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권총으로 궤짝을 쏜 괴테가 괘씸해 괴테에게 궤짝의 부서진 귀퉁이를 붙여 궤짝을 완성해놓으라고 했다."
"오~ 짱이다."
도통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을 틀리지 않기 위해 한자 한자 힘주어 읽는 아이. 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친구들. 친구가 실수를 했을 땐 민망하지 않도록 '까르르' 웃어준다. "생각보다 내가 발음이 좋아서 놀란 친구 있어요? 방송에 관심이 없어도 재밌게 즐기면 돼요. 실수해도 상관없어요. 자신 있게! 재밌게!"라며 선생님도 아이들을 격려한다.
판서를 하는 선생님도, 딴청을 피우거나 조는 아이도, 교과서도 없는 수업. 그 대신 선생님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아이들은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교과서 대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10월 30일, 방송 뉴스 제작체험을 위해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은 대전 남선중학교 2학년 2반 학생들을 만났다. 이들은 본격적인 뉴스 제작에 앞서 한창 발음 연습 중이었다.
교실을 떠나 현장에서 하는 직업체험은 '자유학기제'의 핵심이다. 남선중은 내년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올 12월까지 한 학기 동안 시범 교육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1~4교시까지 오전 수업은 평소와 똑같이 교실에서 받고(주 23시간) 오후에는 이같이 현장 직업체험 프로그램이나 진로탐색 프로그램(진로검사, 교내 강연, 스포츠 활동 등), 꿈 탐색 동아리 활동을 한다. 남선중은 대전지방법원, 충남대 자연사박물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아이들에게 법관, 학예사, 과학수사대 등 20여 개의 직업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전 남선중 2학년 2반 학생들이 자유학기제 직업체험의 일환으로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방송 뉴스를 제작해보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만든 뉴스
직업체험 넘어 자신감 얻는 계기
"저 카메라 안에는 누가 있죠차유진 미디어센터 강사)
"선생님이요!"(학생들)
"아니에요. 카메라 안에는 시청자의 눈이 있다고 생각해야 돼요."
본격적인 뉴스 제작 체험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선 31명의 아이들은 각자 앵커, 기자, 기상캐스터 등 역할에 따라 연습한 대본대로 연기했다. 조감독을 맡은 학생이 슬레이트를 내려치며 '큐' 사인을 보내면 시그널 음악과 함께 앵커가 등장해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를 연결한다. 프롬프터(무대 밖에서 대사를 보여주는 기계)를 보느라 카메라를 보지 못하는 아이, 마이크를 켜지 않고 말하는 아이, 자신의 모습이 어색한 듯 연신 히죽이는 아이…. 아이들의 다양한 표정이 화면 속에 담긴다.
화면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은 기술실에 들어가 방송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관찰했다. 미디어센터 강사가 음향장치와 프롬프터, 화면조정장치를 설명한 뒤 학생들이 직접 기계를 작동해본다. 화면 밖에서 더 긴박하게 돌아가는 기술실에서 아이들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계속해서 질문한다.
직업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직업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태도도 배운다. 진로지도 담당 교사는 수업을 진행하며 '안전, 집중, 반응' 세 가지를 강조했다.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도전 과제를 주고, 다른 학생의 체험을 본 후에는 크게 박수 쳐주도록 유도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라 더 흥미 있었어요. 기술실은 정말 신기했어요! 그리고 친구들과 다 같이 만든 뉴스라 더 뿌듯해요."(이지원 양)
"지원이 말대로 방송을 제작하는 일은 여러 사람과 협력해야 하는 일이에요. 방송에 관심이 있든 없든 오늘 경험이 단순한 방송체험이 아닌, 협동심과 자신감을 얻어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차유진 강사)

현장의 말… 말… 말
"영화배우 역할을 맡아 인터뷰하는 연기를 했는데 너무 떨리고 어색했어요. 방송 쪽에서 일한다면 화면에 나오지 않는 카메라맨을 하고 싶어요. 자유학기제에서 해본 직업체험 중에는 법원에 갔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과학자가 꿈이라 다음엔 연구실 탐방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평소 학교 수업에도 만족하고 자유학기제도 좋아요. 자유학기제 기간이 1년 정도 더 늘어나 학업과 적절히 병행했으면 좋겠어요." | 이경모(남선중 2)
"저는 기자가 꿈인데 직접 방송체험을 해보니 제가 어떤 부분을 노력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하지만 저같이 꿈이 확실한 친구들이 자유학기제 기간 동안 다양한 체험보다는 한 가지 직업체험을 심도 있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기자를 꿈꾸는 친구들과 꿈 탐색 동아리 활동도 해요. 자유학기제 동안 학업에는 조금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학교 분위기가 들떠 있는 것도 걱정이에요.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제가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며 좋아하세요. 이왕 하는 것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이 좀 더 심화돼서 신문기자를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으면 좋겠어요." | 박세은(남선중 2)
"자유학기제를 앞두고 교사로서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합니다. 저 역시 교사라는 직업 외엔 체험해본 게 없기 때문에 말로 설명해주는 것보다 아이들이 몸소 경험해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되죠.
자유학기제 동안에는 교실 수업도 교과서 중심에서 열린 수업으로 운영해요. 예를 들어 중세 유럽의 의식주 문화를 배우는 시간엔 모둠별로 신분에 따라 달리 먹었던 음식을 조사해서 가져오게 한 뒤, 발표하고 서로 나눠 먹는 식으로 진행해요. 평소 같으면 시험 일정에 맞추느라 교과서 내용 요약하고 학습지 푸느라 이런 수업은 하기 어렵죠.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나 학부모들은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유학기제는 학업 부담이 덜한 1학년 2학기쯤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지역사회 차원에서 직업체험 기관과 자원을 다양화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책상에 앉아 하는 공부는 학력 향상이 목표가 되어 학업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방황을 하기도 해요. 그런 아이들에게 자유학기제가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강지영(남선중 교사)
글 · 조영실(위클리 공감 기자)201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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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