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선원들이 자기만 살자고 탈출할 때 박지영(22·여) 씨는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구하고자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있었다. “왜 구명조끼를 입지 않느냐”고 묻는 학생에게는 “승무원들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답했다. 꽃다운 청춘의 의로운 죽음이 전 국민을 울렸다.
박 씨의 빈소에는 많은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빈소 앞에는 ‘당신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영웅이여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등의 문구가 달린 근조 화환이 줄을 이었다. 박 씨의 시신은 고인의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자원한 경기 시흥경찰서 경찰관 9명에 의해 운구됐다. 고인의 유해는 “내가 죽으면 딸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박 씨 어머니의 바람으로 경기 광주시 오포읍 시안가족추모공원에 안치됐다.

못난 어른들로 인해 안타까운 어린 죽음이 이어졌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는 박 씨처럼 살신성인을 몸소 실천한 의인들도 있었다.
고(故) 남윤철(36) 단원고 교사는 세월호 침몰 당시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제자들을 대피시켰지만 정작 자신은 빠져 나오지 못했다. 구조된 학생들에 따르면 남 교사는 선체가 기울고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침착하라”며 학생들을 찾아 대피시켰고, 남은 학생들을 위해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 남 교사는 비상구쪽에 있어 충분히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끝까지 제자들을 챙겼다. 단원고 학생 김모 군은 “선생님이 우리를 먼저 탈출시키셨는데, 선생님이 탈출하려는 순간 물살이 거세져 물에 쓸려 떠내려갔다”며 남 교사의 마지막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고(故) 전수영 교사도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필사적으로 학생들을 탈출시켰다. 전 씨는 당시 탈출이 상대적으로 쉬운 선박의 맨 꼭대기 5층 객실에 묵었지만 위험에 처한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고(故) 최혜정(25) 교사도 당시 SNS를 통해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는 글을 올리고 학생 10여 명을 구출한 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진도 어선 20여 척은 조업 중단하고 구조 동참
남 교사의 제자인 박호진(17) 군은 여섯 살짜리 권지연 양을 구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4월 16일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에 올라온 박 군은 여학생들에게 구조 순서를 양보한 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박 군은 물에 흠뻑 젖은 채 갑판에 홀로 남겨진 권 양을 발견했고 곧바로 권 양을 안은 채 구명보트에 뛰어올랐다. 권 양은 이날 부모·오빠와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가던 길이었다. 24일 저녁 권양의 어머니가 숨진 채로 발견돼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는 진도군 어민들도 생업을 뒤로 한 채 구조작업에 매달렸다. 여객선 침몰사고 현장 인근 해역에서 조업을 하던 어민들의 신속한 구조활동이 그 누구보다 빛을 발했다. 사고 당일 진도 어선 20여 척은 오전 9시3분쯤 수협중앙회 어업정보통신국으로부터 “긴급상황 발생! 사고 현장 부근에서 조업 중인 어선들은 즉시 조업을 중단하고 인명 구조에 나서 달라”는 무선 통신을 접했다. 당시 사고 지역으로부터 20~30킬로미터가량 떨어져 조업 중이던 어선들은 수협 통신국의 구조 요청을 받은 즉시 조업을 중단하고, 한성호 등 20여 척이 사고 해역을 향해 출발해 탑승객 구조에 나섰다. 4월 17일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다 한때 실종됐던 3명의 민간 잠수부를 발견해 모두 구조하기도 했다.

실종자를 찾기 위해 잠수대원들도 24시간 밤낮없이 수색작업에 여념이 없다.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수중 어둠 속의 수색작업에 해군특전사(UDT)와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뿐 아니라 해경 잠수요원과 육군 특전사 스쿠버다이버들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8일째인 4월 23일 오전 구조와 수색작업을 위해 투입된 민·관·군 합동구조팀 잠수사 10명이 마비와 피로 누적 등의 증세를 보여 청해진함과 평택함 내에 마련된 체임버에서 감압 치료를 받고 있다.
구조작업에 참여했다가 사고가 난 안타까운 일도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 지원작업 중 머리를 다쳐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던 해군 병사가 4월 19일 끝내 숨을 거뒀다. 고(故) 윤모(21) 병장은 지난 16일 오후 4시 30분경 대조영함 내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정지시킨 뒤 형광등 교체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면서 머리가 끼이는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 당시 대조영함(4,500톤)은 세월호 사고 지원작업을 위해 현장에 투입 중이었다. 윤 병장은 응급조치 뒤 제주 한라병원에 후송돼 치료받아왔다. 그는 병장 제대를 불과 두 달 앞둔 상태에서 사고를 당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윤 병장의 영결식은 22일 오전 10시 제주방어사령부 연병장에서 거행됐다.
글·김성희 기자 201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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