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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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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거리의 불빛보다 하늘의 별빛이 더 잘 보이는 전남 고흥군 점암면에서 경사가 났다. 이 동네 중학생 5명이 만든 영화가 4월 21일 막을 내린 제50회 대종상 단편영화제에서 청소년상을 수상한 것이다.

“상을 받게 될 줄 모르고 평소 입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영화제에 참석했어요.”

고흥교육지원청이 운영하는 영화캠프에 참여했다 만든 단편영화 <외계에서 온 주문, 알룽푸와>로 형·누나, 이모·삼촌들이 참여한 영화제에서 덜컥 상을 받은 점암중앙중학교 2학년 이유리양은 상 받을 때 무척 기뻤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선생님께서 ‘혹시 모르니 수상 소감을 연습해두자’ 하셨는데 소감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조금은 기대가 됐어요.”

이유리양을 비롯해 박아람·송유진양, 조철훈·이현준군 5명을 고흥군 점암중앙중 방송실에서 만났다. 겁 없이 발랄한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출연한 14분짜리 단편영화 <외계에서 온 주문, 알룽푸와>에서 보여준 모습 그대로였다. 박아람양과 이현준군은 “다들 우리 사인 받겠다고 해요”라며 활짝 웃었다.

“엄마가 엄마 친구분들에게 말씀하셔서 유튜브 조회 수 올리고 있으시대요.” 송유진양의 말에 다들 웃음이 빵 터졌다. 이들의 영화는 3월 8일부터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다. 사진을 좋아한다는 조철훈군은 “영화 촬영을 할 때 정말 즐거웠다”고 했다.

지난 4월 18일부터 21일까지 고흥만, 고흥문화회관 일원에서 열린 제50회 대종상 단편영화제에는 전국 영화인이 출품한 단편영화 200여 편 가운데 심사를 거친 50편이 상영됐으며, 여기에 이들이 만든 단편영화가 포함됐다.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나이여서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른다고 하여 붙여진 일명 ‘중2병’. 이들 점암중앙중 2학년 5명에게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중2병’이 비켜간 것일까.

고흥군은 전체 인구 6만6,300명 중 38퍼센트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다. 젊은 층 인구 감소로 점암중앙중의 전교생은 23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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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단편영화캠프’ 참가, 내친김에 영화 만들어

2학년 부담임으로 아이들의 영화캠프 활동을 지원한 최진 교사는 “우리 학교에서는 13명인 2학년을 ‘과밀학급’으로 부른다”며 “학교폭력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고 아이들끼리 생일도 다 알고지낼 정도로 친하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우리 학교가 문화 향유를 하기 어려운 농촌지역학교라는 겁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다양한 체험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고흥군 내에는 영화관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면 멀리 순천까지 나가거나 문화회관에서 비정기적으로 하는 영화 상영을 기다려야 한다. 이 같은 문화 불모지에서 아이들이 단편영화를 만든 것은 주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흥교육지원청은 대종상 단편영화제 고흥 이전 개최를 계기로 지난 1월 초 3박4일간 고흥 도화헌미술관에서 ‘청소년 단편영화캠프’를 운영했다. 화가 겸 다큐멘터리 감독인 김영민(44)씨가 재능기부 형식으로 강사를 맡아 아이들의 영화 제작을 이끌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 감독은 지난해 11월 고흥도화헌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개최한 인연으로 아이들의 강사를 맡았다.

김 감독은 캠프 참가자들 중 가장 어린 이들 5명에게 50여 개국을 여행하며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꿈을 기록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우주항공의 메카 고흥의 특성을 살린 시나리오를 상상해보라고 주문했다.

아이들과 김 감독은 3박4일 동안 지구인과 외계인의 소통, 꿈을 그린 시나리오를 완성해 영화를 촬영했다. 영화에서 아이들은 에너지가 고갈돼 고흥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다시 우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꿈 에너지를 모아 돕는 모습을 보여준다. ‘알룽푸와’는 김 감독이 만들어낸 말로 ‘태양은 항상 당신의 꿈을 비추고 있다’는 뜻을 담았다.

아이들은 영화 제작 당시 가장 힘든 것이 추위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현준군은 실감나는 연기를 하다 송유진양에게 눈물 나게 허벅지를 차였다. 꽁꽁 언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리기도 했다. 박아람양은 귤 먹는 장면 때문에 귤을 30개나 먹었다. 3박4일 동안 후반 작업까지 하는 것은 불가능하여 편집·특수효과·음향효과 등 후반 작업은 김 감독의 손으로 이뤄졌다.

대종상 단편영화제 본선 진출에 이어 청소년상 수상까지, 갑자기 ‘스타’가 되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고교 진학이 고민이고, 방과 후에는 농사일을 돕기에 바쁘다. 물론 조금씩 변화가 있다.

다들 내년에도 영화캠프에 참여하기를 희망했다. 조철훈군은 예고 진학을 생각하게 됐고, 박아람양은 엄마가 되면 아이들에게 보여줄 게 생겨 기쁘다고 했다.

고흥교육지원청의 전형권 장학사는 “영화를 보는 눈을 넓히고자 올해 처음 ‘청소년 단편영화캠프’를 개최하게 됐다”며 “영화는 문화 소외지역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문화적 감성 키우기에 매우 좋은 소재”라고 말했다.

‘태양은 항상 당신의 꿈을 비추고 있어요’라고 아이들 영화는 말하고 있다. 문화의 단비를 맞으면 도시 아이들이든 농촌 아이들이든 누구나 같은 꿈을 꾸며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외계에서 온 주문, 알룽푸와>가 말하고 있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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