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곳간 뒤주 구멍에 ‘타인능해(他人能解)’란 글귀가 적혀있다. 운조루 창건주인 문화 류씨 종가의 가훈으로 ‘누구나 구멍을 열어 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란다. 곳간의 쌀독이 비지 않게 항상 채워두어 주민 누구나 가져갈 수 있게 해두었다. 당시 뒤주로만 한 해 수확량의 20퍼센트를 소비했다고 한다. 옆에는 작은 가양주(집에서 만든 술) 통도 놓여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종가문화의 단면이다.
나눔과 배려를 사회적으로 솔선수범 해 온 명문 ‘종가’ 주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내년 2월 24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종가’ 특별전은 총 156건 238점의 유물에 종가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종가란 일반적으로 ‘한 성씨,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온 큰집’을 말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적선애일(積善愛日)’은 ‘밖에서는 착한 일을 쌓고, 안에서는 효를 실천한다’는 뜻이다. 종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나눔 문화이자 오랜 전승비결이다.
가훈으로 가르침을 이어오기도 한다. 최부잣집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 최씨 교동 종가에는 육훈(六訓)이 전해 내려온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등이다.
종손의 가장 큰 의무가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제사를 드리고 손님을 접대한다)’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진성 이씨 퇴계 종가 현 종손의 맏아들 이치억 씨는 “종가의 특징 중 하나는 부의 재분배”라며 “귀천에 상관없이 주민들을 초대해 대접을 했던 인정(人情)이 바로 종가 문화”라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물건이 담배합이다. 진성 이씨 주촌 종가에서 사용하던 용기다. 종손 이세준은 담배가 귀중했던 시절 접빈용 담배개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채워두었다고 한다.
‘애일당구경첩’(보물 제 1202호)은 경북 안동의 농암 이현보가 구순(90세)을 넘긴 부모에 고마움을 기념해 잔치를 벌인 그림이다. 남녀귀천을 가리지 않고 노인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
전시를 다녀오면 자신의 뿌리, 종가를 찾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손대원 연구원은 “한국 종가의 힘과 문화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현대의 개인주의·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사회적 나눔에 대한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지현 기자 / 사진·지미연 기자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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