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참 이상한 일은, 춘천이라는 도시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속 한편에 나른한 바람이 불어왔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대략 이런 것들이다.
까까머리 청년을 태운 춘천행 입영열차가 어느 밤의 북한강을 따라 달렸고, 수줍은 연인은 노을 내려앉는 소양호를 바라보며 데이트를 즐겼으며, 한 무리의 청춘은 강촌의 허름한 민박집에 둘러앉아 기타를 튕기며 젊음과 뜨거운 것과 사랑과 우정과 세계관 따위를 토론하고 고민했던 일들 말이다.
그리고 공지천에 피어오르던 물안개를 기다리며 들었던 김현철의 노래 ‘춘천가는 기차’. 일상의 피로로 단단해진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 놓은 그 아름다운 노래는 결국 ‘청춘’과 ‘봄’의 기억을 남겨둔채 추억으로 남게 됐다. 이제 더 이상 춘천 가는 ‘기차’는 운행되지 않는다. 매끈하게 새로 놓인 선로 위를 달리는 것은 덜컹이는 무궁화 열차가 아니다. 한 뼘 마당과 한 뼘의 하늘을 가진 어여쁜 경춘선 간이역들도 죄다 문을 닫았다. 대신 바람만큼 빠르게 달리는 전철이 춘천 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더 많이 실어 나른다.
춘천 신동면 증리 실레마을. 이곳은 1930년대 한국 소설의 축복이었던 김유정이 태어난 곳이자 그가 써 낸 서른한 편의 소설 중 <동백꽃> <봄봄> <만무방> <소낙비> 등 열두 편의 무대가 된 곳이다. 김유정역에서 2백미터쯤 떨어진 곳에 김유정문학촌이 들어앉았다. 스물아홉 해의 짧은 인생이라서 그의 마지막을 수습했던 친구들이 월북을 했고 허랑방탕한 삶으로 그 많던 가문의 재산을 홀랑 들어먹은 그의 형 때문에 김유정의 문학촌에는 변변한 유물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문학촌 내에는 김유정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곱 살에 어머니를,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읜 뒤 모성 결핍으로 한때 말을 더듬었던 김유정이, 독극물처럼 쓰고도 강렬했던 박녹주를 향한 짝사랑과 실연의 주인공이었던 김유정이, 실레마을에 금병의숙을 지어 농촌계몽활동을 벌였던 사상가 김유정이, 농촌과 도시의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신명에 빠진 글쟁이 김유정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1937년 3월 29일 새벽 달빛 속에서 희게 빛나던 배꽃을 바라보며 폐결핵으로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탁월한 언어감각을 뿜어 낸 이야기꾼이었다. 그가 숨지기 열하루 전 친구 안회남에게 보낸, 닭을 잡아먹고 기운을 차릴 돈 1백원을 융통해 달라는 절절한 편지 앞에서 문학관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은 끝내 요동을 치고 만다.

김유정문학관에 들렀던 사람들이 해설가의 설명을 듣다가 대부분 ‘아~’ 하고 무릎을 치는 이야기. 김유정의 동백꽃은 흔히 알고 있는 피처럼 붉은 꽃의 동백이 아니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예전엔 강원도에서는 노란색 꽃을 피우며 향긋하고도 알싸한 향을 내는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이라 불렀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노란색이다. 그래서 김유정의 동백꽃은 봄날이다.
50년 전에 시작된 중앙시장은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이다. 춘천 사람들의 부엌으로서 살뜰한 역할을 하던 이 전통시장은 낭만과 흥이 살아 있는 곳이다. 이름에도 ‘낭만시장’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아치형의 지붕이 있는 시장 안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천장에 매달린 반짝이는 미러볼들이다. 금방이라도 신나는 노랫소리와 함께 광대패 한 무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골목길 노점들은 저마다 예쁜 간판을 내걸었다. 과일장수도 속옷장수도 커피장수의 손수레에도 손으로 만든 앙증맞은 간판이 걸려있다.
시장의 구석구석을 알려주는 ‘낭만지도’를 한 장 뽑아들고 골목길을 누빈다. 사람 한 명 간신히 드나들 너비의 미로 같은 시장 골목에는 ‘작품’들이 숨어 있다. 천장에 대롱 매달린 조형물과 벽에 달라붙은 낡은 전선을 따라 질주하는 알록달록 미니카, 벽에서 자라난 거대한 당근, 아기자기한 벽화와 시장 상인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들(골목 갤러리)까지. 쉴 새 없이 시선을 붙잡는 터라 동시에 카메라 플래시도 시선을 따라 팡팡 터진다.
