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인 드라마가 있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생>이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직장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해 직장인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드라마 첫 회에 나오는 회사 엘리베이터 장면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주인공인 장그래 인턴이 엘리베이터에 오르려 하지만, 이미 다른 인턴 동기들로 빽빽하게 채워진 엘리베이터 안에는 그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때 한 인턴 동기가 장그래를 향해 “여기에 네 자리는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이는 검정고시 출신에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장그래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양한 스펙까지 쌓은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극중 장그래가 고졸 출신 인턴이라는 이유로 다른 인턴 동기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장면에서는 출신 지역과 학교, 계층 등을 기준으로 편을 가르는 우리 사회의 연고주의가 여실히 나타났다.
장그래는 인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만, 정규직이 아닌 2년 계약직으로 채용된다. 내세울 거 하나 없는 장그래의 씁쓸한 이야기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그만큼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다.
출신 지역과 학교 등을 기준으로 편을 가르고, 그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을 따돌리는 문화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불쑥 나타난 게 아닌 초·중·고등학교에서부터 학습된 고질적인 문제다.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최준영 교수는 “생물학적·심리적 발달시기인 청소년기에 집단따돌림을 당하면 발달장애나 사회적 부적응이 일어나기 쉽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영향이 청소년기에 그치지 않고 성인이 된 후에도 지속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직장 내 집단따돌림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사회지도층 솔선수범·강력한 처벌 의지 중요
2011년 1월 취업 포털사이트인 ‘사람인’에서 조사한 바로는 응답대상 직장인의 45퍼센트가 재직 중인 직장에 집단따돌림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전체 응답자의 61.3퍼센트가 직장 내 집단따돌림 현상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했으며, 58.3퍼센트는 집단따돌림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퇴사한 직원이 있다고 응답했다. 직장 내 집단따돌림은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동료 억압으로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스트레스의 극단적 형태로 정의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업의 구조조정과 감량경영, 인수합병(M&A) 등으로 인한 조직구성원들의 직무 불안정 증가와 성과주의 인적자원관리 시스템 도입에 따른 조직 내 구성원 간의 경쟁 심화를 직장 내 집단따돌림의 원인으로 꼽는다.
이 현상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양상이 청소년 사회의 집단따돌림에 비해 더 은밀하고 자연스럽게 진행된다는 데 있다. 이는 직장 내 집단따돌림이 청소년들과 달리 폭력을 수반하지 않고 따돌림의 피해자 역시 피해를 속으로 삭이거나 직장을 그만두는 식으로 도피해 버리는 까닭이다.
집단따돌림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과 조직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피해당사자인 개인에게는 직장에 대한 소속감 결여와 직무만족 감소, 자신감 상실, 신경쇠약, 우울증 등과 같은 스트레스성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조직구성원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박경규 서강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직장 내 집단따돌림은 조직구성원 간에 불신을 조장해 결국 조직의 효율성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는 곧 기업의 생산성 저하와 대외적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의 무형 자산이자 경쟁력인 기업조직문화가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의 경쟁력 저하는 국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는 혈연·지연·학연 등 1차집단적 연고를 다른 사회적 관계보다 중요시하는 연고주의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의 병폐로 연고주의 문화가 지적되는 이유는 연고주의 문화의 폐쇄적·배타적 구조가 부패로 연계돼 사회구성원들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 동계올림픽 개최국 러시아는 금메달 13개로 종합 1위를 차지했는데, 이 중 금메달 3개가 쇼트트랙 안현수(현 빅토르안)선수에게서 나왔다.
안현수는 한국 스포츠계의 파벌을 견디다 2011년 러시아로 귀화했다. 이는 연고주의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조은경 전문위원은 “연고주의가 강한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회피가 높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직장 내 집단따돌림 현상과 연고주의 문화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집단따돌림의 해결은 기업 차원에서 상생문화를 만들기 위한 교육을 꾸준히 실시하고, 따돌림이 적발됐을 때 그냥 넘기지 말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연고주의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 만큼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바꿔나가야 한다는 게 조 전문위원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 의지와 온정주의에 입각하지 않은 강력한 처벌 의지가 필요하다.
글·정혜선 기자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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