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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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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골 풍경은 천천히 낯익게 낡아간다. 앞으로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낯익음이란 고향이 시골인 사람에게는 추억의 뒷배와 같다. 그것은 타향살이가 주는 위안 그 자체이다. 내게는 전북 완주의 고산시장이 바로 그런 낯익음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고산오일장’이 열릴 때면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경운기를 타고 고산 읍내로 나가는 길은 꽤나 멀었다. 오래 잊고 있다 겨우 생각난 듯 차량 한두 대가 서두를 것 없이 지나곤 하던 한적함에도 거리는 더 멀게 느껴졌다. 동구 앞 삼거리에서 고산읍으로 이어지는 길은 만경강 상류의 흐름을 건너는 다리 너머로 구불구불, 마치 까마득한 미지의 장소를 향해 가는 듯했다. 아버지의 경운기는 그 같은 상상을 일깨우며 고산 장터에 다다랐다.

젊은 아버지는 농사꾼이자 옷장수였다. 요즘 말로 하면 ‘투잡(two job)’을 뛰는 셈이었다. 평화시장에서 옷을 도매로 받아 와서 고산 장날에 파셨다. 아버지의 옷 장사에서 얼마나 이문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다만 장사가 잘됐든 안됐든 점심 때는 꼭 돼지국밥이라든가 장터국수를 푸짐하고 맛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파장하면 내 손에는 식구들의 밥상에 오를 고기와 생선 등의 반찬거리가 들려 있곤 했다.

직장을 잡아 타향살이를 시작한 뒤로 고산시장은 고향집으로 가는 초입 같은 곳이 됐다. 버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들러 낯익은 얼굴들과 인사하면 ‘고향에 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서도 1년에 두세 번은 꼭 친정 가기 전에 시장을 보러 들렀다. 내 추억을 말할 수 있는 곳에서 가족이 함께한다는 것은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기쁨이 되곤 했다. 두 아이에게 ‘고산시장은 엄마시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월은 흐를 만큼 흘렀다. 고산 읍내를 우회해 직진하는 큰 도로가 뚫렸고, 차바퀴는 당연히 그곳을 그냥 지나쳐 빠르게 굴렀다. 몇 년이 지났는가. 최근에 나는 갑작스레, 확연히 달라진 낯익음과 아주 낯설게 맞닥뜨리는 전혀 새로운 경험을 했다.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남편과 딸아이와 함께 외식을 하러 찾은 고산시장은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이미 지난해에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완전히 새단장을 했다고 한다. 전북 지역에서 손꼽히던 오일장에서 상설시장으로 거듭났단다. 감회가 남달랐다. 추억이 남은 공간에도 시간은 흘렀다. 그간 아버지는 연로해지셨고 아이들도 훌쩍 자라서 성인의 나이가 됐다. 한우맛이 일품이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내내 낯익은 모습들의 반갑고 그리운 변모를 기분좋게 바라봤다. 어느덧 나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경운기를 타고 고산시장으로 가는 길 위에서 느릿느릿 어려지고 있었다. 추억 속의 고산시장은 그대로이지 않으면서 그대로였다.

 

글·노효순 주부. 서울 강서구 화곡동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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