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22년 만이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일하던 민경주(60) 박사는 1991년 우주센터에 발을 들였다. 그 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처음 만들어진 우주센터 창립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그로부터 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 한국이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하기까지 꼭 22년이 걸렸다.
이번 나로호 발사 성공에 대한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1990년대 초반에는 누구도 한국이 우주산업에 뛰어든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용감하게 우주센터에 뛰어든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이 오늘날 나로호 발사 성공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의 과학기술력으로 볼 때 우주발사체 성공이 늦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의 생각은 다르다. 다른 나라에서는 40~50년 만에 이룬 것을 한국은 나로호 준비 10년 만에 이뤄냈다는 것이 민 센터장의 말이다.
북한과 이란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15번째 우주센터를 지어 11번째 발사에 성공했다. 4개국 우주센터는 아직 발사에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의 우주과학기술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민경주 센터장을 2월 4일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만났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만 생활하다 1주일에 한 번 있는 연구원 회의차 대전에 올라온 길이었다. 민 센터장은 새벽 7시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오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우주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로호 발사에 성공했다. 다시 한번 축하한다.
“국내에서는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발사체도, 발사대도 모두 첫 경험이다. 발사체에 저압으로 연료를 충전하는 등 복잡한 전 과정을 성공적으로 해본 것이 가장 큰 성과다. 발사 성공을 기원한 국민에게 보답할 수 있어 행복하다.”
세 번 만에 성공했다. 시도한 것으로 치면 다섯 번 만이다. 어떤 교훈을 얻었나?
“한 번 만에 성공했다면 다들 원래 그렇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하며 우리 과학자들은 많은 것을 배웠다. 발사에 실패할 때마다 한국 우주개발 사업이 계속 성장한 것으로 봐달라.
우주 발사를 시도하면서 3,000여 쪽에 이르는 설계도를 만들어 발사체 시스템을 완성했다. 또 발사체가 음속을 돌파한 이후 수신되는 압력과 속도, 엔진 밸브의 개방 여부 등 100여 가지가 넘는 요소를 계측하고 완벽하게 추적하는 기술을 익혔다. 이런 기술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최고급 기술이다.”
많은 분야 중 우주과학기술 개발에 뛰어든 이유가 뭔가?
“조금 비장하게 들리겠다(웃음). 국력을 키우기 위해 우주과학에 뛰어들었다. 우리 민족은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었다. 그 누구도 우리 후손들만은 이런 비참한 일을 다시는 당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 국력을 단숨에 가질 수 있는 분야가 우주과학이다. 20여 년 만에 한국을 우주선진국으로 발전시켰으니 보람도 크다.”
우주발사체 기술은 각국의 국가안보와 직결된다. 그래서 기술이전이 불가능한 것으로 안다. 어떻게 기술을 얻었나?
“나로호와 관련해 공식적인 기술 이전은 없다. 다만 우리 학자들이 전공별로 나눠 러시아 과학자와 1대1로 만나 친분을 쌓았다. 러시아 학자 중에는 연세가 90이 넘는 분도 있다. 우주개발 분야에서 대선배 학자다.
우리는 그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나로우주센터 식당에서 보드카를 함께 마시며 엄청난 양의 질문을 해댔다. 친해질수록 구체적 답변을 하나씩 내놓았다. 러시아 학자들은 오후 6시면 바로 퇴근했지만 우리 학자들은 귀로 들은 분절된 정보를 기초로 밤을 새워 연구했다. 그렇게 나눈 이야기를 모두 모아 2만2,000 여 쪽에 달하는 나로호(KSLV-I) 상세설계도를 얻었다. 러시아에서 받은 우주발사체 기술은 모두 비공식적이다.”
러시아 발사체인 만큼 그 부품도 러시아산이다. 그 수많은 부품은 어떻게 구했나?
“모두 러시아 규격에 맞춰야 했다. 부품은 모두 러시아에서 구해야 했는데 3중고에 봉착했다.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구했다고 해도 가격이 비싸고 또 받을 때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가능한 한 한국에서 부품을 만들었다. 만들 수는 있지만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부품은 대만이나 일본 업체에 맡겼다. 러시아에서 생산하던 부품도 이제는 모두 국산으로 교체 가능하다.”
땅이 넓은 나라는 자국 안에서 발사체를 추적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럴 만큼 땅이 넓지 않아 추적이 어렵다던데….
“우리의 지리적 형편 때문에 필리핀 해역의 바다 위에서 추적했다. 특별하게 만든 배에 안테나를 달아 올렸다. 파도가 쳐도 배만 움직이고 계측기는 움직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가진 환경적 조건을 극복하는 것도 우주과학기술 개발 과정이었다.”
비싼 돈을 주고 러시아 기술을 샀다는 목소리도 있다.
“맞다. 러시아의 기술을 빌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단 로켓은 러시아 기술이고, 2단 로켓은 우리 기술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언제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려 보겠나? 나로호에 5,000억원이 들어 비싸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2억 달러는 러시아에 지불했고 3,000억원 정도는 한국기업들에 지급했다. 실제로 연구원의 연구비는 연 100억원 정도로 인건비에 불과하다.
러시아에서 비싸게 샀다고 하는데 우리는 발사체 하드웨어 3기를 받았다. 1기는 아직 발사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실제로 쓸 수 있는 기체다. 계약 당시 러시아가 오일달러가 없을 때 싸게 사온 것이다. 국제적으로 봐도 적은 예산, 적은 인력으로 짧은 시간 내에 성공한 편이다.”
한국의 우주과학 투자 실정은 어떤가?
“미국은 국민 1인당 14만원에 달하는 예산을 우주개발에 투자한다. 한국은 4,000원 수준이다. 일본도 1만원이 넘고 프랑스는 1만4,000원 수준이다. 우리도 1만원 수준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우주개발은 국민적 지지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 억척스럽고 강단 있는 우리 과학자들을 국민이 믿어준다면 반드시 큰 성과를 보여줄 자신이 있다.”
한국 우주기술은 인공위성 등 경제적인 목적에 국한돼 있다.
“지금은 발사체 개발 수준으로 경제적 실익이 중요하다. 스페이스셔틀같은 운반체 수준까지 올라야 과학적 목적으로 우주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국제우주정거장에 참여하려면 훨씬 높은 수준의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기다려달라.”
글·박상주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