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후미진 골목, 좁디좁은 전통시장에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때 활력을 잃었던 광주 대인시장은 예술가들이 상주하면서 옛 명성을 되찾았다. 불법 노점들이 몰려 있던 부산의 부평깡통야시장도 부산 관광의 필수코스가 됐다. 전국 곳곳의 전통시장에 문화를 입혔더니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여기에 정부가 주도하는 ‘개성과 매력 있는 전통시장 만들기 사업’이 힘을 보탠다.
‘도심골목형시장’의 성공 사례, 서울 금천교시장
서울 종로구 체부동 금천교시장 입구의 높게 세운 간판에는‘세종마을 음식 문화거리’라고 쓰여 있다.
끝까지 걸어도 300미터가 안 될 만큼 작은 시장의 초입. 한 평짜리 가게에서 떡볶이만 팔아온 이 시장의 터줏대감 김정연 할머니(98·오른쪽 사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양념한 떡을 무쇠철판에 볶는 과정을 지켜본다.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도 몇 년 전 2000만 원이 넘는 돈을 기부했다. 북한 개성이 고향이라는 김 할머니의 가족 사랑과 그리움이 선행으로 이어졌나 보다.
‘도심골목형시장’인 금천교시장은 직장인사이에서 ‘제2의피맛골’로 통한다. 청진동이재개발되면서 피맛골 대신 빌딩 숲이 생기자 골목맛을 잊지 못한 직장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과 2, 3년전까지만 해도 금천교시장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작은 전통시장이었다. 허름한 국숫집에서 단돈 3000원으로 뜨듯한 국수 한 그릇 먹을 수 있고, 막걸리 한 잔 걸칠 수 있는 곳. 금천교 시장은 서울의 사라져 버린 수많은 뒷골목의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요즘은젊음의 거리에서나 볼법한 하우스 맥주와 커피를 파는 세련된 가게들이 하나둘 늘어 밤이면 직장인과 연인들로 북적인다.
“호기심에 친구와 왔어요. 가격도 싸고 맛집도 많고, 동네를 둘러보니 정감이 있어 좋아요.”(강상화·여·김포시)
시장 상인들은 어느 순간부터 시장통이 변했다고 말한다. 인근 한 부동산 중개인은 “5, 6년전부터 시장 점포들이 음식점으로 변하더니 세련된 가게들도 늘었다”며 “음식점이 70~80퍼센트, 나머지가 상점”이라고 말했다.

어디선가 유쾌한 청년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골목을 울린다.‘ 청년 장사꾼 감자집(구열정감자)’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감자튀김의 고소한 냄새와 직원들의 신나는 기운을 즐기는 것도 좋다. 자본금이 부족한 청년들이 금천교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2012년 이곳에 감자 집을 열자마자 대성공을 거둬 지금은 여기저기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
도시락 카페’로 인기몰이,서울 통인시장
금천교시장을 빠져나와 자하문 방면 옥인동 길로 향한다. 서촌의 속살길이다. 고택부터 오래된 가게들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통인시장이다. 유명한 문인들이 많이 살았다던 그 명성답게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도 골목을 지키고 있다.

“두 개 천 원이요.”“네, 두 개 주세요.” 엽전을 내고 빈 도시락통에 반찬을 담는다. 서촌 중간쯤에 자리 잡은 통인시장의 한 풍경이다. 단돈 몇천 원이면 나만의 푸짐한 도시락이 만들어 진다. 한 닢에 500원인 엽전을 가지고 시장에서 소문난 음식들을 종류별로 맛볼 수 있다. 먹고 싶은 반찬 가게에 엽전을 지불하면 빈도시락통에 인심좋게 가득 담아주는 일명 ‘도시락카페’다.
