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외로운 산등성이 아래로 유장한 강줄기가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놓인 자그마한 정자에는 두 현사(賢士)가 마주보고 앉아 있다. 복잡한 속세를 떠나 고아한 자연의 운치를 즐기고자 했던 문인들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고즈넉한 기운이 감돈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 표암 강세황(1713~1791)의 그림 ‘소림묘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평온함과 함께 쓸쓸함이 전해져 온다.
여백을 강조한 공간 구성 때문일까? 아름다운 풍경을 담았지만 왠지 슬픔과 외로움이 묻어난다. 아마도 붓끝에 망국의 설움이 담긴 원말 사대가의 화풍과 암울한 삶을 바라보는 표암의 심경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꽃피웠던 진경문화(眞景文化)가 절정이던 조선시대 중기에 태어난 표암은 진경산수화와 풍속화로 조선 고유색을 발현해내던 진경문화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대신 그는 현재 심사정(1707∼1769)과 더불어 명나라에서 완성된 남종문인화풍을 받아들였다. 세부적인 묘사 대신 대상을 간략하게 표현하고 강한 필선으로 윤곽을 강조하는, 또 여백을 중시하는 화풍을 따랐다. ‘소림묘옥’(성긴 숲 속의 띠풀 집)은 표암이 추구한 남종문인화풍이 잘 드러난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표암이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고 남종문인화풍을 수용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표암은 광해군 때부터 실세였던 소북(小北)계 명문가의 후손이었다. 하지만 맏형 강세윤이 과거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르다 적발되고, 이후 무신난(戊申亂) 때 반군과 내통한 혐의로 처벌을 받아 벼슬길이 막혔다. 사대부로 태어났지만 뜻을 펴지 못하고 궁핍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25세 때 어머니를 여읜 후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한 표암은 집안이 옹색해지자 처가인 안산으로 낙향했다. 그때 나이 32세.
표암은 그곳에서 30년이 넘게 농사를 짓고, 서화를 그리며 사대부 체면을 근근이 유지했다.
자연히 그의 마음에는 집권 세력과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 당시 그가 남긴 작품에 뜻을 펼치지 못하는 사대부의 상실과 실망의 심사가 반영돼 있는 이유다.
표암은 영·정조 시절에 활동했던 문인이자 예술가다. 8세에 시를 짓고 13·14세에 쓴 글씨를 얻어다 병풍을 만든 사람이 있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문학·서예·그림 등 모든 분야에서 고루 특출한 능력을 지녀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節)’이라고 칭송을 받기도 했다.
표암은 조선 후기 화단의 걸출한 인물인 단원 김홍도(1745~?)의 스승이기도 하다. 표암의 산문 <포암유고>에 실린 ‘단원기’에는 “단원은 젖니를 갈 때부터 나의 집에 드나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김홍도 등 표암 영향받은 20명 70여 점도 선보여
올해는 표암 탄생 3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각 전시공간에서는 표암의 생애를 돌아보는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
먼저 간송미술관은 5월 26일까지 ‘표암과 조선 남종화파전’이라는 이름의 춘계전시회를 진행한다. 표암의 작품을 중심으로 표암 화풍의 영향을 받은 송하 조윤형·서암 김유성·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 등 화가 20명의 남종산수화와 사군자 등 70여 점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6월 25일부터 두 달간 ‘강세황 : 예술로 꽃피운 조선 지식인의 삶’을 통해 표암의 작품을 전시한다. 서양화의 원근법을 실험한 ‘영통동구(靈通洞口)’ 등 표암의 대표작을 포함해 40여 작품을 선보이는데, 동시대 문인화가들의 작품과 그에 대한 표암의 화평을 함께 공개한다.
한편 표암의 작업을 돌아보는 학술대회도 열린다. 한국미술사학회와 표암의 묘소가 있는 충북 진천군은 7월 5일 대규모 학술대회를 열어 표암의 시·서·화 세계를 재조명한다. 안휘준 전 서울대 교수가 ‘표암 강세황을 다시 보다’란 주제로 기조 강연을 펼치고,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표암의 문집인 <표암유고>의 문학사적 의의를 발표할 예정이다. 표암의 예술세계를 시문, 회화세계, 서예와 시론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순서도 마련된다.
표암은 환갑이 되던 해인 1773년에 영조의 특명으로 영릉 참봉(종9품)으로 출사해 정조가 즉위하던 1776년에 64세로 장원급제했다. 이후 71세에는 정2품에 올라 기로소(조선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에 들어간다.
하지만 관직에 진출한 이후에도 표암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는 계속된다. 그가 칠순에 그린 자화상(보물 제590-1호)에 표현한 예법에 맞지 않는 흰 도포와 관모 차림은 이러한 표암의 정신세계를 대변한다. 그는 72세 때 청나라에 사신으로 방문했을 때 접한 서양화 기법을 인물화와 산수화에 시도하고, 76세에는 금강산 유람을 한 뒤 기행문과 실경사생화 등을 남겼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던 18세기를 새로운 화풍과 실험으로 꽃피웠던 표암의 자유로운 세계관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글·백승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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