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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 이젠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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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낮 12시경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포은(圃隱) 정몽주 묘소 앞뜰. 한적하던 시골 풍경이 삽시간에 왁자지껄해졌다. “야, 드디어 내렸다!”

막 도착한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경기도 용인시 대청초등학교 6학년 3·4반 학생들이 환호했다. 학교에서 이곳까지 차량으로 겨우 10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마저도 좀이 쑤셨던 듯했다.

맑고 밝은 하늘과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 선선한 바람까지 더해져 날씨는 가을 소풍하기에 딱 좋았지만, 이날 외출은 엄연히 교과수업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다만 배움의 장소가 교실에서 현장으로, 박물관으로 옮겨졌을 뿐이었다.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은 기존 전시물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역 인문학을 진흥시키기 위한 공공사업이다.

한국등잔박물관에서는 ‘조상의 정겨운 등불 그리고 시(詩) 한수’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역사·국어·읽기쓰기·미술창작 등 여러 교과목과 통합적으로 연계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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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본격적인 전시물 관람에 앞서, 학생들은 도보로 5분여 거리에 자리 잡은 포은 정몽주 묘소를 탐방했다. 현행 초등학교 교과과정에서는 4~5학년 사회·역사과목에서 이방원의 ‘하여가’, 정몽주의 ‘단심가’ 등을 통해 고려 말, 조선 초의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박물관 에듀케이터 이주연(30) 씨는 “우리 박물관에서는 교과과정과 연계된 프로그램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학생들은 배웠던 내용에 대해 친숙해서 그런지 탐방학습에 잘 집중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날 탐방학습에 참여한 김은채 양은 “학교에서 배워 정몽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오늘 묘소에 와보니 느낌이 새롭다”고 말했다.

정몽주 묘소를 탐방한 학생들은 이어 박물관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전시물 관람에 들어갔다. 이때 앞서 감상했던 시조가 연결고리가 됐다. “예전에는 어두운 밤 시를 쓰고 책을 읽기 위한 조명기구로 등잔을 사용했다”는 교육 강사의 설명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시물을 관람했다.

수원 화성 성곽의 이미지를 본떠 세운 한국등잔박물관은 지하 1층~지상 3층 공간에 등잔, 촛대, 도자기와 민화 등 약 2천여 점의 다양한 민속품을 전시하고 있다. 당시 사회·역사적 맥락과 동떨어진 전시가 되지 않도록 부엌, 사랑방, 안방, 찬방을 재현하고, 생활소품의 일부로 함께하는 등잔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물 관람을 마친 학생들은 마지막으로 앞서 감상했던 시조를 떠올리며 등잔과 관련한 시조를 지어보고, 이를 한지 부채에 직접 옮겨 적은 뒤 다채롭게 꾸며보는 미술창작활동으로 두 시간여에 걸친 프로그램을 마무리 지었다. 학생들의 시에는 이날 둘러본 등잔과 선조들의 삶, 그리고 현재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나름의 성찰이 담겨 있었다.

“지금은 조명이 대신하지만/ 등불의 아름다움은 변치 않네(오현우).”

“작지만 밝은 호롱불/ 조상의 지혜가 담긴 호롱불(신재우).”

학생들을 인솔한 대청초 조은실(37) 교사는 “지난주 사전 과제로 정몽주에 대해 조사하라는 숙제를 내줬는데, 학생들이 다들 잘해 왔다”며 “학생들에게 박물관 견학을 나들이가 아닌 교과수업의 하나로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 진지한 관람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단체관람객 위해 휴관일에도 문 열어

지난달 이곳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다녀간 초등학교 단체관람객만 600여 명이다. 한국등잔박물관은 원래 주말 관람객이 많아 월·화요일 휴관하지만,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도입 후 부터는 단체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월·화요일에도 문을 연다.

김현구 한국등잔박물관장은 “우리 조상들이 간직해 온 천년의 얼을 어린 후손들에게 전한다는 보람이 크다. 휴관일에도 출근하는 교육 강사들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국등잔박물관은 고(故) 김동휘 선생과 부인 장영숙 여사가 40여 년 동안 수집한 등잔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1997년 9월 설립했다. 김동휘 선생은 2004년 대한민국문화유산상 보존관리 부문을 수상했다. 박물관 바깥 공간에는 2,640제곱미터의 야외 전시장을 꾸며 자연석과 다양한 나무, 연못을 갖췄다. 가족단위 관람객의 가벼운 나들이에도 적합하다. 박물관 입장료는 성인 4천원(단체 3천원), 중·고·대학생 2,500원(단체 2천원)이며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참가비와 교육비는 무료다.

글과 사진·남창희 객원기자 2013.11.04

한국등잔박물관 ☎ 031-334-0797 www.deungjan.or.kr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www.museumonroa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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