“엽전 2개를 남기면 1000원인데 밥으로 교환할 수 있어요. 충분히 먹어도 5000원 밖에 안해요.”(박선희·여·서울은평구) 엽전은 시장 가운데에 있는 고객센터에서 구입할 수 있다. 엽전과 함께 받은 도시락통을 들고 시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입맛대로 반찬을 고른다. 이렇게 가득 담은 도시락을 가지고 고객센터에 마련된 식탁에서 먹는다. 공깃밥과 국은 별도로 판매하며 김치는 기본으로 제공된다. 시장 안 반찬가게를 활용한 도시락 카페 덕분에 통인시장은 관광명소가 됐다.
심계순 통인시장 관리부장은 “남녀노소 그리고 외국인도 많이 오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시장을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서촌 길을 찾는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통인시장의 정겨운 맛 때문이라고 한다. 튀김에서부터 떡갈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장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통인시장에는 두 곳의 기름떡볶이 집이 있는데 최근 재미있는 일화가 생겼다. 지난 해 초 존 케리미 국무장관이 통인시장을 방문한 때였다. 원래는 한원조 할머니의 떡볶이를 먹고 가는 일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 오는지 몰랐던 주인할머니는 이날 준비한 떡 60킬로그램을 모두 팔아버렸던 것. 이 때문에 케리 국무장관은 다른 떡볶이집에서 기름떡볶이를 맛봤고, 결국 통인시장의 두 기름 떡볶이집은 ‘존케리가 먹고 간 효자동 떡볶이’와 ‘존 케리도 못 먹고 간 원조 할머니 떡볶이’가 됐다.
사람들은 서촌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고 말한다. 이웃과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 받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이다. 골목길이 가지처럼 뻗은 서촌에선 길을 잃고 헤매는 일조차 즐겁다.
예술인과 상인의 상생 공간, 광주 대인시장
시장 입구를 서성이는 외지인에게 좌판에서 채소를 팔던 할머니가 한마디 던진다. “여가 역전 자리여. 요 앞으론 선로가 있었당게. 버스터미널도 있었고. 그때는 사람엄청다녔제.” 입구에서 보기엔 여느 전통시장과 다를 게 없다. 쌀쌀한 평일 오후라 그런지 손님으로 북적여야 할 시장 골목은 차가운 바람만큼이나 한산했다. 하지만 대인시장에는 분명 새로운 기운이 살아 있었다.

2008년 비린내 나는 전통시장에 문화예술을 접목하면서부터다. 지역의 작가와 기획자들이 대인시장에 자발적으로 입주해 예술가와 시장 상인이 어우러진 시장으로 새롭게 출발한 것. 매달 한 차례씩 작가들이 전시하는 ‘한 평 갤러리’와 곳곳의 벽화도 시장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래서 대인시장은‘예술시장’으로 불린다. 덕분에 지역주민뿐 아니라 관광객들까지 대인시장을 찾으면서 시장 경기도 점차 살아나고 있다.
대인시장 활성화에 기여한 대표적인 행사는 상인과 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해 2011년부터 열고 있는 야(夜)시장‘별장’이다. 6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둘째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 대인시장에 상주하는 예술가와 상인 등이 참여한다.
10년째 이곳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경숙(56·여) 씨는 “야시장이 열릴 때면 발디딜틈이 없다”면서 “먹거리 가게들이 장사가 잘 되는 편인데 내 물건이 많이 팔리지 않아도 시장이 북적대니 기분이 좋다”고전했다.
대인시장 상점은 요즘의 주상복합상가나 다름없다. 1층에서는 장사를, 2층은 살림집을 차릴 수 있는 구조다. 상가 2층은 상인들의 보금자리이자 작가들의 거처가 됐다.
터미널과 도청 이전 후 상권 쇠락 어려움도
1959년 광주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인시장은 광주의‘관문시장’이었다. 시장 맞은편에 버스터미널이 있어 광주를 오가는 사람들 상당수가 대인시장을 들렀다. 그러나 터미널이 이전하고 도청이 무안으로 옮겨 가면서 시장 규모가 줄고 상권도 눈에 띄게 시들해졌다. 대인시장 점포 절반 이상이 비었다.