예술작품들뿐만 아니다. 낭만맛집에서는 낭만시장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를 선보이며 맛에 대한 연구를 하고, 낭만상회에서는 낭만시장의 역사와 시간, 상인들의 이야기와 물건들을 전시한다. 시장중앙통의 한가운데에는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낭만극장과 낭만광장이 있고 안내소의 역할을 하는 낭만살롱도 자리 잡았다.
시장의 낭만을 둘러보며 뜨끈뜨끈한 국물에 푸짐히 올린 순대국밥 한 그릇 맛보고 춘천에서 제일 유명한 황소표 국수집에서 신문지에 둘둘 말아 주는 국수 한 다발을 사고는 양키시장에서 미제사탕이나 과자를 뒤적거려 본다.
낭만시장을 나와 반대편 길로 걸어가면 닭갈비 골목이 나온다.
춘천에선 꿩보다 닭이다. 인구 27만명 정도의 도시에 2백 개가 넘는 닭갈비집이 존재하는 도시가 바로 춘천이다. 춘천 사람들은 닭갈비를 못 먹어 보면 춘천에 온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닭갈비는 갈비 자체가 아니라 토막 낸 닭을 포를 뜨듯 도톰하게 펴 얼큰한 양념에 재워 두었다가 갖은 야채와 함께 철판에 볶아 먹거나 숯불에 구워 먹는 요리다.
춘천닭갈비는 1960년대 허름한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하는 저렴한 안주거리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양념한 닭갈비를 숯불에 구워 먹었는데 시간이 흘러 뜨거운 철판 위에 듬성하게 썬 양배추와 양파, 파 등의 야채와 가래떡이나 고구마까지 곁들여 달달 볶아 먹게 된 것으로 발전했다.
닭갈비집은 춘천 전역에 퍼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명동과 온의동, 후평동에 닭갈비 거리가 조성돼 있다. 외지인들에겐 시청 앞 명동 닭갈비 거리가 유명하고 춘천 사람들은 좀 더 한적한 온의동이나 후평동 골목으로 간다.
사실, 유명하다는 몇몇 집에서 맛을 보았는데 맛에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취향에 따라 기름 쏙 빠지는 담백한 맛의 숯불구이 닭갈비와 여러 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풍부한 식감을 자랑하는 철판구이 닭갈비로 호불호가 갈리겠다. 물론 숯불구이든 철판구이든 적당히 고기를 골라 먹고 난 후 굵은 우동 면이나 밥을 남은 양념에 볶아먹는 것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공통점이긴 하다.
춘천에선 닭갈비만큼 유명한 것이 막국수다. 점심때가 돼 춘천의 한 막국수집에 들렀는데, 메뉴판에 ‘총떡’이라는 생소한 음식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순간 호기심이 들어 5천원 하는 총떡 한 접시를 청했다. 이윽고 등장한 재미난 이름의 총떡은 봉평 등지에서 흔하게 보던 메밀전병과 비슷한 모양새다. 다만 다른 강원도 지역의 메밀전병보다 동글동글하게 단단히 말아 낸 모습이 흡사 총대처럼 보인다(그래서 이름이 총떡이다).


총떡은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잘려 나왔는데, 맛이 궁금해 얼른 한 개를 집어 입에 넣었다. 본래 메밀은 거친 땅에서 자라는 만큼 그 맛도 소박하고 투박한 것이 정석이다.
다만 전병이나 부침개류의 메밀 음식은 조금 다르다. 솥뚜껑 번철에 기름칠을 슬쩍 하고 다소 묽게 반죽한 메밀가루를 얇게 부쳐낸 다음 몇 가지 소를 넣어 먹는 음식이라 고소한 데다가 소와 어우러지는 감칠맛이 좋다. 총떡도 그렇다. 푹 익은 김치 송송 썰고 돼지고기와 함께 양념을 한 소를 넣고는 보쌈처럼 둘둘 말아 먹는다. 고소하고 짭조름하면서 고기가 들어 있어 씹는 맛이 쏠쏠하다.
총떡 한 접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 아니겠는가. 춘천에 왔으니 춘천막걸리를 마셔봐야겠다. 신북읍 율문리의 천전양조장에서 빚어낸 소양강막걸리는 온전히 지역 내에서 생산되는 소양강 쌀로만 빚어낸다. 탁주임에도 술은 맑고 향기롭다.
1백퍼센트 우리 쌀로 담근 이 술은 다른 지역의 탁주보다 정갈하고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술이 부드러우니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고소한 메밀전병과도 잘 어울리고 알큰한 양념의 닭갈비와도 궁합이 맞겠다 싶다.
글·고선영 (여행작가) / 사진·김형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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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