살같이 지나간다. 어영부영 보내버리기 쉽다는 얘기다. 육아휴직 경험자들에게 물었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법을 말이다.

 

“육아휴직은 평생의 기회”
엄마만 찾던 두 딸이 이젠 아빠만 찾는다는 엄승재 씨

엄승재 씨

ⓒC영상미디어

2016년 2월에 육아휴직을 한 엄승재 씨(43)는 휴직 전에 “정말 꼭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보라”고 말했다. 회사 복귀를 앞두고 있는 엄씨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시간이 될지를 많이 공부해놓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준비를 강조했다. 

서울시복지재단에서 근무하는 18년 차 직장인 엄 씨는 2003년 결혼해 올해로 결혼 15년 차다. 아내와 중학교에 입학하는 큰딸,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작은딸 등 세 여자와 함께 경기도 양평 중미산 산골짜기에서 살고 있다.

최근 들어 남성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이지만 막상 육아휴직을 신청하기는 힘들다. 엄 씨는 육아휴직을 신청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 직장에서 남자로는 세 번째 육아휴직이었죠. 사실 제 아이들은 웬만큼 컸습니다. 하지만 큰아이가 본격적인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에 가족과 여행도 가고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었어요. 육아휴직은 법적으로 만 8세까지 쓸 수 있으니 생일이 늦은 둘째 아이가 만 8세가 되기 전에 휴직하는 것이 평생의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육아휴직을 신청한 이유 가운데 양평에서 서울로 왕복 4시간 걸려 출퇴근하느라 시골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평소의 아쉬움도 한몫했다. 시골에서 사는 맛을 한번 보고 싶은 소망이 휴직 신청에 영향을 미쳤다.

육아휴직은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대답은 ‘가족’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 6학년으로 제법 컸기 때문에 학교 숙제를 봐주었어요. 따로 사교육을 하지 않아서 좀 어려워하는 과목을 함께 공부하기도 했고요.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싸우기도 하고 뒤엉켜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보드게임도 많이 했습니다. 시골 산골짜기에서 살다 보니 같이 여기저기 산책을 다니기도 하고 읍내 작은 도서관에서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내가 야행성이라 아침상 차리기를 힘들어했는데 육아휴직 기간에 아이들 아침을 제가 담당해서 아내가 매우 행복해했습니다.”
    
육아휴직으로 가족과 소통할 수 있었지만 한국 직장문화의 특성상 남자가 육아휴직을 시도하는 것은 아직까지 부담스럽다. 엄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육아휴직을 결심하면서 경제적 문제 혹은 승진이나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망설여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엄마만 찾고 좋아하던 아이들이 아빠를 찾고 좋아해주는 걸 보면서 이걸로 됐다고 생각합니다.”

만족스러운 육아휴직을 마무리하고 회사 복귀를 준비하는 그는 “부모라면 육아휴직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육아휴직 법제화를 제안했다.


“아이는 ‘해피’ 바이러스”
두 번 육아휴직으로 회사생활의 활력을 얻은 이경민 씨

이경민 씨

ⓒC영상미디어

결혼 4년 차 이경민 씨(37)는 아들(3), 딸(1)과 경기도 용인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두 번의 육아휴직을 각각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근무 중인 이 씨는 회사의 적극적인 관심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전반적인 회사 분위기였어요. 부서 안에서도 육아휴직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주었죠.”

육아휴직을 권장하는 회사 시스템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 씨에게 회사 지원을 물었다.

“회사 내 인사과에 모성보호 업무를 하는 임부 및 산후여성 인력 담당자가 있었고, 육아휴직 서류를 제출하면 출산휴가 이후 육아휴직이 연결되도록 조치해주었습니다.”

육아휴직은 법적 권리지만 회사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씨는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 내가 휴직한 후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부서장과 상의하고 업무 조율을 해놓아야 한다”며 휴직 전 준비를 강조했다.

막상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수 있다. 그만큼 준비가 중요한 것이다. 이 씨는 이렇게 충고했다.  
 
