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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한미 FTA 재협상, MD체계 동참 요구 등 복병 산재”

취임식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 1월 20일(현지시간) 취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미국 우선주의를 선포하며 세계 각국을 긴장시켰다. ⓒ연합

“지금부턴 오로지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미국 우선주의), 아메리카 퍼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월 20일(현지시간) 취임식 연설은 ‘아메리카 퍼스트’란 한마디로 정리된다. 16분간 이어진 취임 연설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미국(America)’으로 18번, 다음이 ‘미국인(American)’으로 16번이었다. 그는 “이제 그런(미국 이익을 희생하는) 일들은 과거가 됐다”며 “모든 도시, 모든 외국 수도, 모든 권력의 중심부에 (미국 우선주의란) 새로운 포고령(decree)을 반포한다”고 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의 미국을 살육(carnage)과 고갈(depletion), 황폐(disrepair), 슬픔(sad)이 흐르는 곳으로 묘사했다. 그는 “우리 국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부와 힘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며 “우리 공장은 문을 닫았고, 우리 중산층의 부는 빼앗겨 전 세계로 흩어졌다”고 한탄했다. 그리고 “미국인에 대한 ‘학살’은 반드시 멈춰야 한다”고도 했다.

또한 “모든 무역, 세금, 이민, 외교 정책 결정은 미국 노동자와 가정에 혜택을 주기 위해 이뤄질 것”이라며 “원칙은 단순하다. 미국산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고 강조했다. “외교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모든 나라의 원칙”이라고도 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전 세계에 예외 없이 적용할 것이란 의미다. ‘혈맹’, ‘한미 동맹의 특수성’으로 포장돼온 한미 관계가 철저한 이해타산의 민낯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됐다.

점점 현실화되는 한미 FTA 재협상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날 백악관이 공개한 ‘엄격하고 공정한(tough and fair) 무역협정’이라는 국정기조엔 ‘중상주의 시대’를 방불케 하는 표현들로 가득했다. ‘미국은 무역을 통해 잃어버린 수백만 개 일자리를 되찾아올 것’, ‘미국 노동자에게 해를 끼치는 국가들에 철퇴를 가할 것’, ‘재협상을 거부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파기를 선언할 것’ 등의 내용도 들어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막상 취임하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와 NAFTA 재협상 등의 공약을 후순위로 미룰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이를 한순간에 날려 보낸 셈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단 3일 만에 이를 현실화했다. 그는 지난 1월 22일 NAFTA 재협상 방침을 밝혔고, 23일 TPP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TPP는 일본, 멕시코, 싱가포르 등 미국의 우방국을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 나라가 결성 중인 다자간 무역협정이었지만 ‘아메리카 퍼스트’란 단순한 명제 아래 바로 취소가 결정됐다. NAFTA도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1994년 1월 출범시켜 20년 이상 지켜온 자유무역협정이었지만 뒤집는 데는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취임 후 100일 계획’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100일 계획의 경제 분야에서 NAFTA 재협상은 1번, TPP 탈퇴는 2번 과제였다. 이 속도라면 TPP 탈퇴 다음 순서로 지목된 중국에 대한 ‘환율 조작국’ 지정이나, 중국산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문제도 생각보다 빠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환율, 관세 등을 놓고 부딪치면 한국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현재 한국도 중국, 일본, 독일, 타이완 등과 함께 미국의 환율 관찰 대상국에 올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일자리를 위협하는 외국과의 모든 불공정 무역을 조사해 철회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취임을 전후해서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선 당시에는 “한미 FTA로 미국에서 일자리 10만 개가 날아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한미 FTA도 트럼프의 ‘액션 플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드 배치부터 불법이민 단속까지 전방위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과격 이슬람 테러리즘에 맞서 문명 세계를 단합시키겠다”고 말했지만, 북핵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악관이 취임식 날 발표한 6대 국정기조에는 “이란과 북한 등의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한 최신 미사일 방어체계(MD)를 개발할 것”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를 넘어 MD 체계 동참 등을 우리에게 요구할 경우, 상당한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그동안 사드는 한반도 방위에 국한된 것으로, 미국 본토 방위가 주목적인 MD와는 다르다고 설명해왔다.

우리 정부는 북한 미사일 탐지·추적 정보를 미국과 일본에 제공하는 등의 정보 공유만 할 뿐, 미·일 MD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군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더 적극적으로 3국 MD 협력 강화에 나서길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의 3국 MD 협력 강화 요구가 거세지고, 이에 우리가 응할 경우 중국의 반발 등 사드에 이은 또 다른 한·중 갈등 요인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동맹국을 배려하는 말은 “오랜 동맹을 강화할 것”이란 한마디뿐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군대의 통탄스러운 소모를 가져오면서까지 다른 국가의 군대에 보조금을 줬다”, “우리 국경도 못 지키면서 다른 나라의 국경을 지켜왔다”며 미군이 주둔 중인 동맹국들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여러 차례 표현했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한국은 돈 버는 기계(money machine)인데 우리에게 쥐꼬리만큼 돈을 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2018년 1월에 시작된다. 이 때문에 협상과 관련한 기본 가이드라인 마련과 협상 담당자 인선 등은 그 전에 마무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강경 라인들은 6·25전쟁에서 미군이 흘린 ‘핏값’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과정에서 “왜 (주한미군 주둔비의) 전액 부담은 안 되느냐”고 말한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경을 지키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선거과정에서 범죄경력이 있는 불법이민자 200만 명을 추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인도 (미국 입국 시) 여행 규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 만큼, 한국도 불법체류자와 관련해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미국 내 한국인 불법체류자는 15만~2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국가별로는 8위쯤 된다. 미국이 불법체류자 단속을 본격화하면 피해를 보는 교민도 생길 수 있다.

 

트럼프의 사람들

▶ 트럼프의 사람들 중 대표격인 장녀 이반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그리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연합

트럼프의 사람들
‘아웃사이더’ 출신의 ‘이너 서클’

트럼프는 공직을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아웃사이더’ 출신 대통령이라 그의 ‘이너 서클’은 상당히 한정돼 있다는 평가다.
우선 미국 언론들은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가장 핵심으로 꼽는다. 프리버스는 백악관과 행정부, 의회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스티브 배넌은 트럼프와 ‘이념적 큰 그림’을 그릴 것이란 평가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의 취임연설도 배넌과 상의했다고 한다.
트럼프의 사람들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바로 그의 가족이다. 대표적으로 장녀 이반카와 ‘막후실세’로 활약해온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있다. 쿠슈너는 특히 백악관 선임고문이라는 정식 정부직책에 임명됐다. 트럼프는 NAFTA 재협상 실무를 쿠슈너에게 맡겼고,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등 중동 평화 중재 임무까지 맡기겠다고 했다. 이반카는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동안 관심을 가져온 보육 입법 문제와 관련해 의원들과 전화로 논의하는 등 적극적인 국정행보를 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와 직결된 외교·안보 라인에는 강경파들이 집결했다. ‘외교 수장’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 출신이다. ‘미친 개’란 별명으로 맥아더 이후 최고의 장군으로 꼽히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선제) 공격도 선택지 중 하나”라고 했다. 군 출신인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중국을 강력하게 압박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경제부처 인사들이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 내정자는 인사 청문회에서 “공정한 무역 협정이 필요하다”며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백악관에 신설된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에는 대표적 반중(反中) 학자로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피터 나바로 교수가 임명됐다. 그는 “한미 FTA로 미국에서 9만 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며 “(한미 FTA 등) 실패한 협정에 대해 대대적인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조의준 |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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