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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당신에게 ‘빨간약’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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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배우 고두심씨는 한 방송 드라마에 치매 노인으로 출연했습니다. 그는 ‘빨간약(머큐로크롬)’을 가슴에 바르며 “엄마가 가슴이 아파, 가슴이 아파”라고 울부짖었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자식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를 약으로라도 고쳐보겠다는 겁니다. 몸에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듯 마음에도 상처가 나면 약과 같은 치유가 필요합니다. ‘마음을 위한 빨간약’을 우리는 요즘 ‘힐링(Healing·치유)’이라 부릅니다.

마음의 치유라는 의미에서 힐링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3년입니다. 어느 교회가 미국에서 들여온 한 교육 프로그램 이름에 이 단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후 서민들에게 안정과 희망을 찾아주자는 취지로 힐링 프로젝트가 간간이 등장했습니다. 2000년 들어 힐링을 종교적인 영성 수련법으로 제시한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힐링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힐링은 ‘지친 피부를 치료하자’는 의미의 화장품 문구나 요가 등 경직된 몸을 풀어 심신의 안정을 구하자는 의미로 종종 쓰였습니다.

힐링은 마음의 위안으로 의미가 확대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키웠습니다. 음악치료·미술치료 등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푸는 여러 가지 방안이 곧 힐링이라는 이름을 달았습니다. 이제 힐링은 심신의 피로를 푸는 방식을 대변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왜 한국인은 힐링에 집착할까요. 빠른 경제성장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성공과 출세, 경쟁과 승리에 집착했습니다.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고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는 것이 사회적 미덕이었습니다. 억척스럽게 일해서 물질적 삶은 풍족해졌지만 삶의 질은 나빠졌습니다.

힐링이 급속하게 한국인들에게 녹아든 것은 그만큼 산업화과정에서 입은 상처를 시급히 치료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빠르고 바쁘게 살아오면서 지쳐 있던 한국인들이 찾던 ‘그 무엇’이 힐링이었던 거죠.

21세기 들어 정신건강이 신체건강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각박한 삶이 개인의 정신건강에 나쁘다는 반성도 일었습니다. 주5일제가 정착되면서 힐링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야근·특근 수당보다 편안하게 쉬고 휴가를 선호하는 것이 삶의 주목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삶의 질에 대한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마음가짐이 힐링이라는 단어와 함께 한국인들의 삶 속으로 퍼졌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벌어놓은 돈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커졌습니다. 힐링은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주는 마법의 단어가 됐습니다.

 

주5일제 정착되면서 ‘힐링’ 의미 더 빛 발해

힐링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처음 힐링은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아를 위한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힐링을 바라는 사람들이 중년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직장에 목숨을 걸고 주말을 고스란히 반납해오던 중년들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본래 자신의 삶의 목적인 가족으로 돌아가 가족의 행복을 진정한 힐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0년대 들어 가족과 함께하는 캠핑 등의 레저가 급속히 성장한 것도 이런 변화를 방증합니다. 가정이 힐링하는 목적입니다. 나를 위한 힐링에서 가족을 위한, 가족과 함께하는 힐링으로, 힐링이 또 한 번 달라지고 있습니다.

글·박상주 기자

 

화제의 신간 <한국 사회와 그 적들>

우리는 왜 상처받는가

4프랑스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아담도 이브도 없는>에는 소리 지르는 한국인 운전자에게 일본인 주인공이 자기 잘못이 없음에도 ‘한국인이니까’ 무조건 사과부터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문제가 생기면 소리부터 지르고, 절대 양보하려 하지 않는 한국인의 다혈질 근성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국 사회와 그 적들>은 위와 같은 한국인의 콤플렉스를 진단하는 책이다. 심리학자 이나미 박사는 한국인이 불행한 이유를 물질·허식·교육·집단 등 12가지 콤플렉스에서 찾는다. 저자는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 중 하나로 ‘포스트모던형 인간’과 ‘부족형 인간’의 공존을 꼽는다.

포스트모던형 인간은 ‘나’만 중시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죄의식이 없는 인간형이다. 반면 부족형 인간은 ‘나와 남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은’ 인간형으로 집단만을 중시한다. 저자는 이 두 집단의 차이가 빈번한 갈등을 일으키며 윤리의식 없이 제 욕망을 좇는 것과, 지나치게 집단만을 강요하는 자세 모두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이나미 박사가 말하는 한국인의 12가지 콤플렉스

•물질 : ‘통장 잔고’가 곧 ‘인생 점수’라는 생각이 주를 이룬다.

•허식 : 외부로부터의 인정과 관심을 지나치게 욕망한다.

•교육 : 일류대학을 목표로 한 맹목적인 자녀양육이 아이들의 꿈을 막는다.

•집단 : ‘나’를 중요시하는 포스트모던형 인간과 ‘나와 남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은’ 부족형 인간형이 대립한다.

•불신 : 점점 거짓말에 둔감해져간다.

•세대 : 권력, 윤리적 힘 모두를 잃은 기성세대와 이를 존중하지 않는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이 사회문제를 부추긴다.

•분노 : 무작정 소리부터 지르는 다혈질 근성이 사회를 감정적으로 만든다.

•폭력 : 제어되지 않는 분노가 집단 따돌림 등 폭력으로 표출된다.

•고독 : 독립적으로 의사를 결정하지 못하는 ‘의존성 성격장애’를 앓는 사람들, 홀로 됨과 침묵을 꺼리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가족 : 명절은 더 이상 축제가 아니다.

•중독 : 알코올·도박·섹스 등 강한 자극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약한 자아 : 무속과 점술에 의지하는 사람들. 근거 없는 낙관론, 책임회피 등의 증상이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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