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여행서를 출간한 후, 사람들은 내게 '여행을 알차게 할 수 있는 방법', '좀 더 효율적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 팁'을 많이 물어보신다. 그럴 때 나는 최선을 다해 나의 여행 방법을 알려드리지만, 왠지 마음속으로는 '내 여행은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데, 어떡하지?' 하는 생각 때문에 알쏭달쏭해진다.

더블린 국립박물관에서 신발 한 짝을 발견했다. 습지에 수백 년간 묻혀있어 오히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가죽 신발이다. 꼬마 소녀가 신을 만한 작은 신발인데, 아마도 신을 사람의 발에 꼭 맞추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한 것 같다. 우리 옛 시에 나오는 ‘육날메투리’가 떠올랐다.“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이라는 동요 가사를 생각하며 미소짓는다.이렇게 어여쁜 신발을 신고 봄나들이 나갔으면.
사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더 멋진 장소를 찾아다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평소와 다른 나 자신을 만나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모든 것을 정말 '잘해내기' 위해 애쓰지 않았는가. 솔직히 나는 여행할 때 너무나 많은 엉뚱한 실수들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참 재미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조금은 얼뜨고 서툴러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할 때 '나는 이곳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기분으로 떠난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일단은 '난 아무것도 몰라, 그러니 아무것도 욕심내지 말자'라는 기분으로 간다. 그럼에도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대단한 무언가를 보고 싶은 욕심'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 욕심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는 것이 내 여행의 가장 소중한 비결이 아닐까.
어떤 여행지에 가도 통하는 것은 바로 이 '서툰 표정'과 '잘 모르겠다'는 제스처다.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들도, '나는 잘 모르겠는데 조금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표정 앞에서는 마음이 누그러진다. 어쩌면 우리는 평소에 너무 많이 '아는 척'해야 하고, 모르면 큰일 나는 분위기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 '모르겠다는 표정'이 처음에는 잘 나오지도 않고, 자칫 부끄럽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는 여행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모든 것이 다 새롭겠지?' 하는 생각으로 다녀온 여행이 훨씬 좋았다. 점점 힘을 빼고 다니다 보니 이제는 거의 무념무상인 상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최고임을 알 것 같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행동에 스스로 점수를 매겨오지 않았는가. 여행은 일단 '공부'보다는 '놀이'에 훨씬 가까운 일이니까 말이다. 사실 나는 '공부하는 기분으로 떠나는 여행'에 너무 익숙해져서 '놀이하는 여행'의 기쁨을 잘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쉬는 법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지혜를 아는 사람임을 깨닫는 중이다.
얼마 전에 '삶을 사랑하는 자의 여행법'이라는 주제로 한 도서관에서 강의를 했는데, 초등학생 아이를 둔 어머님이 "내년쯤에 아이와 함께 유럽 여행을 가고 싶은데, 역사와 예술에 대해서 아이들도 잘 공부할 수 있게 하는 여행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라고 물으셨다.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시는 학부모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도리어 조금은 욕심을 버려야 훨씬 창조적인 여행이 될 듯하다.
'아이에게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커다란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실 때는 오히려 '정말 놀자'는 기분으로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이가 정말로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지 엄마에게 물어볼 것이고, 여행 중에 문득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이 훨씬 살아 있는 현장 교육이 될 테니 말이다. 목적의식이 가득한 여행보다는 '일단 마음껏 쉬고, 놀며, 자연스럽게 세상을 구경하는 여행'이 아이의 마음을 한껏 열어줄 것이다.
느끼고, 부서지고, 넘어지고
돌발 상황에 몸 맡겨야
여행의 기쁨은 '준비된 스케줄'보다는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서, 뜻밖의 체험이나 인연을 통해 찾아온다. 영국의 카디프에서 나는 전통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한 할머니가 신들린 솜씨로 빵을 반죽하시는 모습을 보고 넋을 잃고 서 있었던 적이 있다. 그런 나를 본 한 아주머니가 내 등을 떠밀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였다. "빵을 눈으로 먹을 기세네. 빵은 입에 넣어야 제 맛이지. 어떻게 눈으로 빵을 먹겠어요. 구경만 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서 사 먹어요. 정말 끝내주는 맛이라우." 분명 영어로 들려온 말이지만, 나에게는 정말 이런 뉘앙스로 들렸다. '정말 끝내주는 맛이라우' 하는 그 느낌이 얼마나 정겹고 반갑던지.

때로는 대낮에도 등대가 필요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질문에 대답해주는 모든 존재들은 우리 삶의 빛나는 등대다. 때로는 친구가,때로는 책이,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우리 삶의 환한 등대가 되어준다. 로마 핀초 언덕 위에서 만난 연인의 모습도 그날 내 지친 오후의 화사한 등대가 되어주었다.
그렇다. 어떻게 빵을 눈으로 먹을 수 있겠는가. 혀에 감겨드는 맛, 향긋한 반죽 냄새, 보송보송한 질감까지,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코로 맡아보고 입속으로 집어넣어야만 알 수 있는 그 '여행의 맛'을 나는 게으르고 편리하게 '눈으로만'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 아주머니의 멋진 조언 덕분에 나는 여행의 참맛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여행 속에서 무언가를 '보려고, 알려고, 분석하려고' 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눈으로만 보려 하지 말고, 뛰어들고, 만져보고, 부딪쳐보아야 한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온갖 돌발 상황과 우연에 몸을 맡기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적성에 맞는' 여행의 기술이었던 셈이다.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은 여행이 더더욱 절실하다. 지구의 시점에서는 오직 달의 한쪽 면만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멀리 떠나보기 전에는 나는 나 자신의 한쪽 면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열심히 사는 것' 말고는 아무 비결이 없는 재미없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여행을 통해 '가끔은 확 풀어지고 싶은 나, 좀 실수해도 괜찮은 나, 많이 모자라지만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소중한 나'를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우연에만 맡길 수는 없는 내 여행의 기술 한 가지가 있긴 하다. 그건 여행지를 '정보'로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접근하는 것이다. 나는 이 도시에 가면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이 도시에 가면 어떤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을까, 이 도시에 가면 어떤 소설이나 시가 어울릴까를 생각하며 여행을 떠난다. 꼭 프라하에서 카프카를 만나고, 파리에서 빅토르 위고를 만나지 않아도 좋다. 어떤 '계획'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수성'을 실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 서로 전혀 상관없는 한 쌍이어도 좋다. 예컨대 기형도의 시집을 들고 제주도로 떠나고,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읽으며 춘천 가는 기차를 타도 좋다. 나는 '배우고 익힐 준비'보다는 '느끼고, 부서지고, 넘어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여행을 떠난다.
나는 그렇게 여행을 통해 조금씩 '또 다른 나, 나도 몰랐던 나, 일상에 파묻힌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세상'의 모습을 배운다. 그리하여 사랑의 미칠 듯한 설렘은 연애 초기밖에 느낄 수 없지만, 여행의 설렘은 아무리 많이 떠나도 쉽게 마모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모든 여행은 예측 불가능의 실험이자 눈부신 설렘의 기록이 된다.
글 · 정여울 (문학평론가) 201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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