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역시 이상화였다. ‘빙속 여제’ 이상화(25·서울시청)가 한국 선수단의 소치올림픽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2연패를 이뤄냈다.
이상화는 12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미터에서 1, 2차 레이스 합계 74초70으로 우승했다. 2차 레이스에서 기록한 37초28은 올림픽 신기록(종전 카트리오나 르메이돈·37초30)이다. 이상화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우승 당시 세운 기록(76초09)을 4년 만에 1초39나 단축했다. 이상화는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2연패에 성공했다.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미터 연속 우승자는 보니 블레어(미국·1988-1992-1994년·3연패), 카트리오나 르메이돈(캐나다·1998-2002년·2연패)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이상화의 취미는 네일아트다. 바쁘고 고된 훈련 중 한두 시간 여유가 생기면 손톱을 예쁘게 치장했다. 그가 일상에서 누렸던 작은 즐거움이다. 여자 500미터 경기가 열린 날에도 그는 손톱을 알록달록 물들이고 출발선에 섰다.
그 중에는 황금색도 있었다. 경기 전에 손톱치장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던 그는 2차 레이스를 마치고 우승을 확정 짓자마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링크를 한 바퀴 돌면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이상화는 세계 신기록(36초36)을 보유한 500미터의 최강자였지만 금메달을 딴 뒤 “사실 올림픽에서 또 금메달을 딸 거라 생각 못했다. 올림픽이 주는 압박감과 긴장을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낸 이상화에게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75초06으로 은메달을 딴 올가 파트쿨리나(러시아)는 “마치 우사인 볼트 같았다”며 이상화를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육상 스타와 비교했다. 케빈 크로켓(캐나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코치는 “엄청난 압박감을 이겨낸 이상화는 진정한 챔피언”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상화가 세계 최강이 된 비결은 간단하다. 땀이다. 소치올림픽조직위원회 정보시스템 ‘인포 2014’에서도 이상화의 별명을 한글 그대로 ‘꿀벅지(Ggul Beok Ji)’라고 소개하고 있다. 폭발적인 스피드의 원동력인 이상화의 허벅지는 지난 여름 내내 지옥 같은 사이클 훈련을 통해 만든 것이다. 평지와 오르막으로만 구성된 산악 코스 8킬로미터를 매일 탔다. 그의 스쿼트(앉은 채로 역기를 들고 일어나는 운동) 훈련은 태릉선수촌에서도 유명하다. 여자 선수들 중 힘이 좋다는 선수도 140킬로그램 역기를 드는 데 반해 이상화는 어지간한 남자가 드는 것보다 무거운 170킬로그램을 든다.
스타트를 강화하는 노력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출발이 늦다는 건 이상화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태범(25·대한항공), 이규혁(36·서울시청) 등 남자 동료와 스타트 훈련을 함께 하면서 기량을 끌어올렸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지난해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2차 레이스에서 초반 100미터를 10초09로 찍었다. 여자 선수 역대 최고 기록이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때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이었던 김관규 빙상연맹 전무이사는 “이상화가 초반 100미터를 10초20 안에 들어오면 무조건 금메달”이라고 공언했다.
“20년 만에 즐겼습니다” 이규혁 해피엔딩 올림픽
그의 전망대로 이상화는 2차 레이스를 시작하자마자 10초17에 100미터를 넘었고, 후반에 가속이 붙으며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제 관심은 평창올림픽이다. 이상화는 2018 평창올림픽 때 29세가 된다. 그는 “평창올림픽, 아직 4년이 남아 있다. 끝나고 나서 생각할 것”이라 말은 아꼈지만 ‘강철 멘탈’을 자랑하는 빙속 여제에게 불가능은 없어 보인다.
스피드스케이팅 한국 대표팀 선수들 체격은 다들 비슷하다.
같은 경기복을 입고 스케이팅을 하면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규혁은 경기 장면을 멀리서만 봐도 금세 알아볼 수 있다. 사력을 다한 몸부림. 그의 동작은 크고 거칠다. 이규혁은 초반부터 폭발하는 스타일이다. 레이스 후반 힘이 떨어지더라도 죽어라 달린다.
이규혁이 12일(한국시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남자 1000미터에서 마지막 레이스를 펼쳤다. 중학생이던 열여섯 살 때 1994 릴레함메르 올림픽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2014 소치 대회까지 개근했다.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마지막 레이스도 이규혁다웠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쥐어짜는 주법. 이규혁은 초반부터 이를 악물고 레이스를 펼쳤다. 이규혁은 1분10초04로 레이스를 마쳤다.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는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규혁은 “지금까지 즐기지 못했던 올림픽을 즐긴 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경기를 마친 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오랜 시간 도전을 이어오면서 올림픽은 나에게 선수로서 활동하기 위한 핑계였던 것 같다. 메달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계속 출전했지만 사실 선수 생활을 계속 하고 싶어 올림픽에 나왔다. 선수로서 행복했다”고 마지막 소감을 밝혔다.
글·이해준(일간스포츠 기자)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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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