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9월 19부터 10월 4일까지 16일간의 열전을 치른다. ‘아시아의 영원한 전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51년 인도 뉴델리에서 첫 팡파르를 울린 아시아경기대회는 스타의 등용문이자 명승부의 연속이었다.
제2회 마닐라 대회부터 지난 광저우 대회까지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개근’한 한국은 금메달 617개를 포함해 총 1,800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메달 하나하나에 사연이 없을 수 없지만 지금까지도 국민들 가슴에 뭉클하게 남아 있는 ‘감동’들을 되돌아본다.
첫 금 최윤칠, 女 첫 금 백옥자 6·25전쟁 직후였던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에 출전한 한국.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탓에 개막 일주일 전에야 ‘고물’ 프로펠러 비행기로 겨우 출전했지만 그래도 메달의 기쁨은 맛봤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대회 때 함기용·송길윤과 함께 1~3위를 휩쓴 최윤칠은 육상 1,500미터에서 금메달, 5,000미터에서 은메달을 땄다.
한국 여자선수 중 첫 금은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가 일궜다. 백옥자는 1970년 방콕 대회 투포환에서 14미터75센티미터로 금메달을 딴 데 이어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는 2연패에 성공했다. 백옥자는 2006년 도하 대회 때는 여자선수단 감독 자격으로 농구선수인 딸 김계령과 함께 출전하는 진기록도 남겼다.

아시아의 돌주먹에서 세계의 돌주먹이 된 김기수 한국프로복싱 사상 첫 세계챔피언인 김기수에게도 아시아경기대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무대다. 1958년 도쿄 대회에서 고교생 신분으로 웰터급에 출전한 김기수는 금메달을 목에 걸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김기수는 1966년 6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이탈리아의 리노 벤베누티에게 2-1 판정승을 거두고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김기수는 보릿고개로 신음하던 많은 국민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첫 3관왕 원신희, 첫 3연패 박종길·김진호
‘아시아의 헤라클레스’ 원신희는 1974년 테헤란 대회 역도 라이트급에서 인상(130킬로그램)·용상(165킬로그램)·합계(295킬로그램) 3관왕에 올랐다.
원신희의 다관왕 기록은 1986년 서울 대회 때 남자양궁 4관왕 양창훈에 의해 깨졌다.
사격의 박종길과 여자양궁 김진호는 1978년 방콕 대회부터 1986년 서울 대회까지 3연패에 성공했다. 그러나 김진호는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후배 서향순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동메달에 그치는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다. 단체종목 가운데는 여자핸드볼이 1990년 베이징 대회 이후 5연패를 이뤘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과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 1970년대만 해도 아시아 수영은 일본이 쥐락펴락했다. 하지만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1974년 테헤란 대회와 1978년 방콕 대회에서 자유형 400미터와 1,500미터 2연패의 기염을 토했다. 은퇴 후에도 조오련은 대한해협(1980년)과 도버해협(1982년) 횡단 등으로 한국인의 기개를 세계에 널리 알렸지만 2009년 8월 4일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
1982년 뉴델리 대회는 ‘아시아의 인어’를 위한 무대였다. 최윤희는 배영 100미터와 200미터, 그리고 개인혼영 200미터에서 금을 목에 걸며 한국수영 사상 첫 3관왕의 위업을 이뤘다. 최윤희는 1986년 서울 대회에서도 배영 100미터와 200미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개인혼영에서는 아쉽게도 금을 놓쳤다. 은퇴 후 최윤희는 열세 살이나 연상인 로커 유현상과 부부의 연을 맺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아시아를 달린 장재근·임춘애·이봉주·황영조 장재근은 두 차례 아시아신기록과 아시아경기대회 2연패를 이룬 한국육상의 간판이었다. 1982년 뉴델리 대회 때 200미터에서 한국인 최초로 21초의 벽(20초89)을 깬 데 이어 1986년 서울 대회에서 2연패에 성공했다. “밥보다 라면으로 17년을 살았다”, “우유 마시는 친구가 부러웠다”는 등 무수한 어록(?)을 남긴 임춘애는 서울 대회 최고의 스타였다. 임춘애는 800미터에서 1위로 골인한 인도의 쿠리신칼이 실격패함에 따라 행운의 금메달을 차지한 데 이어 1,500미터에서도 예상을 깨고 우승컵을 보듬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는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 홈팀의 집중견제를 뚫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황영조와 1970년생 동갑내기인 이봉주는 1998년 방콕 대회 우승으로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의 아쉬움을 달랬다.
만리장성 두 번 무너뜨린 남자탁구 1986년 9월 4일 서울대체육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남자탁구 단체전 결승에서 만난 중국은 정말 벅찬 상대였다. 1979년 이후 패배를 모르던 중국이었다.
예상외로 선전한 한국은 게임스코어 4-4로 맞선 9단식에 안재형을 내보냈다. 안재형은 7번의 동점 끝에 후이쥔을 21-16으로 누르고 코트에 드러누웠다. 안재형은 중국인 탁구선수 자오즈민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단체전의 감동은 개인전으로도 이어졌다. 열여덟 살 막내 유남규는 세계랭킹 1위 장지아량과의 준결승에서 승리한 데 이어 결승에서 중국의 마지막 자존심 후이쥔을 3-0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에 입을 맞췄다. 단체전에서는 단 한 게임도 잡지 못했던 터라 유남규의 감격은 두 배였다. AP, 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아시아의 어린 스타”라고 타전했다.
글·최경호 기자 20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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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