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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고향은 사라져도 이웃의 정은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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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댐이 건설되면서 고향이 물에 잠긴 수몰민들이다. 대곡댐 수몰민들도 명절이 다가오면 고향이 더 그립다.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일대에 터 잡고 살던 이들은 2005년 이곳에 대곡댐이 들어서면서 마을을 등져야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대곡댐 수몰민들에게 고향마을은 늘 가슴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설을 일주일여 앞둔 1월 22일 수몰민 손수종(67) 씨와 함께 대곡댐을 찾았다.

‘끼이익~’.

대곡댐으로 들어가는 은색 철문이 열렸다. 대곡댐은 상수원 보호구역이어서 평소에는 공개되지 않는다. 관리실에서 알려준대로 자동차로 길을 따라 5분쯤 더 들어가니 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지난해 여름 가뭄과 폭염으로 대곡댐 수위는 98.2미터(만수위 122.7미터)로 낮아져 댐 중간 중간 땅이 섬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기 중간에 하얗게 얼음이 언 곳에 백련정이란 정자가, 그 옆으로 백련사가 있었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면 참 아름다웠지요.”

손수종 씨의 눈은 물에 잠기기 전 고향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는 벼농사를 짓던 논과 겨울철 마을 이웃들과 쇠친어(갈겨니의 사투리) 낚시를 했던 구곡천, 아궁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던 집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냈다. 아직도 마을 곳곳의 위치를 다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꿈에서라도 잊겠습니까.” 그는 한참을 말없이 물 밑을 내려다봤다.

손 씨는 2000년 1월 50여 년간 살았던 울주군 두동면 방리마을을 떠나야 했다. 20여 가구가 살던 방리마을은 아버지, 할아버지 등 그의 일가가 5대째 농사를 지으며 살던 곳이었다. 손 씨는 일자리 때문에 부산에서 살았던 1967년부터 군에 복무한 1972년까지를 제외하고는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평생을 방리마을에서 산 것이다. 1989년부터 마을을 떠나온 2000년까지 11년간 이장으로 마을 일을 도맡아 했다.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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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민 마시는 물 때문이니 어쩔 수 없죠”

2005년 준공된 대곡댐은 높이 52미터, 길이 190미터 규모다.

2,850만입방미터의 물을 담아둘 수 있다. 연간 3,285만입방미터의 물을 110만 울산시민들의 식수로 공급하고 연간 300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한다.

대곡댐 건설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손 씨의 고향마을인 방리와 상삼정, 하삼정, 양수정, 구석골 등 5개 마을 주민 466명(182가구·수몰면적 282만2천제곱미터)이 고향을 속절없이 등지고 외지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이들은 인근 울주군 언양읍·삼남면 혹은 부산·대구·경주 등 인근 도시로 이사 가거나 아예 먼 도시로 떠났다. 손 씨는 고향 가까이 있고 싶어 대곡댐과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언양읍으로 이사했다.

“울산시민들이 마시는 물 때문에 댐을 지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삶의 대부분이 녹아 있는 마을을 할 수 없이 떠나 살아야 하는 현실은 늘 마음이 아픕니다.”

올해로 대곡댐 수몰지에서 이주한 지 14년째. 수몰 이후에도 그는 성묘를 위해 해마다 고향을 찾았다. 고향마을은 물에 잠겼지만 인근에 조상의 산소는 남아 배를 타고 성묘를 간다. 매년 찾을 때마다 없어진 고향에 대한 감회는 새롭기만 하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매년 설·추석과 벌초기간 미리 신청을 받아 5~7인승짜리 댐 관리선을 타고 수몰민들이 성묘를 갈 수 있도록 돕는다.

손 씨뿐 아니라 466명의 대곡댐 수몰민 300~400명이 설과 추석 명절, 벌초 기간이면 배를 타고 성묘를 간다. 이들은 저마다 물 속에 잠긴 자신들의 고향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수몰 이전 마을의 모습 등을 전시한 대곡박물관과 망향정을 수시로 찾아 마음을 달랜다.

댐이 준공된 2005년부터는 마을별로 이주민 모임단체가 생겨 1년에 한두 번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틈틈이 봉사활동을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기도 한다. 고향에 살던 시절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얘깃거리다. 서로의 근황을 나눈 뒤엔 꼭 고향 얘기가 뒤따른다. 가슴 켜켜이 쌓인 고향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 때문에 옛 고향 이웃과의 정은 더 두텁고 끈끈해졌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도 옛 고향 이웃들은 마음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물에 잠겨 사라진 옛 고향에 대한 추억은 가족들 간의 정도 두텁게 했다.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 매년 성묘 때면 부산 등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사는 친척들이 빠지지 않고 모인다. “고향땅은 잃었지만 가족간 우애와 이웃간 정은 얻었지요.” 손 씨의 말이다.

그의 아들 내외는 손녀(10), 손자(3)를 꼭 데려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묘 뒤엔 대곡댐 초입에 마련된 대곡박물관에 들러 이제는 갈 수 없는 고향의 모습들을 둘러본다고 한다.

“이젠 손주들에게 할아버지 ‘고향’ 얘기 해줘야죠”

대곡댐을 나와 대곡박물관에 들렀다. 2009년 6월 개관한 이 박물관은 대곡댐이 들어선 부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청동기부터 조선시대까지 대곡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개관한 해 박물관은 수몰된 5개 마을 주민들의 사진과 소소한 이야기, 마을풍경 등을 담은 91쪽짜리 도록 <나의 살던 고향은>을 발간하기도 했다. 1층에 마련된 전시실과 도록에 담긴 사진을 살펴보던 손수종 씨의 눈이 다시금 추억 속으로 젖어들었다. 그는 이번 설에 성묘를 다녀온 뒤 손자·손녀와 함께 박물관을 둘러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동안은 아이들이 너무 어려 제가 직접 손자·손녀에게 고향땅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어요. 이제는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손주들의 가슴속에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이전부터 대대로 살아온 고향땅이 특별한 의미로 남았으면 합니다.”

글과 사진·이보람(세계일보 기자) 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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