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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암울함과 절망감을 자산 삼아 젊은이여, 끊임없이 사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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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을 내 인생의 마지막에서 두번째의 것으로 삼고 싶다. ‘마지막’이란 퍼세틱(pathetic)한 종말감과, 그럼에도 아직 한번은 더 유예로 남겨둔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겠다는 뜻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75)씨가 최근에 낸 산문집 <조용한 걸음으로>(문학과지성사)에 실린 글이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도 “일흔이라는 나이를 인생의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는 분기점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저자 역시 70대 중반이란 노년의 시간을 건너며 ‘마지막’과 ‘희망’을 언급한다. 세상에 대한 뾰족한 시각과 비판을 거둔 연륜과 관조의 여유로움 속에서 세상에 대한 재발견을 하겠다는 몸짓으로 여겨진다.

김병익씨는 “지금 내 세대에 괴로워하며 진지하게 정색하고 아프게 따지며 힘들여 셈할 일들이 얼마나 남았겠느냐”며 반문한다. 그는 “요즘 허망함을 허망함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 책에 쓰인 글이 그런 연습의 하나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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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문학인생 돌아보며 통섭적 사유 담아

김병익씨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이자 출판인이며 인문학자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5년부터 10년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며 1970년대 초 평론가 김현, 김치수 등과 함께 문학 동인지 <문학과지성>을 만들었다. <문학과지성>은 <창작과비평>과 더불어 1970년대 한국문학의 두 기둥을 이뤘다. 1975년부터 문학과지성사 대표로 일하던 그는 2000년 퇴임 후 인하대학교 국어국문과 초빙교수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초대위원장을 지냈다. 현재는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으로 있다. 기자 생활까지 포함하면 근 50년 가까이 한국 문단의 중심에서 살아온 셈이다.

그는 “평생을 문학비평을 업으로 삼으며 문인들의 글과 삶을 재단했지만 이제는 몸과 몸으로 부닥치는 치열함보다는 성찰·반성·후회를 통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술회한다.

이런 취지로 엮은 이번 책에는 기존의 두 비평집 <기억의 습작>(2009)과 <이해와 공감>(2012)을 내면서 따로 떼어놓았던 비교적 가벼운 글들이 실렸다. 저자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물러난지 10년째가 되던 201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써놓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내가 문학과지성사를 물러난 10년 동안 편안했고, 한가했고 그래서 이런저런 현실적인 일들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덕에 역사와 현실 혹은 문학과 정신들에 대한 짐을 덜어내면서 그것들을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산문집에 가깝지만 글이 넘나드는 사유의 폭은 꽤 넓다. 동료 문인이나 노년의 독서, 출판 편집, 제목 짓기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역사와 과학, 정보기술(IT)에 이르기까지 통섭적 지식인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글들로 빼곡하다. 저자는 당대의 문학인들뿐만 아니라 퀴리 부인 등 과학자들도 언급하면서 인간의 경계를 허문다.

“과학자들의 세계는 객관적이고 비정하며 탈가치적이다. 그러나 과학자는 열정적이고 진지하며 때로는 바보 같고 신비적이기도 하고 드디어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모습은 예술가들 못지 않게 뜨겁고 아름답고 그래서 인간적이다. 과학자든 예술가든 인간의 맨 모습에는 결코 세속화할 수 없는 성자의 모습이 보인다.”

김병익씨는 격동의 한국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그는 해방된 해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한글 1세대이자 대학시절 4·19혁명을 겪었다.

또한 5·16 이후 압축 경제 성장의 열매를 맛보며 역사의 부침과 영광을 함께했다. 책 속에서 모국어 세대가 맛본 지적 풍요와 역동적 혁명의 한복판을 통과했다는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이유다.

특히 그에게 4·19혁명은 10년 전의 6·25전쟁과 1950년대 전후 체제를 청산하고 반 세대 전의 광복이 채택한 민주주의의 수용을 위해 진통한 자랑스러운 역사다.

격동적인 역사의 한복판을 살아낸 그로서는 요즘 젊은이들의 절망과 방황을 바라보며 착잡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물질적 풍요는 오히려 정신적 빈곤을 가져올 수 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그 속도를 못 쫓아가는 젊은이들은 절망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내면적 성숙이 함께 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럴 여유도, 기회도 주지 않는다.”

 

“박경리·이청준은 도저한 삶을 살아온 대가”

그는 책에서 지금의 젊은이들이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유하라”고 외친다. 사유를 통해 지금의 암울함과 절망감을 자신의 자산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저자 역시 끊임없이 갈등을 양산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던 한국적 지형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떻게 살고 싶다’라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에서 비롯된 바람 덕분이라고 했다. 그 바람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가령 오늘 내가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 지금 인연들에 충실하자는 것,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을 정직하게 살아내는 일이었다고 조언했다.

백발이 성성한 김병익씨는 인터뷰 말미에 “먼저 떠나보낸 박경리·이청준 같은 당대를 풍미했던 작가들은 물질적 유혹이나 현실적 욕구에 수긍하지 않고 한평생 자신의 창작 활동만 묵묵히 해나간 ‘도저한 삶’을 살아낸 대가들”이라며 “그들의 삶에 비해 나의 삶은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하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책 곳곳에서 저자의 이런 인간적 사유의 면모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글·박미숙(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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