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대전광역시 유성구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캠퍼스에는 가을 정취가 가득했다. 문화기술(CT·Cu ltu re Technology)이란 용어를 처음 만든 원광연 교수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N25동은 울긋불긋 가을빛으로 물든 캠퍼스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문화기술대학원생들이 개발 중인 3D그래픽, 증강현실 활용 기술 등을 전시 중인 보드가 걸린 복도를 지나다 보니 ‘백남준 스튜디오’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비디오 아트라는 현대예술의 개척자를 기리는 강의실 하나쯤 있음 직하다.
원 교수의 방을 찾는 일에는 좀 더 창의력이 필요했다. 분명 전화 안내로 들은 방 번호는 3224호였다. 표기상 3층임이 분명한데, 324·325호 등은 보여도 네자릿수 방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알고보니 한 층 위다.
“처음 오는 분들은 많이 어려워해요.”
미안한 듯 웃으며 반기는 원 교수의 방은 나이를 초월한 호기심 어린 물건들로 가득했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입체 요지경들, 7년 전쯤 샀다는 ‘휴보(KAIST 개발 로봇)’ 닮은 로봇 인형까지. 휴보를 개발한 휴보랩(HUBO LAP)은 바로 옆 동이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로 있던 1995년 문화기술이란 용어를 만든 원 교수는 2005~2011년 문화기술대학원장을 지냈다. 문화기술 개념 정립과 문화기술을 선도한 성과로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국제디지털미디어아트학회 연례 컨퍼런스에서 ‘아웃스탠딩 리더십 어워드’를 수상했다.
원 교수는 “지금처럼 문화산업이 커질 줄 몰랐다”며 혁명적인 속도로 발달하는 최근의 기술 변화가 놀랍다고 했다. 문화기술은 컴퓨터, 웹, 인터랙션, 네트워크 기술 등 최근의 혁신적인 첨단기술들과 더불어 발전하고 있다.
문화기술의 원조 격인 원 교수에게 문화기술 속 ‘문화’의 정의부터 궁금했다.
“흔히 말하는 문화와 다르지 않다고 봐요. 좁은 의미로는 예술 혹은 예술 활동을 의미하고, 좀 더 넓은 의미로는 삶의 방식, 즉 사람들의 가치관·습성·행동·말 모두 문화가 아닌가요. 문화기술 역시 이를 바탕으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문화와 기술의 융합은 어느 영역까지 가능할까.
“앞으로도 기술적 측면에서 문화기술은 더욱 발전할 거라고 봐요.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광의의 문화기술 발전이에요.
모든 서비스나 상품은 다 문화 상품서비스가 될 것입니다.”
원 교수는 이미 자동차, 휴대폰과 같이 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문화상품화’ 됐음을 지적했다. 앞으로는 농수산 식품까지도, 99퍼센트의 상품과 서비스가 문화상품화될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슈가 있게 됩니다. 첫번째는 기존 상품에 어떻게 문화를 입혀 문화화할 것인가이고, 두번째는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 문제입니다.”
교육적 측면에서 볼 때 문화기술이란 큰 틀에서의 인문학과 이공학의 융합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문화기술대학원도 인문학·이공학·예술의 ‘통합 무브먼트’의 하나라는 것이다.
“가상공간인 클라우드 속에 일상생활 모두가 들어가요”
그는 좀 더 구체적인 문화기술의 발전 방향과 관련해 웹상의 가상 공간인 클라우드를 강조했다.
“앞으로 상당 부분은 클라우드로 갑니다. 지금은 클라우드가 콘텐츠를 올리고 내려받는 정보 공유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지요. 유튜브도 일종의 클라우드라고 봐요.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개념적으로 ‘거기 내가 들어가 살 수 있는 곳’이 될 거 같아요.”
가상 공간인 클라우드 안에 들어가 산다? 언뜻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공상과학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개념적으로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클라우드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지요. 모든 것이 그곳으로 통하고, 집안에서는 거실의 TV도 클라우드를 들여다보는 일종의 창문 역할을 하리라는 겁니다.”
하기야 지금도 다른 방에 있는 가족을 부를 때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조용히 문자를 날리는 시대다.
“중요한 건 클라우드에 들어가는 방법론입니다. 가정에서는 TV겠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게 스마트폰인데, 아마도 향후 나를 클라우드로 가게 해 주는 가장 효율적인 단말기는 언제나 신고 다니는 신발일 겁니다.”
나이키 운동화와 애플의 MP3 합작품이 출시된 적이 있다. 구글 글라스에 삼성전자의 갤럭시기어까지, 웨어러블 컴퓨터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러한 문화기술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네트워크라고 원 교수는 지적했다.
“지금은 3세대 이동통신에서 진화한 LTE가 나왔는데, 뭐라고 광고하죠? ‘빠르다’란 수식어만 있을 뿐이에요. 통신회사조차도 빨라서 뭐가 바뀔지 아직 모르고 있어요. 네트워크 그게 별거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네트워크 속도가 지금보다 100배 내지 1천배 정도 빨라지면 완전히 세상이 바뀔 겁니다.”
그는 앞으로 문화기술 관련 정책 과제는 ‘진화하는 네트워크를 가지고 어떠한 문화적 삶을 펼칠 수 있나’ 하는 고민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일례로, 빠른 네트워크는 공연 자체를 바꾸고 공연 관람 방법도 바꿀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국민 중 지금 연극 구경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연극이나 오페라를 TV로 보면 배우들의 화장이며 무대장식이며 뭔가 엉성하게 느껴져요. 하지만 초고속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하면 연극답게, 오페라답게 일반인들에게 그 무대의 맛을 전달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문화기술의 발전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고급 문화, 주류 문화를 체험하고 받아들이는 기회를 많이 줄 것으로 생각한다는 원 교수는 “궁극적으로 문화는 최고 수준의 복지”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게 복지 아닌가요? 행복하게 만드는 거.”
3D가 보다 입체적 체험을 강조하는 4D, 5D로 발전하고, 연극과 오페라 무대의 실험적 현장감까지 실어 나르고, 시공을 초월해 존재감을 전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문화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우리의 삶이고 행복이라는 것, 오랫동안 문화기술과 함께 숨쉬어온 원광연 교수의 진단이었다.
글·박경아 기자 20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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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