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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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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처음 한국에 입국하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캄보디아에서 결혼중매회사를 통해 남편과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 2008년 2월. 남편이 먼저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 나중에 혼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오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놀란 게 어마어마한 공항 크기였는데요, 그 넓은 곳에서 신랑이 나를 못 찾을까봐 겁이 났습니다.

결혼중매회사 직원이 종이에 약도를 그려주었는데, 막상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전혀 도움이 안 됐습니다. 말은 안 통하지, 눈앞이 캄캄했는데 그러다가 마침내 신랑 얼굴이 짠~! 얼마나 반가운지,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한국말을 외쳤습니다. ‘오빠!’ 그 소리에 다들 쳐다보았지요. 정작 남편은 자신을 부르는 걸 모른 채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오빠 소리밖에 몰랐지만 이제는 ‘자기야’도 하고, ‘여보’ ‘당신’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렇게 시작해 이제 6년째인 한국생활, 지금은 경기 안성시에서 돈가스 식당을 합니다. 남편은 배달, 저는 주문을 받습니다. 제 한국말이 다른 다문화가정 여성들보다 빨리 늘 수 있었던 이유가 전화로 돈가스 주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행복한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 여섯 살, 세 살짜리 두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장사 준비에 들어가 오후 8시 30분에 마지막 주문을 받고 가게를 정리하는 생활을 한 지도 벌써 4년째입니다. 착한 남편, 좋은 시부모님 덕분에 막내아들이 태어나기 몇 달 전부터 친정부모님도 서울로 모셔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주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물론 여러 단체, 좋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지요.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받은 도움을 돌려드리고 싶은 생각에 사회복지사를 꿈꾸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평소보다 한 시간쯤 먼저 일어나고, 저녁에 조금씩 공부를 해 지난 8월 초등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지금은 중등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부는 컴퓨터를 통해서 한답니다. 아이들이 잘 자라고, 남편과 함께하는 장사가 잘돼서, 언젠가 사회복지사가 되는 꿈을 꾸는 저는 외모가 조금 다르고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것 말고는 여기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한국 사람입니다.

다행히 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다정하고 따뜻한 분들이랍니다. 그렇지만 아직 한국에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조금만 더 따뜻한 시선으로, 기특하고 예쁘다 하며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한국 사람이니까요….

 

글·이지현 경기도 안성시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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