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열일곱이었지요. 학교 친구, 동네 친구 8명이 함께 의무병으로 지원했던 때가요.”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영식(81) 어르신.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어르신은 당시 6년제였던 서울중학교(현 서울고) 3학년이었다.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살던 어르신은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의 징집을 피해 경기 용인 외가로 피난을 갔다가 서울 수복 이후 집에 돌아왔다. 부모님과의 재회도 잠시, 그 해 11월 의무병 모집공고를 보고 동네 친구, 학교 친구들과 함께 학도병 신분으로 의료병에 지원했다. 전역한 때는 정전 후인 1956년 6월 30일. 어르신은 ‘정부주도 국가유공자 사업’을 통해 참전 64년 만인 지난 3월에야 국가유공자로 선정됐다. 국가보훈처가 병적 자료를 근거로 ‘정부주도 국가유공자 발굴사업’을 벌인 결과 지난 6월 18일까지 개별 신상이 확인된 사람(2만5,521명) 가운데 국가유공자로 등록 가능한 6·25전쟁 참전용사 2,187명을 찾아냈다. 종전까지 국가유공자 등록은 본인의 신청에 의해 이뤄졌으나 6·25 참전용사의 경우 이미 돌아가셨거나 생존하셔도 고령(평균 연령 84세)이어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음에 따라 올해부터 정부가 직접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이영식 어르신은 “그간 바쁘게 사느라 내가 국가유공자인지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어르신에게 입대 무렵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입대할 나이(20세)가 아니니 군번이 있나요. 그냥 서류에 이름, 나이 등을 적고 다음날 새벽 재동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였지요.”
3주가량 교육을 받고 나자 재동초등학교 운동장에 새로 뽑은 의무병을 태우고 갈 군용트럭 몇 대가 줄줄이 들어왔다.
“훈련교관이 종이봉투를 나눠주며 부모님 앞으로 편지를 쓰라 하대요. 손톱도 함께 잘라 넣고요. 사실상 유서였는데, 전쟁터에 나간다는 게 실감 나더군요.”
운동장에 나가 보니 다른 학도병 부모님들과 함께 어르신의 부모님도 오셨더란다. 그렇게 부모님 곁을 떠나 어르신과 친구들이 도착한 곳은 강원 원주지역의 야전병원이었다.
10대 후반~20대 초반 6년을 야전병원에서 보내
“도착해 보니 천막 칠 곳에 말뚝 박은 게 전부였어요. 한쪽에 미국이 지원한 천막이며 의료장비가 쌓여 있었고요. 우리에게 천막을 치라는데, 망치조차 없더군요.”
당시 의과대 교수와 학생, 간호사 등이 수술과 치료를 맡았고, 학도 의료병들은 야전병원 시설 설치와 환자 수송, 약품 전달, 식사 준비 등을 맡았다. 밤낮없이 실려오는 부상자들, 난로를 피워도 뼛속까지 저린 추위, 밤이면 생각나는 부모님….
끊임없이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로 인해 야전병원에서도 역시 부상병들의 생사가 달린 싸움이 벌어졌다.
“어느 날 복부에 총상을 입은 부상병이 도착했어요. 살기 힘들 것 같았는데, 본인이 출혈 부위를 워낙 강하게 눌러 어느 정도 지혈이 되고 복부에 박힌 총알이 피부를 뚫었을 뿐 장기 사이에 자리를 잡아 기적적으로 살아나더라고요.”
야전병원이 전선을 따라 다니다 보니 아찔한 상황들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저녁 야전병원 위치를 옮기라는 지시를 받고 장비를 수송차량에 실어 새로 야전병원을 세울 곳으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인민군 따발총 소리였어요. 다들 트럭 바닥에 납작 엎드려 무사하기만 빌었어요.” 운전병이 필사적으로 총탄을 피해 밤길을 달렸다.
“지금은 정전협정 후 60년도 더 지났지만, 그때는 언제 다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휴전 뒤에도 몇 년 더 야전병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어르신과 함께 의료병으로 지원했던 친구들 가운데 3명은 이후 육군 소위로 참전해 전사했다. 서울중학교의 경우 6·25전쟁 기간인 1회부터 6회까지의 졸업생 1,178명 중 약 40퍼센트인 457명이 참전했고, 그 가운데 35명이 전사했다.
어르신은 전역 후 야간고를 거쳐 1958년 동국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나 심한 결핵을 앓아 자퇴를 해야 했다. 이후 미군부대 군무원, 외국어학원 강사, 미국 공구업체 한국지사 근무 등을 거쳐 15년째 경기 의정부에서 작은 번역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요즘도 매일 서울 수유동 집에서 의정부까지 전철로 출퇴근을 하신다. 어르신은 젊은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당부했다. 어르신의 헌신과 지금도 그치지 않는 치열한 삶의 자세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글·박경아 기자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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