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다카하시 도루. 사실 책 본문에서는 슬쩍 한번 언급하고 지나치는 이름이다. 그러나 조선 유학계의 이기(理氣) 논쟁을 다룬 <횡설과 수설> 은 결국 이 이름을, 이 이름으로 상징되는 하지만 식민사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에 대한 얘기다.
식민사관 극복이란 말을 보고 미리부터 통쾌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저자는 그 대의명분 때문에 그동안 우리끼리 너무 자화자찬한 게 아니었을까 하고 되묻는 쪽이다. 퇴계를 독자적 사상가로 상찬하는 것을 두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비유해 ‘퇴계 공정’이라 할 정도니까.
다카하시 도루(高橋亨·1878~1967)는 일제 관학자 1세대로 경성제대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조선인의 사상, 문화, 종교 등을 연구했다. 당연히 좋게 말할 리 없다. 바보들이지만 불쌍하기도 하니까 잘 토닥이고 가르치면 될 것 같다는 내용이다.
우리로서야 분통 터질 노릇이지만 역사적 급변기에 워낙 영향력이 컸던, 그래서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는 주장이어서 궁금하다면 직접 번역본을 찾아보길 권한다.
이기론으로 범위를 좁히자면 쟁점은 주리(主理)냐, 주기(主氣)냐다. “조선 사대부들은 이(理)와 기(氣)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한가 같은 쓸데없는 논쟁만 벌이다 망했다” “실학처럼 훌륭한 학풍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실제로는 영향력이 없었다”는 우리 귀에 익숙한 줄거리를 처음 만든 이가 다카하시 도루다.
실학에 대한 우상화 작업은 요즘 제법 수정되는 모양새다. 가치있는 개혁사상이지만 실학이 유학에 대립한다기보다 그 가운데 하나였다고 보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그렇다면 이기론은? 학창시절 추억 한 자락이 떠오를 것이다. 뭐가 뭐 위에 올라탄다는 둥, 뭐가 먼저 발하고 뭐가 나중에 따라온다는 둥 하던 알쏭달쏭한 얘기들 말이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라 이미 그때 다카하시 도루의 주장에 공감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감히 조선인을 능멸한 자의 주장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법. 그 때문에 탄생한 무기가 ‘조선 유학의 독창성’이다. 발원지인 중국을 능가한 조선만의 독창적인 철학 논쟁이 있었다는 식의 해석이다.
저자의 공격 포인트는 여기다. 반박할 욕심에 너무 오버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책 제목 그대로다. ‘횡설’은 이와 기를 가치론적으로 수평으로 대등하게 배치했다는 뜻이고, ‘수설’은 이와 기를 존재론적으로 주종 관계로 배치했다는 뜻이다.
퇴계 이황, 고봉 기대승, 우계 성혼, 남명 조식, 율곡 이이 등 조선 유학 거장들의 다툼이 결국 이 두 프레임 간 싸움이었다고 설명해나간다. 이 논리는 직접 읽어보는 게 좋겠다. 학창시절 추억 때문에 미리 겁낼 필요는 없다. 저자는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왜 그런지에 대해 반복적으로 상세히 풀어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렇다. 정작 주자는 횡설과 수설을 번갈아가며 잘 써먹었는데, 조선 유학자들은 횡설과 수설이 같은 뿌리임을 모른 채 횡설과 수설 양편으로 나뉘어 싸웠고, 그게 조선시대 이기 논쟁의 전부라는 것이다. 왜 횡설과 수설이 같은 뿌리인지 몰랐던가. 출판문화의 미발달과 경직된 사회분위기 때문이다. 중국 책을 많이 찍어서 널리 돌려 읽은 다음 논리적인 토론을 벌였어야 했는데, 부족하고 한정된 책을 읽고 자기가 읽은 부분만 옳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그 주장이 우리 집안 혹은 우리 스승의 말씀이니 배신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금, 아니 많이 허탈한 결론이다. 그럼에도 자주적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아픔과 열등감 때문에 우리만의 전통적인 그 무엇을 과대포장하고 신비화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메시지만큼은 강렬하다. 차라리 이기론을 뒤덮고 있는 신비주의 장막을 벗겨내 현대철학과 접목시켜보자는 저자의 제안은 감미롭다. 물론 저자의 주장을 어디까지 받아들이느냐는, 독자의 몫이다.
글·조태성 (서울신문 문화부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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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