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헌옷 있으면 세탁해서 보내주세요”

1

 

서울역에는 다양한 이미지가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구 서울역사 건물과 함께 대형쇼핑몰들이 비추는 화려한 조명, 타향살이를 하는 이들에게는 푸근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그리고 길거리 한구석에 남루한 차림으로 자신의 몸을 누인 노숙인. 서울역을 떠올리면 늘 따라다니는 모습이다. 현재 서울역 부근에서만 200여 명의 노숙인들이 집 없이 먹고 잔다. 이들을 지나치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무관심 내지는 경멸이다. 술과 땀에 찌든 냄새로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는 이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봐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민 옷깃 사이로 찬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11월의 날씨에도 자신의 몸으로만 추위를 견디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다가가기엔 이상하게 낯설다. 이들에게 서울역 ‘큰형님’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취한 노숙인들을 데려다가 다독이고, 아픈 데는 없는지 묻고 담소도 주고받는다. 겨울을 이겨낼 따뜻한 옷과 신발을 모아서 배달하기도 한다. 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의 장준기 경위(53)다. “그래도 가끔이지만 ‘오빠’나 ‘삼촌’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하.” 듬직한 체구에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이 정말 ‘형님’ 같은 장 경위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2

장 경위는 자신을 노숙인 관리 담당이라며 일반 경찰서나 파출소에는 없는 ‘특수직’으로 소개했다. 주 5일 아침 8시 조금 넘어서 출근해 밤 11시 정도에야 끝난다. 노숙인들에게 문제가 발생하는 시간이 보통 출근시간 전후와 심야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노숙인들과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15년째 노숙인들 벗… 7년 전부터 방한의류·신발 배달

벌써 햇수로 15년째다. 장 경위가 파출소 부소장으로 부임할 당시는 IMF 외환위기가 휩쓸고 지나간 시기라 노숙인들이 급증해있을 무렵이었다. 특히 서울역에 한꺼번에 모여들어 구걸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역과 연결된 빌딩의 출근자들을 대상으로 구걸해 신고도 많았다. 술에 취한 노숙인들은 행패도 부리고 성희롱도 했다. “서울역파출소 직원들에게도 동시에 불똥이 튄 거죠. 갑자기 예상치 못한 노숙인 민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니까요. 다른 직원들도 꺼려하는 일이었습니다.”

장 경위의 존재가 노숙인들에게 처음부터 달가울 리는 없었다. ‘짭새’, ‘순사’로 불리며 모두들 피했다. “노숙인들을 억압하고 감시·통제하는 차원으로만 바라보니 다가가기도 어려웠죠. 그래서 이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당장 필요한 게 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장 경위가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것은 노숙인들에게는 그들을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그들과 함께 보내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노숙인들을 붙들고 그들이 구제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대포폰, 차, 통장 등 범죄의 이용 대상이 되는 예비 피해자라는 것을 일러주었다. 또 새롭게 시도한 것은 이발 봉사다.

3“선생님이시던 아버지는 바쁜 와중에도 우리 4형제의 머리카락은 직접 잘라주셨습니다. 그때 쓰던 미용도구(바리깡)도 아직 가지고 있고요. 노숙인들의 청결을 위해 이발을 해 주기로 했습니다.” 장 경위는 전문가 수준인 한 노숙인과 도움을 주기로 한 미용사와 함께 이발 봉사를 시작했다. 이발하려는 사람이 400명 가까이 몰려서 번호표를 나눠줘야 할 정도가 된 적도 있다.

곧 겨울이다. 이맘때쯤부터는 노숙인들에게 곱절의 고통이 찾아온다. 찬바람의 고통은 동사(凍死)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장 경위가 따뜻한 방한의류와 신발을 모아 배달하기 시작한 것은 7년 전부터다. 매년 혹한기마다 노숙인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되는 가장 필요한 물품이다. 당시 장 경위의 소문을 듣고 경기도에 거주하는 박예진 씨가 파출소로 헌옷을 모아 보내오며 시작됐다. 장 경위는 “그때 이후로 저도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옷과 신발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하나 둘씩 모인 것들이 꽤나 많아져서 노숙인들에게 나눠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다. 굳게 입을 다물었던 노숙인들은 서서히 경계를 풀었다. 허물없는 친구 사이가 되기 시작했다. 김재철(가명·40대) 씨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을 때도 장준기 경위는 자신의 일처럼 기뻤다고 말했다. 김 씨는 고아 출신으로 호적도 없이 서울역에서만 30여 년간 노숙생활을 했다. 불법으로 서울역 플랫폼을 드나들며 짐을 나르던 김 씨에게 범칙금이 계속 부과돼 80만원에 달하게 된 것을 보고 장 경위는 그 돈을 갚아주며 돈을 벌 때마다 조금씩 갚으라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통장을 만들고 돈을 모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인적사항이 없어 구청과 법원, 동사무소를 전전한 지 2년 만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김 씨는 장 경위의 도움으로 법원에서 “한양 김 씨의 창설을 허가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노숙인들이 ‘스스로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서울역 주변도 달라지고 있다. 행패나 싸움도 크게 줄었다. “재미있는 것은 ‘장 경위 힘들게 하지 말자’며 서로서로 격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저로서는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올해 ‘최귀동 인류애 봉사상’… “은퇴해도 계속할 겁니다”

그는 이런 공적으로 올해 ‘제3회 최귀동 인류애 봉사상’을 수상했다. ‘최귀동 인류애 봉사상’은 부유한 집의 자제였다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됐던 최귀동 할아버지가 충북 음성군 무극천 밑에서 동냥을 해서 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 것을 기려 만들어진 상이다. 장 경위는 “높은 사람들, 잘된 사람들이 칭찬해 주는 것보다 나와 같이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참 좋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 경위의 따뜻한 행보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렇게 저를 찾는 이들이 많은데 한시도 쉴 수 없죠. 은퇴해서도 계속할 겁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노숙인들에 대한 시선이다. “이들은 ‘나와 조금 다른 사람’이지 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실제로 범죄행위를 하는 노숙인들은 5퍼센트 미만입니다. 노숙인들을 우리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 봐주세요. 예비 범죄자가 아닌 그냥 동네아저씨, 할아버지로요. 동정 어린 시선보다는 평범하게 대해 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장 경위는 더 많은 옷과 신발이 필요하다며 홍보를 부탁했다.

“헌옷을 그냥 쓰레기로 버리지 말고 세탁해서 서울역파출소로 보내주세요. 지금은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어진 헌옷 한 벌이 또 다른 누군가의 동사를 막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게 하는 생명보험이거든요.” 오늘도 서울역 큰형님은 노숙인들의 안위를 살피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글·박지현 기자 2014.11.24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