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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전교생 46명이 꽃피운 문화융성의 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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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개봉한 영화 <천국의 아이들>은 문제아 청소년들이 뮤지컬을 통해 놀라운 변화를 맞게됐다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2014년, 영화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던 기적을 보여주는 학교가 있다.

10월 중순, 가을 바람이 고요한 들녘을 가르자 누런 벼들은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살랑댔다. 경기 화성시 양감면에 위치한 아주 작은 시골학교 대강당에는 힘찬 합주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사창초등학교 전교생 46명이 내는 악기 소리다.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등 46개의 악기는 제각각 소리를 찾아 화음을 맞춰갔다.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바이올린을 쥔 아이들, 제 몸보다 큰 첼로를 켜는 아이들, 얼굴이 터져나갈 듯 트럼본을 부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장난끼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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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이 악기를 손에 잡은 건 불과 5개월 전이다. 사창초등학교는 화성시 문화재단을 통해 학생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악기와 강습을 지원받았다. 학생들은 7명의 전문 연주자들에게 매주 정기교육을 받고 아이들끼리 모여서 연습도 한다. 처음에는 악기를 잡는 방법조차 몰랐던 아이들은 공연을 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오케스트라 단원인 아이들은 방과후 뮤지컬 배우로 변신한다.

매주 홍익대학교의 극단 배우들에게 뮤지컬을 배우고 연기·노래·춤 등 각자 하고 싶은 분야를 골라 연습한다. 지난해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것으로 아이들 모두 주·조연급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발군의 실력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이병칠 사창초등학교 교장은 지난해 부임 당시를 떠올렸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었어요. 복도에서 뛰어노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이 아이들이 뛰어놀게끔 하자는 게 첫번째 목표였습니다.”

46명 소수의 학생들이 함께할 수 있는 활동으로 뮤지컬과 오케스트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자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연습한 뮤지컬 <며느리 방귀 복방귀>는 아이들 스스로에게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가르쳤다. 2~3분 정도 되는 자신의 분량을 위해 아이들은 두 달간 연습에 매달렸다. 뮤지컬에서 해설사 역할을 맡았다는 원규리(12) 양은 “정말 많이 떨렸지만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한 것 같아요”라며 귀여운 앞니를 드러냈다.

하나의 작품에서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던 것이다. 뮤지컬에서 ‘칠뜨기’ 역할과 비보이를 담당했던 김명현(13) 군은 춤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다. 내성적이었던 김 군에게는 ‘댄스스포츠 선수’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적응이 유독 어려웠던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뮤지컬과 오케스트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영진(13) 군은 조용했던 성격과 달리 주인공 며느리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해냈다고 한다. 영진 군은 “처음에는 떨렸지만 정말 재밌었다”고 말했다.

적응 어려웠던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자신감 회복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문일(12) 군은 처음에는 아주 조용하고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4학년 때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학을 오니까 모든 게 낯설었다”고 고백한 문일 군은 뮤지컬에서 주·조연급인 시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는 그는 오케스트라에서는 트럼본을 맡고 있다. 문일 군은 “트럼본은 호흡하기는 힘들지만 한 악기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어 정말 좋다”면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라고 했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멜로디가 좋은 것 같다”고 말하는 문일 군은 졸업하기 싫은 이유 중 하나가 오케스트라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이은희(9) 양과 이민영(8) 군은 바이올린을 켜는 남매다. 은희 양은 “바이올린이 너무 재밌어요. 소리도 예쁘고 채도 예쁘고…. 들어보실래요?”라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이올린을 쥐더니 연주를 선보인다. 최상돈 교무부장은 “수동적이었던 아이들이 오케스트라와 뮤지컬을 시작한 이후 자발성과 도전정신이 높아졌다”며 “학교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뿌듯해 했다.

이병칠 교장은 감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릴 때 덧셈·뺄셈 못한다고 큰일나지는 않지만 감성 발달이 안 되면 큰일”이라면서 “뮤지컬과 오케스트라 외에 태권도도 배우고 댄스스포츠, 미술 등 다양한 예술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연말에 화성시가 주최하는 연주회에 참가하고 내년 2월에는 서울 대학로에서 뮤지컬 공연을 할 계획이다. 미래에 배우이자 음악가로 성장할 것만 같은 이 아이들의 기적 같은 드라마는 여기저기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흘러가고 있다.

글·박지현 기자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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