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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에헴~ 오늘은 내가 왕비, 너는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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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옷은 왜 이렇게 소매가 클까요?”

“손수건처럼 쓰려고요.”

“얼굴을 가리려고요.”

궁중복식 교육시간, 이영미 한국전통한복연구원 교수의 질문에 아이들다우면서도 창의적인 답변이 쏟아진다. ‘손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정답을 알려주고 왜 그래야 했는지 조선시대의 분위기까지 설명해주자 아이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다.

조선시대 어복(御服)을 입어본 손민(11)군은 “이렇게 무거운 옷을 어떻게 입고 있나 싶기도 하지만 왕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좋다”고 했다. 이 교수는 “평소 대학생이나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도 하지만 역시 어린아이들이 더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해 교육 효과가 크다”며 “시간 제약 때문에 모든 아이들에게 옷을 입혀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5월 25일 서울 창경궁에 경북 울진 온정초등학교 19명의 어린이들이 모였다. 온정초등학교는 백암온천으로 유명한 온정면에 있는 시골 학교다. 전교생을 다 합해봐야 37명. 그중 절반이 서울나들이에 나선 셈인데 문화재청이 주최한 ‘궁궐에서 1박2일 숙박체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올해로 3회째인 궁궐 숙박체험 행사는 평소 문화유산 체험 기회가 적은 도서· 산간 지역 학생, 다문화 가족, 새터민 등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다. 한화호텔리조트·신한은행·경기도시공사 등 문화재 지킴이 기업의 후원으로 진행된다. 이 외에도 한국차문화협회가 다례체험을, 한국전통한복문화원은 궁중복식체험을 후원하는 등 행사 전체가 일종의 나눔 활동이다.

온정초등학교 도영진 교감은 “새벽부터 짐을 꾸려 올라왔기 때문에 피곤할 텐데도 아이들이 이색적인 궁궐체험에 들뜬 것 같다”며 “항상 아이들에게 더 많은 체험 기회를 주지 못해 아쉬웠는데 나눔 활동으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마련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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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기회 다 제공 못해 애석”

이번 체험은 창경궁 내전(內殿) 중 으뜸 전각인 왕비의 침전 ‘통명전(通明殿)’에서의 예절교육과 복식체험, 다례체험 등 다양한 궁궐 문화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원래 통명전은 관광객의 출입이 허용된 곳이지만 이날 다른 관광객들은 밖에서만 통명전을 둘러봐야 했다. 양해를 구하며 행사 취지를 설명하자 일반 관람객 이종구(66)씨는 “이런 프로그램이 더 많아져야 한다”며 “나는 괜찮으니 아이들이 궁궐 기둥에 담긴 세월의 손때까지 느끼고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복식체험이 끝나자 종묘관리소 전혜원씨가 궁중예절교육에 나섰다. 걸음걸이부터 말하는 방법까지 옛것 그대로 알려줬다.

올 최고 기온을 기록할 만큼 더운 날씨 때문에 힘들 법도 한데 모든 게 신기한 듯 아이들의 표정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승리(12)군은 “조선시대로 돌아간데도 나는 궁궐에는 못살 것”이라며 “이렇게 천천히 걸어야 한다니 너무 답답할 것 같다”고 웃었다.

전통 탈 만들기 체험까지 끝낸 아이들은 잘 준비를 시작했다.

단순한 관람이라면 인근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었겠지만 이번 행사는 다르다. 교육을 받던 통명전 안에 곧바로 잠자리를 마련했다. 통명전은 왕비들의 생활공간으로 조선 숙종 때 장옥정(장희빈)이 사약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왕과 왕비의 옷도 입고 그들의 예절을 배운 데 이어 실제 왕비가 자던 곳에서 잠을 청했으니 감흥이 특별할 법하다. 도영진 교감은 “단순히 구경뿐이라면 색다를 게 없지만 다양한 체험 행사와 궁궐 숙박체험이 있어 아이들이 더 즐거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날 행사는 창덕궁과 조선왕릉(태릉) 답사 등으로 진행됐다. 궁궐에서 1박2일을 보내고 돌아가면서 손지연(12)양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말로 가르쳐주신 것보다 실제로 보고 느껴보니 더 와 닿는 것 같다”며 “앞으로 역사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이날을 시작으로 5월 23일까지 매주 주말 총 4회에 걸쳐 진행된다. 문화재청은 각 기관 후원을 더 적극적으로 유치해 하반기에 다시 한번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행사를 주관한 사단법인 우리문화유산알림이 황태희씨는 “요청은 많은데 기회를 다 제공할 수 없는 게 아쉽다”며 “기업의 문화유산 나눔 활동이 더욱 확산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장원석 기자 /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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