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힘 희롱의 전성시대’. 2014년은 ‘갑을 논란’의 정점을 찍은 한해였다. ‘힘희롱’은 특권층이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막말과 폭언 등으로 직원들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피해를 주는 등의 사례를 지칭한 말이다. 올해는 특히 각계각층의 지위남용 사례들이 줄을 이으며 올해의 키워드를 장식했다.
최근 물의를 빚은 ‘땅콩 회항’ 사건은 항공사 부사장이 승무원의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며 비행기를 회항시켜 사무장과 승무원을 강제로 내리게 하면서 불거졌다. ‘땅콩(미친) 분노(nuts-rage)’라는 조롱 섞인 별칭을 얻으며 전 세계적으로 전파를 타기도 한 이 사건으로 ‘사상 초유의 갑질’이라는 비판과 함께 국민들의 분노도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직장인들은 ‘갑’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직장인> 매거진에서 지난해 실시한 ‘최악의 갑질’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윽박지르기’로 26.9퍼센트(172명)를 차지했다. ‘나이 차이, 직급 차이 다 무시하고 무조건 반말로 지껄이기’가 25.6퍼센트(163명)로 뒤를 이으며 언어폭력에 상처를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해진 업무 외에 개인적인 일까지 다 시키기’ 20.2퍼센트(129명), ‘금요일 오후에 대뜸 전화해서는 월요일 오전까지 자료 달라고 하기’ 18.1퍼센트(115명), ‘일은 득달같이 시키면서 비용은 마감기한 지나서 결제해 주기’ 4.2퍼센트(27명), ‘무슨 날이나 때만 되면 선물이나 접대 요구하기’ 3.8퍼센트(24명), ‘기타’ 1.3퍼센트(8명) 순으로 답한 바 있다.
‘권력형 성추행’도 기승이었다. 최근 서울시향 대표는 폭언과 막말을 일삼고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았다.
지식의 상아탑으로 불리는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국립대학교 강모 교수는 한 대회에서 인턴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이외에도 몇 개의 사립대 교수 등이 성문제 피의자로 전락했음에도 진상조사를 이유로 여전히 강의를 진행하는 등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 국립중앙의료원장 윤모 씨도 20대 비정규직 여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전 국회의장도 강원도의 한 골프장에서 20대 여성 캐디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성문제는 2차 피해 심각… 가해자 처벌은 5퍼센트에 불과
성문제 피해로 더 문제가 되는 건 ‘2차 피해’다. 성추행 피해를 회사에 알린 뒤 부당해고나 보복성 징계, 왕따 등 2차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35퍼센트에 달한다. 박모 씨는 피해자를 도와주려다가 협박을 당했다성추행 가해자가 처벌받는 경우는 5퍼센트에 불과하다. “(피해자를) 도와주면 근무평가에 반영해서 공무직 전환을 힘들게 하겠다. 내가 쟤 어떻게 하나 한번 봐라. 내가 밟아줄 테니까 한번 지켜봐라”고 하며 협박했다고 전했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수치스럽고, 알려지면 소위 ‘밥줄’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한동안 떨어야 했다. 민원들이 제기되는 가운데 개선 방안으로 대두되는 것은 ‘엄중한 처벌’이다. 여성가족부에서는 <성폭력특별법 시행 20년을 점검한다>에서 법적 체질개선과 처벌 강화 등을 성과로 꼽으며 더욱 강력한 법제화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의 체감도를 직접 조사해 정책반영 정도를 점검할 계획이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대리점 갑을관계’가 개선됐는지 체감도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본사와 대리점 간 거래관계에 대한 체감도 조사다. 이는 지난해 남양유업의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가 논란이 된 것이 계기였다. 남양유업은 대리점에 강제로 제품을 구입하게 하고 대형 유통업체 판매사원 임금도 대리점에 전가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23억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받고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남양유업 사태로 사회 전반에 만연한 본사와 대리점 간 갑을문화를 청산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동반성장위원회의 대리점 체감도 조사로 이어졌다.
건물의 갑을관계도 개선한다. 앞으로 220만명으로 추산되는 모든 상가임차인은 건물주가 바뀌어도 5년간의 계약기간을 보장받는다. 상가주인이 별다른 이유 없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막으면 임차인은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자영업의 최대 핵심 애로사항인 권리금보호방안은 임차인이 상가건물주와 상가주인(임대인)인 갑의 횡포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권리금을 법제화하고 임차인에게 대항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글·박지현 기자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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