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집에서는 취업하기를 원했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고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을 어려운 국가에 가서 나누어 주고 싶어 코이카(KOICA) 해외봉사단에 지원했다.
2011년 6월 나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 속 만년설의 킬리만자로가 있는 탄자니아로 떠나게 됐다. 탄자니아에서 내가 파견된 곳은 옛 수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에서 버스로 이틀, 기차로 사흘이 걸리는 서쪽 가장 끝단의 키고마(Kigoma)였다. 외국인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신대륙을 개척하듯 은행은 어디에 있고, 시장은 어디가 좋으며, 채소는 뭐가 잘 나는지, 맛집은 어디에 있는지를 혼자서 알아봐야 했다. 꼭 보물섬에 간 기분이었다.
이것저것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나는 그 곳 아이들에게 내가 배웠던 많은 기술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학교에서 현장지원 사업으로 과학실을 별도로 만들어 주었고 물리교육학 전공을 살려 고등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쳤다. 내가 사는 집에 태권도장을 만들어 태권도도 가르쳤다.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배웠다. 대학 재학시절 태권도 동아리를 했던 게 도움이 됐다. 뒷마당 밭에는 무, 배추, 옥수수, 콩나물을 키워 요리를 해 주기도 했다. 아주 작은 힘으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어느 날 열여덟 살 아미지오가 터질 것 같은 배를 보여주며 복통을 호소했다. 병원에 갔더니 큰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는 학생이 감당할 만한 수술비가 있을 리 없었다. 이 딱한 사정을 주변 사람들과 인터넷 블로그에 알려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탄자니아의 한 NGO와 한국에 있는 후원자를 만나 아미지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이제 열심히 공부해 꼭 한국을 방문하리라는 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해외봉사라고 해서 거창하거나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큰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작은 일로도 얼마든지 감동을 줄 수 있다. 현지에 잘 적응해 그들과 즐겁게 한마음을 이루며 사는 게 최고의 봉사였다.
꼭 외국에 나가야만 봉사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귀국한 후 탄자니아에서 찍은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 판 수익금을 탄자니아에 장학금으로 후원했다. 마음을 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일들을 블로그를 통해서나 출판, 강연 등으로 알려나갈 계획이다. 이런 생각이 앞으로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동참하려는 후원자들에게도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글·정인선 탄자니아 봉사단원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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