“신생아를 돌보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가기 때문에 육아휴직 동안 꼭 할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놓아야 해요. 월별로 대략 내가 꼭 할 것들을 적어놓으면 좋습니다. 안 그러면 육아휴직은 했는데 막상 무엇을 했나 허무해질 수도 있거든요.”

두 번의 육아휴직으로 얻은 것을 물으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가족이 같이 한 추억이 소중합니다. 첫아이 키울 때 아기를 어떻게 다룰지 몰라 겪은 여러 시행착오가 생각나네요. 둘째 때는 남편이 지방 발령이 나서 주말부부였는데 육아휴직 기간에 지방에 자주 내려가서 남편과 같이 시간을 보냈어요. 남편이 일하는 곳에 아기를 데리고 가보고, 시장도 같이 보고 소소한 일상을 같이하는 것 자체가 정말 값진 추억이었어요. 이런 추억이 쌓이면서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이렇듯 좋은 경험이 되지만 감내해야 할 부담도 크다. 이 씨 역시 이를 숨기지 않았다.

“휴직으로 인한 소득감소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회사 다닐 때는 돈을 쓸 시간이 적었어요. 육아휴직을 하니까 돈 쓸 시간도 많아져서 소비가 늘더라고요. 휴직한 후 다시 복귀해서 적응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요즈음은 신혼부부들이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출산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이 씨에게 예비부모들에게 격려의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기를 낳으면 진짜 내가 한 가족을 이루었구나, 내가 엄마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돼요. 아기 키우기는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그동안 경험할 수 없었던 기쁨을 아기를 키우면서 느낄 거예요. 아기에게는 해피 바이러스가 있어요. 자라면서 나와 비슷한 부분들도 보이고 애교도 부리고 하면 무척 사랑스럽거든요.”

본인에게 좋은 경험이 되는 육아휴직에 대해 이 씨는 “육아휴직하며 쌓은 경험이 회사에 복귀했을 때 큰 힘이 된다”며 적극적인 육아휴직 활용을 당부했다. 


이정현 | 위클리 공감 기자

 

“육아만 해도 벅찰 시간, 자격증까지 딴 비결이요?”
두 살 터울의 두 아들 엄마 김민경 씨

김민경 씨

ⓒC영상미디어

6세, 4세 사내아이 둘이 연신 엄마를 찾는다.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한 시간 남짓한 사이에 질문거리가 넘쳐난다. 김민경 씨(33)는 아이들의 질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조곤조곤 설명한다. 육아 베테랑의 모습이다. 그는 “두 번의 휴직기간이 아이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조직 자체가 육아휴직에 관대한 편이라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교육업에 몸담고 있다. 대안학교 장학과 관련한 업무다. 육아에 전념하기도 바쁜 시간에 그는 이 기간을 충분히 활용해 자기계발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첫째 육아휴직 때는 석사학위 논문을 썼고 둘째 때는 자격증을 땄다.

“제가 음악을 전공했습니다. 중등교육 2급 음악교육학 석사 과정을 휴직기간에 마칠 수 있었죠. 두 번째 휴직 때는 오카리나와 리코더 자격증을 땄습니다. 보통 워킹맘은 휴직기간을 거치면서 복귀 후 업무 적응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는데, 틈틈이 자기계발하는 시간을 가지니 업무의 폭을 더 넓힐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는 휴직기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조력자가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첫째 때는 친정어머니가, 둘째 때는 시어머니가 육아에 도움을 주셨어요. 일하던 습관이 있어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육아 자체가 물리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대화 상대가 없다는 공허함도 무시할 수 없어요. 갓난아이와 나누는 대화는 솔직히 대화가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이때는 한두 시간이라도 아이와 떨어져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해요.”

나만의 시간이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다.

“마트에 혼자 간다거나 커피를 혼자 마신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을 하더라도 한결 나아집니다.”

그 시간에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첫아이 때는 주민센터에 가서 한 시간 정도 땀 흘리며 운동했습니다. 출산 후 달라진 몸에서 자칫 무력감이 올 수 있거든요. 스스로 이를 다잡아야 육아든 자기계발이든 동력을 잃지 않을 수 있어요. 요즘은 실내에서 쉽게 운동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주는 애플리케이션도 많습니다. 그 덕분에 두 번째 휴직 때는 집에서 틈틈이 운동할 수 있었죠.”

