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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비가 와도 어르신 흐뭇한 얼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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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이 비를 많이 맞으면 안 되는데…. 너무 젖으면 어르신들이 쓰실 수가 없잖아요.” “길이 젖어서 제대로 배달이나 할 수 있을까?”

12월 9일 오후 1시 50분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 모인 봉사단원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부터 쉴 틈 없이 쏟아진 비가 좀처럼 그칠 기미를 안 보였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 곳곳엔 흙탕물이 만들어져 이동마저 어려웠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자, 자, 연탄 나눔 처음 온 거 맞아요? 이분은 얼굴이 익으신데, 많이 해 보셨겠네요?(웃음) 배달할 집을 빠르게 결정해서 연탄이 최대한 안 젖게 한 분 한 분씩 전달할게요.”

서울연탄은행 신미애 사무국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얀 우비와 노란 조끼를 입은 남녀노소 28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들은 이날 연탄을 기증하러 온 한국중부발전 직원들이다. 손수레 두 대가 등장하자 남자 직원들이 조심스레 연탄을 옮겨 실었다.

비가 와도 연탄 배달은 가능했다. 연탄 수십 장을 손수레에 실은 다음 그 위에 비닐을 덮어 비에 젖지 않게 보호했다.

이어 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덧끼었다. 여성들은 지게로 연탄을 실어 나를 채비를 끝냈다.

중계동 ‘104번지’에 있다 해서 ‘백사마을’이란 별칭이 붙은 이곳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린다. 오랜 세월 동안 경사진 불암산 자락을 따라 낡은 집들이 하나둘씩 생긴 곳이다.

재개발이 확정됐지만 아직 연탄을 때며 겨울을 나는 가구가 대다수다. 집밖으로 다 타고 하얗게 남은 연탄재 더미가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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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따뜻하게 보내게 해 줘 고맙고 고마워”

“아이고, 비도 오는데. 수고가 많으십니다.”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이 봉사단원들을 보며 반가운 웃음을 지었다. “아직 많이 남았느냐”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어르신도 있었다. 해마다 연탄 기증을 받는 주민들로서는 낯설지 않은 광경이지만, 여전히 반갑고도 걱정스러운 일이다.

마루에 난롯불을 지피며 겨울을 나는 공정순(80) 할머니는 최근 할아버지와 사별해 혼자 지낸다. 다리가 편치 않아 연탄을 가져다주는 온정의 손길이 더욱 고맙다.

“참 고맙지. 겨울이 점점 추워지니까 연탄이 없으면 안 돼요. 내가 요즘 다리가 불편해서 연탄을 가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 데 큰 도움이 돼.”

비 걱정에 노심초사하던 봉사단원들도 할머니 이야기에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 한국중부발전 이영조(52) 동반성장팀장은 “그동안 재단에 기부하거나 노후 복지시설의 개·보수를 돕는 나눔 활동을 많이 했지만 연탄 나눔은 처음”이라며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라면서 연탄을 많이 땠는데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손수레가 들어가기 어려운 비좁은 오르막길이 나왔지만 나눔 활동은 계속됐다. 단원마다 지게에 연탄을 옮겨 싣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긴 행렬로 마을이 또 한 번 들썩였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약 3.5킬로그램. 체구가 좋은 장정도 여섯장을 둘러메자 “어이쿠, 무겁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날 한국중부발전 직원들이 배달한 연탄은 1,500장. 150장씩 10가구에 혜택이 돌아갔다. 총 2만장을 기증했지만 그치지 않는 비 때문에 더 이상 연탄을 배달할 수 없었다. 단원들은 배달이 끝난 후 서로 머리에 묻은 검은색 연탄가루를 털어주거나 뒤를 돌아보며 못내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은 해마다 기업·기관·개인 등으로부터 연탄을 기증받아 백사마을처럼 연탄이 필요한 곳에서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 외에도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연탄 나눔 행진이 이어진다. 서울연탄은행은 올해 총 300만장의 연탄 나눔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많은 숫자이지만 지난해 달성한 450만장보다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탄은행 임지영 사회복지사는 “불경기로 예년보다 금전적인 후원은 줄었지만 와서 배달만이라도 할 수 없겠느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주말에는 하루 최대 7개 팀이 다녀갈 만큼 연탄 나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 꼭 필요한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글·이창균 기자 / 사진·이원근 객원기자 2013.12.16

후원 문의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 033-766-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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