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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물 속 경쟁자, 물 밖에선 행님아! 아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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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을 사이에 둔 전남 광양시와 경남 하동군에서는 한겨울이라도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남쪽 바다에 면한 데다 광양제철소 열기에 데워진 바람이 강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탓이라고 이 지역 사람들은 믿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7일 오전의 섬진강은 바람에 흩날린 눈발로 온통 하얗게 수를 놓은 듯했다.

섬진강에서 20년 넘게 벚굴잡이로 생업을 이어온 김기관(49)씨는 “1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큰눈”이라며 별 일 다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눈은 이내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잠수장비를 챙겨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김씨는 23년 잠수 경력의 ‘섬진강 어부’다. 섬진강 물속 바위에 붙어 사는 벚굴을 딴다. 3∼4월 벚꽃 필 무렵 속이 탱글탱글 차오르고 맛도 좋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속에서 먹잇감을 잡으려고 입을 벌린 굴이 마치 활짝 핀 벚꽃을 닮았다 해서 벚굴이라는 이도 있다. 벚굴은 주로 1~4월에 채취한다.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서 벚굴구이집을 운영하는 김씨는 성미 급한 미식가들을 위해 조금 이른 12월 초부터 잠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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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재첩이 그러하듯 최근 벚굴도 어획량이 줄어 어부들의 심사가 어지럽다. 섬진강 상류와 지류에 섬진강·주안·수어댐 등이 들어서면서 수량이 줄었다. 그 빈 자리를 광양만 바닷물이 치고 올라왔다. 섬진강은 점차 소금기를 더했고, 모래톱은 사라졌다. 수량 부족이 ‘섬진강의 바다화’를 부채질하면서 벚굴 서식지도 점차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김씨는 “섬진강변 얼추 20㎞에 걸쳐 있던 벚굴 서식지가 절반 아래로 준 듯하다”고 말했다.

7그 사이 하동에서는 김씨를 포함해 두 명에 불과하던 허가받은 어부가 지금은 6명으로 늘어났다. 맞은편의 광양에도 몇몇 마을에서 어촌계 단위로 허가를 받는 바람에 섬진강 유역 어부는 10명을 넘어섰다. 굴 서식지는 오그라드는데 어부가 늘어나면 경쟁심이 발동하는 게 당연지사이겠지만 섬진강 어부들은 그렇지 않는 듯했다.

김씨가 조업하는 수역 건너편 광양 쪽에서 어선 한 척이 눈보라를 뚫고 나타나더니 배 위에서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19년 경력의 섬진강 어부 이강권(42) 씨였다. 그는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어촌계 소속이다. 두 사람은 20년 가까이 섬진강에서 함께 잠수를 해왔지만 서로의 경계를 넘어선 일이 없다. 하동과 광양 어부들은 섬진강 가운데를 경계선 삼아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잠수 수역은 엄격히 구분돼 있지만 물 바깥에서는 ‘행님·아우님’ 하며 지낸다. 벚굴 시장정보나 장비 구입 노하우를 나누는가 하면, 무슨 일이 생기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힘을 보탠다. 조업을 마치면 저녁을 함께하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일도 이 직업의 빠뜨릴 수 없는 낙이다. 20년 가까이 같은 일을 하는 경쟁자이면서도 누구보다 서로의 처지를 잘 아는 친구다.

이들에게 영·호남은 따로 없다. 단 한 가지 ‘공동의 적’은 있다. 바로 하천의 생태계 교란이다. 섬진강 수량이 줄어들면서 강물의 염분이 증가하고 덩달아 벚굴 개체도 점차 주는 추세가 걱정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1985년 펴낸 <섬진강>이란 시집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이렇게 형성된 강줄기에는 재첩·벚굴·참게·민물장어·전어 등이 득시글했고, 전국의 미식가들 발길이 줄을 이었다. 섬진강은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져 ‘남도의 젖줄’로 불렸고, 하동과 광양을 친구처럼 팔짱을 끼고 흐른다 해서 영·호남 화합의 상징적 명소가 됐다.

그런 섬진강 물이 줄어들면서 한때 민심도 영·호남으로 갈라졌다. 섬진강의 명물 재첩도 벚굴마냥 점점 짠맛을 더해가는 하류를 떠나 중류와 상류로 서식지를 옮겨갔고, 재첩에 의존하던 지역민들의 생계마저 흔들렸다. 채취량 감소는 하동·광양 주민 사이에 채취구역을 둘러싼 다툼을 불렀다. 강 가운데 경계선을 넘어 재첩을 무단 채취한다고 헐뜯는가 하면, 애시당초 경계가 잘못 그어졌다며 재조사를 요구하는 사태로 번졌다.

하지만 갈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섬진강 주민들은 현상의 이면에 놓인 본질을 알아차렸다. 재첩 채취량 감소는 섬진강 유지수 부족에서 비롯됐고, 이는 또 상류의 댐이 방류량을 줄인 결과였다. 광양시와 하동군은 경계를 넘어 상생의 손을 맞잡았다. 2011년 11월 공동 현안을 다룰 ‘광양·하동 공생발전협의회’를 만들어 ‘섬진강 살리기’를 향한 근본적인 해법 마련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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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하동·광양의 어민회가 함께 ‘섬진강 수계 물 방류 확대 건의문’을 국토해양부에 제출하는가 하면 한국수자원공사를 찾아가 섬진강 방류량을 늘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섬진강의 주변 환경을 오래 연구해온 조기안 초당대 교수는 “광양과 하동 같은 기초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경남도와 전남도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교섭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상 대대로 섬진강 언저리에서 삶의 텃밭을 함께 가꿔온 하동·광양의 주민들은 역사적·문화적·경제적 동질성이 강하다.

비록 행정구역은 경상도·전라도로 나뉘어 있지만 모든 걸 함께 나눈다고 하동군청 기획감사실의 조문환 씨가 말했다. “ 광양 아이들이 강 건너 하동의 학교를 다녔고, 하동 사람들은 광양제철에서 일한다.” 섬진강 주민들은 과거에 그래왔듯 지금도 당면한 과제를 풀고자 머리를 맞대고 공동의 지혜를 찾아간다.

글·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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