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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방임도 ‘학대’… 신체·정신적 후유증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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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 오후 7시 40분쯤 인천계양경찰서 계산지구대에 한 통의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며칠 동안 아이들끼리만 있는 것 같아 불안해요. 누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신고 접수 직후 현장에 출동한 강모(38) 경사는 A(39·여) 씨의 집 문을 여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A씨의 세 자녀는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방에 있었다. 쓰레기로 가득한 방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거실에는 인분이 묻어 있는 이불과 기저귀가 썩은 채로 나뒹굴었고 부엌 싱크대에는 먹다 남은 음식쓰레기와 그릇이 뒤엉켜 있었다. 한마디로 집 전체가 쓰레기장이었다. 강 경사는 “집 내부가 쓰레기와 악취로 아비규환이었다.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가 쌓인 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TV를 보고 있는 모습에 더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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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따르면 지방에서 근무하는 A씨의 남편은 한 달에 한 번 집에 올 정도로 집안일에 무관심했다. A씨는 야간에 요양병원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수년 동안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A씨 부부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자녀들은 쓰레기와 함께 살아야 했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열일곱인 큰아들을 비롯해 열세살 둘째 아들, 아홉살 큰딸, 일곱살 작은딸 등 네 자녀가 있다. 둘째는 지적 장애를 앓고 있어서 오히려 아홉살짜리 여자아이가 오빠와 막내를 돌봐야 했다. 주로 밖으로 나돈다는 큰아들은 경찰이 출동했을 때도 집에 없었다.

경찰의 요청을 받은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가 A씨의 집에 가서 아이들을 살펴보니 두 딸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다. 만성 변비로 복수가 찬 큰딸은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나머지 아이들은 아동보호기관에 맡겨졌다.

아동학대의 후유증은 전방위적으로 나타난다. 신체적인 후유증은 물론이고 심리적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특히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유아기에 학대를 겪으면 그 후유증이 퇴행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지난해 4월 부산 수영구 공립 어린이집 학대 피해 어린이의 부모들은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심하게 보채는 등 아이들이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고 호소했다.

아동학대로 인한 정서적 후유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감정조절과 대인관계의 어려움이다. 반복되는 학대 과정에서 감정을 억압하고 있다가 한순간 폭발하거나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학대받고 자란 아이들은 자존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극히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제때 치료를 잘 받으면 아동학대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부모의 동의 없이는 강제로 치료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학대 판정을 받은 아이들은 15~20차례 정도의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효과가 있지만 상당수 부모들이 ‘효과 없다’며 몇 번 해보고 거부한다”면서 “학대에 따른 후유증은 상담 등을 꾸준히 받으면 치유될 수 있는 만큼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아동방임의 정의·개념 구체화 및 처벌 강화 필요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인천 ‘쓰레기 더미 4남매’ 사건을 계기로 아동방임의 정의와 개념을 구체화하고 가해자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아동복지법’ 개정 입법이 추진된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은 “아동방임의 명확한 정의, 방임 가해자와 신고 의무자의 처벌을 신체적 아동학대와 동일하게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최근 발간한 ‘2012 전국 아동학대현황 보고서’를 보면 아동방임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2012년 아동학대로 숨진 아이는 모두 10명으로 이 가운데 8명이 방임 내지 방임에 신체·정서적 학대 등이 합쳐진 중복학대로 사망했다.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아동학대 유형인 방임은 재발 가능성이 높고 신체·정서적 학대나 범죄로 이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현행 아동복지법에서는 아동방임의 개념과 처벌 규정 등이 모호해 신고 의무자(의사·교사·사회복지사 등)나 수사당국이 아동방임가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선진국은 학교에서 예비 부모교육을 하는 등 어린 나이부터 양육에 대해 배운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양육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결혼하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아이를 방치하다 보니 방임을 비롯한 학대가 악순환처럼 계속 일어난다”고 말했다.

글·최경호 기자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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