그러나 예술시장으로 변신한 요즘 광주 대인시장은 다시 활기를 찾아 이제는 빈 점포가 없다. 대학원생 최보광(25·여) 씨는“대인시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 마케팅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광주 시민은 물론 타지 사람들에게도 시장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술로차별화한대인시장. 이제 옛 전남도청 일대에 조성 중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연계한 미래형 광주 대표 문화관광 시장으로 변모를 꾀하고 있다.
광주전남중소기업청 공공판로지원과 김마성주무관은 “문화관광형시장의 성공사례인 대인시장에서 터득한 아이디어를 지역 내 다른 시장 활성화에 적극 활용하며, 예술인과 상인들이 공생하고 청년 상인이 성장할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관광객 필수코스, 부평깡통야시장
“따끈한 어묵 있습니더~.”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깔끔하게 정리된 어묵 카페와 만났다. 부평깡통야시장은 어묵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오후 6시를 조금 넘기자 형광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시장 내 공영주차장에서 노점판매대를 차례로 밀고 나왔다. 부평깡통야시장상인들이다.
“인자 오나? 내는 짜요가 젤로 이쁘더라. 허허.”한 판매대의 여성에게 60대 식육점 아주머니가 연방 “짜요”를 외치며 반긴다. 알고 보니 베트남 여성 우엔 이트(28) 씨를 그가 만드는 베트남 튀김만두 ‘짜요’에 빗대 부르는 말이란다. 상점사이에 설치된 판매대에서는 유부전골을 비롯한 부산의 유명 먹거리는 물론, 인도네시아 볶음국수인 미고랭, 터키의 케밥 등 각국의 길거리 음식도 만날 수 있다. 케냐 산장 식품은 덤이다.
부평깡통야시장은 2013년 10월 29일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으로 설치한 아케이드 110미터 구간에서 국내 최초로 개장했다. 노점 30곳이 매일 오후 6시 문을 열어 자정까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연중무휴로 노점 18곳은 먹거리(향토 11, 다문화 7)를, 나머지는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평일에는 하루 평균 3000∼5000명, 주말에는7000∼1만 명이 찾는다고 한다. 특히 관광업계를 통해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이 찾는 필수 코스가 됐다.
짧은 기간에 관광명소로 부상한 것은 인근 관광지와의 시너지 효과 덕분이다. 용두산공원과 영도다리, 국제시장, 자갈치 시장 등 부산의 전통명소를 찾는 관광객들이 야시장을 찾게 된 것이다.
삼진아웃제로 철저한 청결·위생 관리
기존 점포들의 매출도 덩달아 올랐다. 어묵가게를 운영하는 이강식(52) 씨는“예전보다 매출이15퍼센트 정도 올랐다”며 “야시장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외지인들이 부산의 전통음식에도 눈길을 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초 기존 점포 상인들은 매출에 영향을 받을까봐 야시장도 입을 반대했다고 한다. 상인연합회는 상인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한편 공모를 통해 야시장 상인들을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로 모집했다. 또한 야시장 도입에 앞서 부산시와 협의해 강력한 상거래질서를 확립했다. 상인회는 청결, 위생관리 등을 점수로 매겨 야시장 상인들과의 재계약에 반영하고, 계약은 1년마다 한다. 상인회와 중구청, 야시장 상인들은 3자 협약을 통해 판매대를 제3자에게 양도·교환·매매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여기에다 삼진아웃제를 도입해 청결, 위생 등의 관리를 미흡하게 할 경우 먼저 경고를 주고 경고를 3번 받은 야시장 상인은 영구 퇴출되도록 했다. 야시장에는 관광객 외에 전국 지자체와 전통시장 상인 등이 찾고 있다.
이에 부산시와 중구청, 상인회 등은 야시장 구간을 추가로 늘리고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문화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방침이다. 1890년 문을 연 전통의 부평깡통시장이 이제 전통시장과 야시장의 상생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글· 박길명 (위클리공감 기자) 2015.1.5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