김 씨는 이뿐만 아니라 중국어 전공자인 남편의 조언에 따라 중국어 회화도 공부했다. 이 모든 게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 또한 큰 도움이 됐다.

“요즘은 정말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주의잖아요. 특히 일하면서 아이 둘을 낳아 기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남편의 도움도 컸습니다. 저는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몰라요.(웃음) 그동안 남편이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살림을 도맡아 하죠. 주말엔 저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를 가거나 놀이동산을 가거나 하고요.”

김 씨는 아쉬운 점도 한마디 했다.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육아를 하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육아휴직은커녕 출산휴가만 쓰고 복귀해야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직까지는 조직 차원에서 장려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육아휴직 기간에도 마찬가지예요. 그 기간은 온전히 휴직기간으로 인정돼야 하는데, 아이를 보다가 회사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더라고요. 휴직 전 업무 인수인계를 철저히 하고 복귀 후 진행상황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이 잘 구축됐으면 합니다.”

 

“휴직 후에도 아이와 할 수 있는 일을 만드세요”
육아는 돕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는 최재영 씨

최재영 씨

ⓒ최재영 제공

지난 2월 4일 토요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안산에서 아기띠를 하고 산책을 하는 최재영 씨(42)를 만났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들 형빈이와 함께 주말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아들의 ‘아바바바’ 하는 서툰 말에도 그는 “우리 형빈이 흙 만지고 싶어요?” 하며 일일이 대답했다. 그리고 “옹알이에도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아이의 언어 발달이 잘 이뤄진다고 했다”며 웃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최 씨는 최근 육아휴직 기간 3개월을 보내고 복귀했다.

“휴직기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요. 휴직에 들어가기 전에 그 기간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일을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실행하면서 스스로 패턴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지금이야 이렇게 산책하는 수준이지만 조금 더 크면 주말마다 아들과 등산하려고 합니다.”

그는 결혼 전부터 훗날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육아에 참여하겠다고 다짐했다. 행여 휴직이 불가능한 조직이라면 퇴사를 감행하고라도 육아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특히 아들에게는 아빠의 육아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책에서 본 내용인데요, 남자아이의 특성을 여성인 엄마가 모두 이해하고 헤아리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를 테면, 어떤 상황에서 아들이 밥을 안 먹는다고 해봐요. 그때 아빠의 눈에서 봤을 때는 쟤가 왜 저러는지 알아요. 조금 내버려두면 밥을 먹을 거란 것도요.(웃음) 그런데 엄마는 밥을 안 먹으니 무작정 걱정하고 자책하기도 하며 결국 육아 자존감이 낮아지는 상황이 온다는 거죠. ‘아빠의 육아’라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얘기예요.”

이처럼 확고한 육아철학은 아내에게 큰 힘이 됐다. 육아에 전념하려고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 생활을 하던 아내는 복직의 발판을 다질 수 있었다. 남편 덕분에 취미생활도 생겼다. 시간 날 때마다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배우고, 아들과 함께 미술관 나들이를 하며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육아에는 퇴근이 없다고 하잖아요. 아내가 비록 일을 쉬고 있지만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훨씬 더 힘들어한다는 걸 알아요. 주말마다 제가 이렇게 아들을 데리고 두 시간 정도 산책하니 아내는 낮잠 잘 시간도 가질 수 있더라고요.”

아들과 유대감이 깊어진 건 당연한 결과다. ‘엄마’라는 말보다 ‘아빠’라는 단어를 먼저 뱉을 정도였다.

“저한테 육아는 무척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회사원이 ‘애 볼래, 야근할래’ 하면 야근한다잖아요. 아이 재롱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인생에서 정말 짧습니다. 이 시간을 놓치면 다시 볼 수 없어요. 육아를 의무로 보지 말고 아이와 친구가 된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야근보다 육아가 더 행복한 환경이 조성돼야겠지요.”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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