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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나에게 책은 OO이다 "숨 쉬면 안될 듯이 몰입하며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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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그렇더라고요. 과거와 현재 왕래하면서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고인들과의 대화도 가능하고…. 가장 좋은 친구를 사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기대(58) 씨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책벌레’였다. 1970년대에 구입했을 만한 커다란 안경. 낡은 성경과 두툼한 휴대용 기도문을 들고 거구의 몸을 느릿하게 움직이는, 마치 과거에서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전문 직업인이 아니면서 자신을 토라 연구가로 소개할 만큼 종교에 심취한 ‘괴짜’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씨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다가 종교에 관심을 갖게된 공무원이다. 30년간 공직을 지키며 현재 서울 서대문구청 종합상황실 실장을 맡고 있다. 20대부터 한의원 약제사, 초·중·고교 과외선생, 통역 가이드, 중국소설 번역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 공무원이 됐다.

어린시절 가난해서 책을 사볼 돈이 없었던 그는 학교 도서관에 파묻혀 살았다. 중학생 시절부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독서의 흐름이 그렇더라고요. 동화, 소설, 철학, 종교서적 등으로 이어지면서 심층적인 영역에 관심이 생기게 되는 순간이 오죠.”

중학교 1,2학년 때 이미 <죄와 벌> <테스> <주홍글씨> <부활> 등 고전소설을 즐겨 읽고 쇼펜하우어의 <자살론>, <니체 전집>,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등을 섭렵했다. “이미 그때부터 철학적인 마음의 갈구가 심화된 상태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부터는 유교 경전과 도교 경전을 탐독했다.

책은 모이고 쌓였다. 집안 책장으로 안 돼서 방까지 차고 넘치던 책은 빨래를 널 수도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그는 결국 2000년 12월 4톤 트럭에 1만권을 채워 충북 진천의 이삿짐 보관센터 창고로 보낸 뒤 14년째 보관료를 물고 있다.

그런 책들을 어느 시간에 다 읽을까? 그는 “많이 읽다 보니까 속도가 빨라지더라”고 말했다. 이 씨는 책을 대각선 방향으로 읽는다. 200페이지 정도 분량은 한 시간 정도에 읽는다. 이렇게 각 분야들을 통섭하다 보니 심화된 내용이 궁금해졌다.

그가 즐겨 읽던 책의 장르 중 하나는 무협지였다. 무협지의 배경이 도교·유교·불교 등을 뿌리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더욱 매료됐다. 그는 수백 권에 이르는 무협지를 읽고 300여 종을 번역했다.

그의 탐독은 자연스레 외국어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그는 중국어, 영어, 히브리어에 능통하다. 모두 원문을 읽기 위해서다.

“원문으로 읽어서 느끼는 감동은 번역본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말했다. <탈무드> 전질도 심층적으로 읽기 위해 원문으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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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년 역사의 지혜 담긴 성경 읽다 종교에 심취

종교에 대한 심취는 그렇게 시작됐다. 3천년 역사의 지혜가 담긴 오묘한 성경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대교를 연구하면서 토라를 알게 됐죠. 이 과거 인류문명사회의 황금시기에 이뤄졌던 파편들이 모여서 종교에 흩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우주의 청사진을 담고 있는 것이 토라라고 생각하고요.” 그는 시편 119편 142절을 펼쳤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이 씨에게 종교는 진리였다.

토라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히브리 원어로 토라는 ‘하나님의 법(율법)’이라는 뜻입니다.” 토라는 아브라함의 종교로 알려진 유대교의 율법서다. 좁게는 모세오경(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넓게는 구약성서 전체를 말한다.

성서만 수백 번 이상 읽었다. 그가 펼친 성경은 닳고 닳아 책장을 살짝만 잘못 넘겨도 찢어질 것 같았다. 누렇게 바랜 종이는 붉은 줄과 메모로 가득했다. “미칠 정도로 봤습니다. 완전히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호흡을 하면 안 되는 것과도 같았지요.” 그는 독서도 그런 몰입의 일종이라고 했다. “독서를 어느 방에서 하느냐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모든 책은 세계와 연결돼 있으니까요.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게 돼요. 철학적인 용어로는 지혜라고 하지요. 어떻게 보면 문제의 해결점은 지혜에 있어요. 지혜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니까요.”

이 씨에게 종교는 삶이다. 토라에 나오는 법은 매우 엄격하다.

몸, 음식, 교육 등 삶의 전반에 관련한 지침이 들어 있다. 토라에서는 채소, 과일 등의 곡식만 먹도록 하고 육식을 금한다. 술도 그렇다. 흙, 산성으로 된 몸에 산성인 술을 부으면 신과 멀어지게 된다. 토라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은 그의 꿈이기도 하다. “신의 자비와 사랑을 닮고 싶은 것이죠. 인간으로서 우리가 세상에 유익을 베푸는 것만큼 훌륭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가 탐구하는 영역은 철학의 깊이를 뛰어넘은 지 오래인 듯했다. 과거에 머무를 것만 같은 그의 꿈은 누구보다 앞서 있고 원대해 보였다.

글·박지현 / 사진·전민규 기자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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