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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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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세월호 침몰사고로 슬픔이 짙게 드리운 진도에 희망의 촛불을 비추고 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4월 27일 기준으로 700 여개 단체 1만6천여 명이 현장을 다녀갔거나 지금도 봉사를 하고 있다. 종교단체부터 기업단위 봉사단, 구세군, 적십자, 병원 무료진료단, 약사회, 지자체, 일반 봉사단체 등 다양한 단체들이 실종자 가족들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이라도 드세요. 건강한 모습으로 아이들 만나셔야죠.”

“…”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머물고 있는 진도실내체육관 곳곳에서는 끼니를 챙기도록 독려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가족들은 말없이 손사래를 칠 뿐 수저를 들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들은 차마 강권하지 못하고 한편에 쟁반을 내려놓은 뒤 조용히 물러나왔다. 그리고는 걸레를 들고 체육관 구석구석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환풍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수백 명이 생활하다 보니 금세 먼지가 쌓이고 공기는 탁하다. 하지만 청소는 커녕 주변 정리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자원봉사자들은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닦아주는 심정으로 체육관 곳곳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이름 밝히기를 원치 않은 한 자원봉사자는 “민간봉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안타깝지만 모두들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사흘 전부터 식사와 옷가지를 챙겨드리고 청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업 제쳐두고 각지에서 몰려들어

기자가 팽목항을 처음 찾은 날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닷새째인 지난 20일. 오열과 절규로 뒤범벅된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는 실종자 가족 뒤로 온기가 번지고 있었다. 생업조차 제쳐두고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며칠째 갈아입지 못한 옷가지를 수거해 세탁한 뒤 가족들에게 다시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담요와 이불 등 손빨래로는 버거운 세탁도 이들의 몫이었다. 대형 쓰레기봉투를 들고 이곳저곳을 누비는 사람들은 진도 군립 예술단원들. 이들은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된 상황에서 차마 연주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면서 악기를 내려놓고 현장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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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을 구하느라 미처 탈출하지 못해 주검으로 발견된 고 (故) 박지영 씨의 대학 선후배들과 교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언론을 통해 박지영 씨가 동문임을 알게 된 수원과학대에서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지원해 지금도 100여 명의 학생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수원과학대 4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한 자원봉사자는 “취업을 생각하면 도서관에서 자격증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계속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통에 집중이 안 되더군요. 또래 학우는 고귀한 희생정신을 보여줬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달려왔습니다”라고 말했다.

팽목항 한쪽에서는 가족들의 휴대폰을 충전해 주는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독특한 자원봉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휴대폰 배터리 충전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이었다. 가족들은 혹시라도 연락이 올까 24시간 휴대폰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팽목항의 여러 자원봉사 천막 중에서도 휴대폰 충전소는 유독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배터리 충전을 맡고 있는 한 자원봉사자는 “한꺼번에 100대까지 충전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혼잡하지는 않지만, ‘배터리가 떨어져 휴대폰이 꺼져 있었는데 몰랐다’고 발을 구르는 실종자 가족을 보면 왠지 내가 죄를 지은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르는 진도체육관과 팽목항 일대, 유족들이 거치는 병원 등 구석구석에서 말없이 몸과 마음을 다해 봉사하는 중이다.

무료 급식부터 생필품 지급, 청소와 분리수거, 빨래까지 실종자 가족을 위한 생활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이미 보름을 훌쩍 넘긴 상태이지만 자원봉사자들은 힘든 내색 없이 최대한 감정을 억누른 채 묵묵히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유난히 말을 아낀다. 서로 일을 교대할 때도 가벼운 눈맞춤이 오갈 뿐이고 함께 밥을 먹는 동안에도 최대한 신속하고 조심스럽게 식사를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난다. 서로 ‘수고가 많으시다’거나 ‘힘내세요’라는 격려라도 건넬 만하건만, 그저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할 뿐 목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았다.

한 자원봉사자는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자원봉사자들의 육체적인 수고는 오히려 사치가 아니겠느냐”며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암함 유가족도 봉사활동 참여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신분도 밝히지 않고 봉사활동만 했다. 30일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은 천안함 희생자 유가족들이 그랬다.

침몰사고 15일째인 이날 오후 2시 진도실내체육관. 천안함 희생자 유가족 28명이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이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진도군 자원봉사센터가 나눠준 연두색 조끼를 입고 곧바로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에 있던 실종자 가족 50여 명에게는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충격이 큰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천안함 유가족들은 체육관에 흩어져 걸레로 의자와 바닥을 닦고, 구석구석 쓰레기를 치웠다. 가족들에게 저녁 식사를 나눠주고 빨래도 했다. 천안함 희생자 유가족은 4일간 머물며 묵묵히 일에만 매달렸다.

천안함 유족 대표 이인옥(천안함 폭침 희생자 고(故) 이용상 하사의 아버지) 씨는 “천안함 폭침 1년 뒤에도 아들이 살아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실종자 가족의 마음은)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씨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비록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겠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나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글·정일환(프리랜서 기자) 201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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