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00여 년 전 힘없이 국권을 빼앗긴 뒤 목숨 바쳐 일제에 맞섰던 12인의 독립투사. 오로지 나라 사랑 마음으로 남긴 말씀들에 어떤 부연과 첨언이 가당할까요. 충심어린 그 어록에서 우린 조국과, 조국을 지키는 일과, 조국을 지키려 몸과 마음을 불사른 이들을 되새깁니다. 광복 70년의 해. 다시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조국 독립과 6·25 전쟁, 가까이는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수많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은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국인(大韓國人)입니다.

도마 안중근 의사 (1879~1910)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느니 우리 2000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여한이 없겠노라.” (동포에게 고함)

월남 이상재 선생(1850~1927) “서리가 오기 시작하면 반드시 굳은 얼음이 얼고야 마는 것은 필연의 이치인데 하루 이틀 지날수록 한 가지 두 가지 일이 외국에 침식되니, 계속 이와 같이 나간다면 몇 날 몇 달이 못 가서 전국(全國)의 권한이 외국에 모두 양도되어, 태아(太阿 : 보검의 이름)의 칼자루를 거꾸로 쥐는 후회를 남기게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독립기념관 어록비)

한서 남궁억 선생(1863~1939) “나는 죽더라도 조선 사람으로 죽겠소.”
(1933년 무궁화 사건*으로 구속됐을 당시 회유를 권하는 홍천경찰서장 도미다에게 한 말) * 무궁화 사건 : 민족 교육자 남궁억이 민족정신 앙양을 목적으로 자신이 설립한 강원 홍천의 모곡학교에서 무궁화 묘목을 재배해 전국 각지에 보내는 무궁화 심기 운동을 전개하자, 일제가 이를 불온사상을 고취하고 치란(治亂)을 교란시킨다하여 남궁억은 물론 모곡학교 교직원과 교회 목사, 친척들까지 체포하고 무궁화 묘목 8만 그루를 불태운 사건.

면암 최익현 선생(1833~1906) “ 감히 포고로써 호소하노니 나라 안 동포들이여 바라건대 이를 죽어가는 늙은이의 말이라 흘려버리지 말고 부디 우리 모두 스스로 힘내고 굳게 다져서 우리의 인종마저 바꾸려는 저들의 악랄한 간계를 끝내 막아낼지어다.”

보재 이상설 선생(1870~1917)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1917년 러시아 니콜리스크에서 임종을 지킨 동지들에게 남긴 유언)

매헌 윤봉길 의사(1908~1932) “아직은 우리가 힘이 약하여 외세의 지배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세계 대세에 의하여 나라의 독립은 머지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어마지않으며, 대한 남아로서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이 떠나가오.”(1932년 12월 19일 유언)

해공 신익희 선생(1894~1956) “나에게 쓸 만한 집 한 칸 없다고 집 한 채 마련하라고 권고하나 내가 망명 때 항일독립이 평생의 소원이었고 이제 반 조각이나마 독립된 조국에서 국사를 맡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있겠는가.”

남강 이승훈 선생(1864~1930) “우리가 할 일은 민족의 역량을 기르는 일이지 남과 연결하여 남의 힘을 불러들이는 일이 아니다. ”

심산 김창숙 선생(1879~1962) “나는 대한 사람으로 일본의 법률을 부인한다. 일본의 법률을 부인하면서 만약 일본 법률론자에게 변호를 위탁한다면 얼마나 대의에 모순된 일인가? 나는 포로다. 포로로서 구차히 살려고 하는 것은 치욕이다.”(옥중 투쟁 시 변호를 거절하며)

철기 이범석 장군(1900~1972) “조국, 이 말처럼 온 인류, 각 민족에게 강력한 감동과 영향을 주는 말은 없다.” (독립기념관 어록비)

의암 손병희 선생(1861~1922)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 정신을 일깨워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1919년 2월 22일 서울 우이동 봉황각에서)

장인환 지사(1876~1930) “나는 특별한 학식이 없어 나라를 별달리 보국할 방책이 없으나 언제든지 우리나라가 일본을 대하여 독립 전쟁을 개시하는 날에는 나는 반드시 칼을 차고 총을 메어 떨어지는 날 가을 풀에 말머리 행오(行伍) 앞에서 나의 한 창자 더욱 피를 솟을 뿐이다.”
* 광복 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광복 70년을 맞아 독립투사 12인의 말씀을 ‘광복 70년, 그날의 어록’이라는 카드뉴스로 제작했습니다.
글 · 김진수 (위클리 공감 기자) 201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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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