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어? 자넨 누군가?”
“미래전략 특별제작 영업관리부 신입사원 송왕호입니다!”
“네가? 신입사원이야? 누가 뽑았어?”
“사장님께서 뽑았습니다.”
“내가? 너를? 왜?”
그의 천연덕스러운 ‘진상연기’에 객석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헝클어진 머리, 구겨진 셔츠 위에 목걸이처럼 걸려 있는 넥타이, 균형을 잃은 걸음에 혀가 꼬인 말투까지. 그는 늘 등장만으로 그렇게 좌중을 사로잡는다. 대한민국에서 술주정 연기를 이보다 잘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올해로 데뷔 17년 차인 개그맨 김준호(38)는 지난 3월 막을 내린 KBS <개그콘서트> ‘갑을컴퍼니’에서 술에 취해 직원도 알아보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장 역을 소화했다. 허리를 굽혀 90도로 인사하는 사원에게 “아이고, 죄송합니다. 난 내 회사인 줄 알았다”고 횡설수설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객석은 물론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방송이 나간 뒤면 SNS 공간은 ‘딱 우리 사장 얘기 같다’ ‘사람들은 웃지만 난 웃을 수가 없다’는 등 ‘갑을컴퍼니’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름 그대로 직장 내 존재하는 ‘갑을 관계’를 풍자라는 방식으로 풀어낸 ‘갑을컴퍼니’에는 다수의 현실적인 캐릭터가 등장했다. 어벙한 신입사원, 친절한 얼굴로 후배를 갈구는 선배, 히스테리로 똘똘 뭉친 노처녀 대리, 직장생활 성공 10계명이라며 회사 내 라인(줄서기)을 가르치는 부장, 늘 만취해 있는 사장까지 실제 직장에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코너는 종영됐지만 ‘갑을컴퍼니’가 꼬집은 현실은 누리꾼들 사이에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특히 최근 남양유업 사태 등 ‘갑을관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갑을컴퍼니’가 풍자한 이야기도 새삼 재조명을 받는다.
‘갑을컴퍼니’의 성공 뒤에는 밋밋한 캐릭터도 특유의 연륜과 뻔뻔한 연기로 살려내는 <개그콘서트>의 장수 개그맨 김준호가 있다. ‘갑을컴퍼니’의 히어로 김준호로부터 제작 후일담을 들어봤다.

‘갑을컴퍼니’가 막을 내린 지 두 달여가 지났습니다. 코너를 끝내며 아쉬움이 컸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런데 ‘갑’과 ‘을’이라는 소재로 큰 웃음을 선사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나중에는 캐릭터만 남고 기획했던 메시지는 흐려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막을 내리게 됐죠.”
최근 남양유업 사태도 그렇고 ‘갑’과 ‘을’의 관계가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사실 이 코너의 아이디어는 서수민 PD가 냈어요. 직원들한테 막대하는 술 취한 사장 등 직장 내 ‘갑을 관계’를 다루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을 것 같다고 아이디어를 줬고, ‘갑을컴퍼니’라는 이름이 탄생했죠.”
다양한 직장인 유형이 등장했는데,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준비하면서 팀원들이랑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인규(홍인규)는 후배를 괴롭히는 캐릭터였고, 진호(김진호)는 히스테리 부리며 남자 직원들한테 껄떡거리는 노처녀 캐릭터였죠. 막내 인석(김인석)이는 상사들의 눈치를 보는 신입사원을, 진철(김진철)이는 눈치 보는 신부장 역을 맡았죠. 요즘 ‘네가지’에 출연 중인 원구(이원구)는 제 옆을 보좌하는 술상무 역할을 연기했고요. 저희는 직장생활을 안해봤잖아요. 그래서 모니터링을 참 열심히 했어요.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이 정말 큰 도움이 됐죠. 그 외에도 직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직장 다니는 친구들 얘기도 들었죠. 그 친구들이 얘기한 게 바로 ‘술 취한 사장’이에요. 하나같이 ‘그런 사장이 꼭 있다’고 하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효종(최효종)이가 함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보인 게 기억에 남네요. 회식 자리에서 ‘갑’과 ‘을’의 자리를 정의하는 거였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사장님 옆은 고기를 구워야 하고 눈치 보여서 많이 못 먹으니 ‘을’이고, 그렇다고 맨 끝에 앉자니 수시로 소주병 나르고 재떨이 심부름을 해야 하니 ‘을’ 중의 을이라는 얘기였죠.
결론이 재미있어요. ‘회식 자리에서 최고의 갑은 뻥치고 장례식장 가는 사람이다.’ 아예 참석 자체를 안 하는 게 진정한 ‘갑’이라는 말이죠.”
취중 연기가 정말 ‘리얼’했는데,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술 취한 사장 역이니 무조건 악덕하게, 진상 부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앞으로도 사회 문제를 꼬집는 풍자개그를 시도할 건가요?
“그럼요. 그런데 사실 풍자개그는 사건의 전말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중간 과정에서는 선보이기 어려워요. 다루고 싶은 주제는 많은데, 사건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 몰라 기다리다가 시기를 놓칠 때가 더러 있죠. 그 점이 아쉬워요.”
사실 김준호씨도 기획사의 사장이자 개그맨 선배로 후배들에겐 ‘갑’중의 갑이잖아요.
“얼마 전 한 팬이 제게 ‘보스가 되지 말고 리더가 돼달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에 공감해요. 보스가 부하들이 끄는 마차에 그냥 타 있는 사람이라면 리더는 그 마차를 앞에서 끄는 사람이죠. 전 비교적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너무 겸손하지 못한가요?(웃음)”
직장 관계든 선후배 관계든 건강한 관계 정립을 위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물론 소통이죠. 회사가 커지기 전에는 몰랐는데,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제 눈치를 보는 직원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더라고요.
그래서 과자를 먹으면서 하는 간담회나 워크숍 등 소통의 장을 많이 마련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카카오톡 그룹채팅방을 활용해 직원들이랑 수시로 얘기를 나누죠. 전 직원이 함께하는 체육대회나 시무식도 최대한 진행하려고 노력해요. 이런 게 바로 ‘소통’ 아닐까요? 사실 술 마시면서 이런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다음날 일어나면 기억이 하나도 안 나더라고요.”
<개그콘서트>의 맏형 격인데, 언제까지 이 무대에 설 건가요?
“몇 달 전 김대희, 박성호 선배랑 약속한 게 하나 있어요.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1,000회까지는 무대를 지키자는 약속이었죠. 약 5년 4개월 정도 남았어요. 중간에 갑한테 정리해고를 당하지만 않는다면요.(웃음)”
글·백승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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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