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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안전불감증은 범죄… ‘생명중시’ 계기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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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76)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겸 고신대학교 석좌교수는 착잡한 표정이었다. 우리 사회 대표적 원로 중 한 명으로 세월호 사고 이후 여러 언론 인터뷰에 응하며 매번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민낯을 대면하는 것이 참담한 탓이다. 손 교수는 “도덕성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세월호 침몰사고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5월 13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는 나눔국민운동본부 사무실에서 손 교수를 만나 ‘안전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을 들어봤다.

그는 “비도덕과 무원칙은 결국 사람을 죽인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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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가 났을 때 한 월간지에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앞으로 이런 대형사고는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 우리는 과거에는 갖지 못했던 엄청난 물리적 힘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그런 힘과 가능성이 없을 때와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즉, 안전불감증이다. 안전불감증은 과거에는 나쁜 버릇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은 중대 범죄다. 세월호 선장의 행동은 500명이 타는 여객선을 지휘하는 사람의 의식수준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 사회가 천천히 힘과 가능성을 키웠다면 그에 걸맞은 의식도 생겼을텐데 초고속성장주의에 매몰된 나머지 그러지 못했다. 한마디로 달구지를 몰던 사람이 버스를 모는 격이다. 달구지를 몰 때는 좀 졸아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버스를 몰 때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 아닌가?”

대한민국 전체가 상(喪)을 당한 느낌이다. 어떤 방법으로 치유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 못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원봉사자, 나를 희생하고 남을 위하는 영웅들도 많다. 언제까지 슬퍼하고 낙담할 수만은 없다.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말자고 굳게 결심하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그것이 희생자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또 그 길밖에 없다고 본다.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면 그들의 희생이 무의미해진다.”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던진 교훈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이런 안전불감증을 갖고, 이처럼 원칙과 도덕을 무시하면 결국 사람이 죽는다’는 거다. 비도덕·무원칙은 사람을 죽인다. 우리 모두, 또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재수 없는 사람만 걸리겠지’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안전불감증이다. ‘설마 내가 피해자가 될까’라는 생각도 요행을 바라는 비과학적인 태도다.”

사회의식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에는 우리네 삶이 주로 자연과의 관계에서 이뤄졌다. 현대는 우리들의 삶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뤄진다. 우물물은 내 손으로 퍼 마시면 되지만 수돗물을 마시려면 수백, 수천 명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이런 사실 하나만 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행복과 불행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의무는 없지만 해를 끼치지 않을 의무는 있다. 도덕·윤리라는 것은 별게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도덕이고 윤리다. 현대사회에서는 윤리적이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이번 사고도 윤리적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 아닌가? 윤리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개인의 각성으로 해결될 문제인가?

“그래서 제도와 감시와 벌이 강화돼야 한다. 개개인이 올바르게 행동하면, 모두가 그렇게 하면 반드시 좋은 사회가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윤리적으로 행동해도 손해가 없는 사람들은 윤리적일 수 있다. 나만 해도 그렇다. 하지만 조금만 비윤리적이면 엄청난 이득을 얻을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윤리적으로 살라’고 말한들 듣지 않는다. 보다 높은 수준의 법과 제도, 감시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시민운동을 할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라도 감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구체적으로 실천방법을 말해 달라.

“이것저것 다 찾다 보면 아주 어렵다. 간단하게 하나만 제대로 하면 된다. 직·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행동하면 된다.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도된다는 생각이 문제다. 또 하나, 정부가 만든 원칙이나 제도 같은 것을 잘 지키면 된다. 그게 안 되니까 자꾸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는 거다. 타인에게 피해 안 주고 원칙 잘 지키면 문제는 해결된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경우 정부 초동대처에도 문제가 있었다.

“우선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국가의 임무를 방기한 것이다. 엄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앞으로 이런 일의 재발을 막지 못한다면 자격이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제대로 결심하고 실천해야 한다.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연예인 결혼 소식은 대문짝 만하게 쓰고 세월호 과적은 한 번도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세월호 과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않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유언비어를 양산하는 등 시민의식의 문제도 제기됐다.

“사회에는 늘 그런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시하는 게 좋다. 자꾸 관심을 가져 주니까 더 극성을 부리는 것이다. 그런 글을 쓰고, 퍼 나르는 사람들은 좀 부끄럽게 생각하기 바란다. 냉정히 따져 보면 이런 일은 시민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여러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들, 공무원들 이런 사람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지 않나? 이번 일은 시민들의 안전불감증, 금전만능, 무책임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사고라고 봐야 한다.”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한 비판도 있다.

“우리 언론은 무슨 문제가 터지면 모든 책임을 위로만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기관장, 장관,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 다만 비판은 하되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릴 필요가 있다. 가령 한 초등학교에서 사고가 났는데 그걸 교육부 장관에게 책임지라고 한다면 그 학교에 교장은 있을 필요가 있겠나? 냉철한 비판이 아쉽다.”

세월호 이후를 생각할 시점이다.

“죄의식만 갖고 살아서는 안 된다. 물론 속죄는 해야 한다. 앞으로는 다른 생명을 잘 보호하고 우리나라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게 진정한 속죄다. 죄의식이 큰 만큼 속죄도 크게 해야 한다. 당장 교통신호도 잘 지키고, 남에게 해로운 음식은 팔지 말고, 사소한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것부터 잘 실천해야 한다. 요약하면 안전과 생명 이 두 가지를 중시하자. 그리고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따지고 보면 ‘돈타령’하다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돈과 생명을 바꿨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젊은 세대를 위해 한 말씀 해 달라.

“정말 미안하다. 기성세대를 대표해서 젊은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그러나 원망만 해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의 잘못을 본받지 말고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내가 중학교 때 ‘어른들을 이해하자’는 건방진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같은 부탁을 하고 싶다. 기성세대는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험악한 세상을 살았다. 이해해 달라는 얘기는 그냥 봐주고 넘어가라는 말이 아니다. 어른들이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달라는 거다.”

1938년생인 손 교수는 올해 희수(喜壽)다. 3년 후면 팔순이지만 여전히 활동이 왕성하다.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80년대 기독교 인권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손 교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이사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전국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학자로서는 서울대 교수, 한국철학회장, 동덕여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부터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를 맡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사회 원로로서 여러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손 교수이지만 안산에 마련된 희생자 정부분향소에는 차마 가지 못하고 있다.

“어른들이 어린 사람들의 장례식에 가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고요. 나이 든 나를 보면 꽃 같은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이 더 아파할 것 같기도 해서요.” 손 교수는 조만간 서울역 등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찾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글·최경호 / 사진·오상민 기자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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