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초록 글씨로 1층 유리 벽면에 ‘그린전기’라 적힌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전파사. 내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도로명주소로는 강서구 초원로에 위치해 있다. 그린전기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표창장과 상장들, 그리고 곳곳에 넓적하게 펼쳐 쌓아놓은 대형 포장용 상자들이 눈길을 끈다.
전파사에 들어섰을 때 느껴졌던 찬 기운은 그린전기 주인 진정군(72) 씨가 손님 왔다며 전기난로를 피운 덕에 금세 누그러졌다.
“저 상자들이요? 길을 오갈 때마다 버려진 상자들을 주워온 거예요.”
이렇게 상자들을 전파사 안에 모아놓으면 폐지를 팔아 살아가는 어려운 이웃이 와서 가져간다고 한다.
실내에서도 두툼한 점퍼 차림으로 지내며 혼자 있을 때에는 전기난로조차 켜지 않고 있던 진 씨는 이렇게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폐품이나 동전을 모아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나눔을 무려 20년 가까이 실천해 오고 있다.
진 씨가 동전 모으기로 나눔을 시작한 것은 1995년 6월 12일. 프랑스에서 한·일 월드컵 개최 확정 소식이 날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날부터 매일 10원 더하기 저축을 시작했다. 첫날은 10원, 다음날은 20원 하는 식으로 매일 10원씩을 더해 저축한 것이다. 27년간 다니던 전기제품 제조업체에서 은퇴하고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살면서 인근 공공기관의 경비업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바닥에 떨어진 10원짜리 동전들을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아이들은 동전치기를 하다 그냥 두고 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푼돈도 모으면 커진다는 것을 보여줘 작은 돈이라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월드컵 개최 확정을 기념해 동전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로부터 2,002일째 되던 2002년 3월 7일 진 씨는 그동안 모은 2,150만원을 출금해 한국복지재단을 통해 10세 어린이 100명에게 20만원씩 지원했다. 이후에도 그의 10원 더하기 저축은 계속돼 2003년 8월 강서구 자원봉사센터에 1천만원을 전달했다.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7년부터는 항공사에 근무하던 아들이 1달러를 건네준 것을 계기로 매일 1달러씩을 모으기 시작해 1,004일 동안 모은 1,004달러를 2000년 11월 30일 유진벨재단을 통해 ‘북한 아동결핵환자 돕기’에 기부하기도 했다.
부모의 고향이 함경도인 그는 북한이 경의선 계획을 발표한 2000년 8월 1일부터 1원 더하기 저축을 시작, 2012년 7월 12일 3천일간 모은 448만1,932원을 통일 기금으로 기부했다.
동전 모으기 관련 신기록도 세웠다. 진 씨가 10원짜리 동전 11만개로 만든 가로 6미터, 세로 4미터 크기의 초대형 태극기 동전벽화는 2009년 2월 17일 기네스 세계기록으로 공식 인증됐다.

10원 동전 11만개로 초대형 태극기 ‘기네스 기록’ 보유
전파사 한쪽 벽면을 채운 표창장과 상장들 사이에는 그가 만든 초대형 태극기 사진과 기네스협회의 공인인증서가 자리하고 있다. 주변의 표창장과 상장들은 모두 동전 한푼을 귀하게 여기는 진 씨의 절약정신과 나눔을 기리는 내용들이다.
진 씨는 지난 10월 보건복지부와 한국방송공사가 공동으로 시행한 ‘2013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진 씨는 절약을 통한 나눔이 주는 교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작은 목표가 생기면 작은 계획이 만들어져요. 그럼 씀씀이가 줄고 허튼 돈을 안 쓰게 되죠.”
그가 나눔을 실천하게 된 좀 더 깊은 동기는 자신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 때문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 품에 안겨 귀국한 진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6·25전쟁이 나면서 어머니, 동생과도 헤어져 힘든 생활을 했다. 그래서 한국어린이재단을 통해 지원할 어린이를 찾을 때에도 그가 어머니와 헤어졌던 나이인 10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다.
어린 나이에 홀로 남은 진 씨는 먹고살기 위해 서울 영등포시장, 남대문시장을 전전하며 온갖 일을 다 했다. 학력 대신 자격증이라도 따자 싶어 서른 두 번 만에 전파관리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이를 바탕으로 초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성수동의 한 전기용품 제조업체에 입사했다.
“군 제대 후 일자리를 구하러 성수동 공단에 갔더니 마침 구인공고가 붙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학력 조건이 있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 졸업장 대신 ‘모범사원이 되겠습니다’라는 혈서를 써서 제출했어요.”
이에 마음이 움직인 회사 대표가 진 씨를 채용했고, 진 씨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회사에서 먹고 자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회사에서 버리는 쓰레기 중에서 동선, 알루미늄 등을 골라 팔기 시작했다. 매달 50만~60만원씩 수입이 생겼다. 그렇게 몇 년을 모은 2천만원을 기증해 회사 통근버스 3대를 구입했다.
“당시는 회사가 청주로 이전해 있을 때였어요. 농촌지역 여성들이 우리 공장으로 일하러 다녔는데, 차편이 많지 않아 출퇴근이 불편했거든요.”
27년간 회사생활을 하며 열심히 저축해 생활이 안정됐고 아들딸도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다니지만 그는 요즘도 전파사를 운영하며 매일 아침 10시에 은행에 가서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진 씨를 만난 12월 10일 그가 보여준 통장에는 이날 오전 입금한 돈 4만920원, 잔액 529만243원이 찍혀 있었다.
“이 돈이 1천만원이 되면 또 누군가를 위해 기탁하려 해요.”
진 씨는 자신뿐 아니라 부인, 아들딸, 손자손녀 이름으로 3대가 저축하고 있다. 저축뿐 아니다. 배움에 한 맺혔던 그는 은퇴 후 50대에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중·고교 졸업 검정고시를 마치고 한국방송통신대를 거쳐 한양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통대 졸업에는 10년이 걸렸다. 친근한 동네 전파사 아저씨 모습을 한 그에게서는 절약과 나눔을 넘어 가난도 세월도 꺾지 못한 치열한 삶의 열정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글·박경아 기자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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