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스페셜 주먹밥 한 개 미리 내고 갈게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토스트와 주먹밥’ 가게. 대학생 임영은(22)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 앞에 섰다.
그가 먹은 것은 스‘ 페셜 주먹밥’ 한 개. 하지만 임 씨는 스페셜 주먹밥 두 개 값을 계산했다. 임 씨는 계산대 옆에 놓인 메모지에 “스페셜 주먹밥 한 개 임영은이 미리 쏜다”고 적고 주인에게서 받은 ‘미리내 쿠폰’을 보관토록 한 뒤 가게를 떠났다. 임 씨의 돈을 받은 가게 주인 최정원(52) 씨는 가게 창문에 걸린 안내판에 ‘스페셜 주먹밥 1개’라고 적었다.
잠시 후 중학생 박지훈(14) 군이 가게에 들어왔다. 박 군이 “미리내 쿠폰 사용할 수 있어요?”라고 묻자 최 씨는 자리에 앉으라고 말했다. 박 군은 스페셜 주먹밥 한 개를 주문해 먹었다. 앞서 임 씨가 미리 계산한 것이었다. 박 군은 “학원을 마치고 배가 고픈데 주머니에 돈이 모자라 미리내 쿠폰을 이용하게 됐다”며 “이름도 모르지만 미리 내주신 분께 고맙고, 저 또한 돈이 있을 때 누군가를 위해 미리 내고 싶다”고 말했다.
‘미리내가게’가 새로운 기부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리내가게’란 이용자가 돈을 미리 내면, 자신은 물론 아무나 해당 금액만큼 이용할 수 있게 한 나눔 실천운동이다. 예컨대 ‘미리내가게’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두 그릇 값을 계산하면 가게 주인은 ‘어떤 고마우신 분이 짜장면 한 그릇 값을 미리 내주셨습니다’라고 안내판에 써놓은 뒤 미리내 쿠폰을 보관함에 넣어둔다. 안내판을 본 손님이 가게에 들어와 미리내 쿠폰을 이용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짜장면 한 그릇을 내놓는다. 어려운 이웃, 어르신, 용돈이 떨어진 중학생, 지갑을 안 가져온 직장인 등 누구나 자유롭게 미리내 쿠폰을 이용할 수 있다.
미리내가게의 모티브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 서‘ 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 운동’이다. 운동에 참여하는 카페를 이용하는 손님이 커피값을 미리 계산해 놓으면 형편이 어려운 누군가가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자선운동이다.

음식점·카페 등 이용하면서 ‘나눔’ 쉽게 실천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을 알게 된 동서울대학교 전기정보제어과 김준호 교수는 이를 한국적 환경에 맞게 보완한 운영방법을 마련했다.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에서 착안했지만 좀 더 진화된 모델이다. 커피숍에 제한하지 않고 여러 가지 업종으로 참여 범위를 넓혔다. 대상도 어려운 사람에게 국한하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6월 돛을 올린 미리내가게는 기부문화를 빠르게 확산시켜 나갔다. 경남 산청의 카페 ‘후후커피숍’이 첫 미리내가게로 가입한 이래 8개월 만에 회원가게의 숫자가 150개까지 늘었다.
회원가게의 종류도 음식점·빵집·카페·주유소·목욕탕 등 다양하다.
최정원 씨가 운영하는 ‘토스트와 주먹밥’은 활발하게 운영되는 미리내가게 중 하나다. 헌혈증·폐휴대폰 등을 모아 기부하는 활동을 하다 김준호 교수와 만난 것이 미리내가게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 가게에 온 손님들에게 미리내가게의 취지를 설명하고 책자를 나눠준다.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서도 홍보하고 있다. 최 씨 가게의 단골손님은 근처 학교의 중·고교생들이다. 그는 “학생들이 찾아와 음식을 먹고 거스름돈 등 푼돈이라도 조금씩 내고 간다”면서 “그런 모습을 보면 어릴 때부터 ‘나눔’을 자연스레 실천하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미리내 쿠폰을 이용해 본 학생들은 다시 누군가를 위해 나눔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에피소드 한 토막. 한 여자아이가 엄마 심부름으로 토스트를 사러왔다가 미리내가게에 대한 설명을 듣고 거스름돈 200원을 기부하고 갔다. 거스름돈을 받아오지 않은 것을 의아해한 아이엄마가 가게를 찾아왔다. 아이 엄마는 미리내가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어려운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고 우리 아이도 용돈이 없을 때 먹을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며 2만원을 선뜻 기부하고 갔다.
경기 시흥에 위치한 미리내가게 ‘호면왕국수’는 손님이 주로 폐지 수집 등으로 생계를 잇는 독거 어르신들이다. 국수값 2천원도 내기 부담스러울 만큼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미리내가게의 입소문을 듣고 찾아와 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다 간다. 기부하는 사람도 많아져 한 번에 60그릇씩 미리 내는 경우도 있다. 가게 주인인 전은화(51) 씨는 “어려우신 분들께 국수 한 그릇이 그렇게 소중한 것인 줄 몰랐다”며 “미리내가게를 하면서 많은 용기와 보람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미리내 쿠폰의 사용 정도에 따라 가게마다 운영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고려대학교에 위치한 미리내가게는 한 장당 1천원씩인 쿠폰을 한꺼번에 모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한다. 전북 군산에 있는 ‘기부 카페’에서는 거스름돈 대신 받은 미리내 쿠폰을 두 달 동안 따로 모아서 ‘효도 세탁’이란 이름으로 독거 어르신들의 세탁비를 지원했다.
미리내운동본부의 김준호 교수는 “나눔을 어디서든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미리내가게를 1만개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기획하고 있다”며 “미리내가게를 중심으로 공동체 나눔이 생활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남형도 기자 2014.02.17
미리내가게 www.pinterest.com / mirinae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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