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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완성도·흥행성적 할리우드와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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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베니스 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소식은 감독 개인의 탁월함에 기인한 바도 있지만 그간 한국 영화가 쌓아 온 국제적 명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국제적 평가의 증가와 국내 영화의 흥행신장이다.

2000년대 들어 임권택의 칸 감독상 수상이라든가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홍상수, 이창동 등의 국제영화제 수상 및 진출은 한국 영화의 국제적 평가에 해당한다. <실미도>, <왕의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등 1천만 관객 흥행영화들이 등장하며 한국 영화가 자국 시장에서 흥행하고, 나아가 아시아에 한류열풍을 일으키는 등 한국 영화의 놀라운 발전이 주목을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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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흥행기록을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2012년 상반기 1백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무려 20여 편이나 된다. 한국영화의 달라진 수준은 얼마만큼인가. 한국 영화의 특징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영화는 기술적ㆍ서사적 완성도에 있어서 할리우드 영화와 비견된다. 같은 수준이라면 한국 관객들은 한국 영화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관심 있는 소재, 친숙한 대사, 호감 가는 배우 등 한국 영화에 대한 문화적 감수성 때문이다. 반면에 할리우드 영화는 관심이 덜한 서구적 소재, 귀에 와닿지 않는 대사, 이질적인 배우 등 모든 면에서 한국 관객들에게 불리하다.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가 유리했던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 스케일 큰 스펙터클 장면, 첨단 특수효과 때문이었다. 한국 영화가 최근 이 세 가지를 다 구비함에 따라 할리우드 영화에 전혀 뒤지지 않는 서사적, 기술적 완성도를 구사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를 능가하는 흥행수준을 보여 준다.

둘째, 한국 영화는 이제 장르의 마술사라는 할리우드 수준에 거의 육박한다. 한국 영화가 멜로드라마, 조폭코미디의 왕국이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그러나 최근 한국 영화는 종래에 할 수 없었던 장르들을 소화해 내는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터부시하던 소재들-전쟁영화, 스포츠영화, 다큐멘터리, 재난영화, 법정영화, 도둑영화 등에 도전해 성공함으로써 이제 어떤 장르도 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 <국가대표>, <워낭소리>, <해운대>, <부러진 화살>, <도둑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국내 영화의 신장에 이어 국제적으로도 많은 콜을 받는 게 사실이다. 그 첫번째 신호탄은 리메이크 판권이 해외에 팔려 나간 것이다. 안병기의 <폰>, 박찬욱의 <올드 보이>, 곽재용의 <엽기적인 그녀>, 김지운의 <장화홍련> 등이 해외에 팔려 리메이크되었다.

스타들의 해외진출 역시 눈에 띄게 늘었다. 장동건, 전지현, 이병헌, 송혜교 등 스타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했고 그에 더해 한류 바람이 꾸준히 불어 온다.

배용준, 권상우, 장나라, 장근석, 류시원 등의 스타들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한국 영화에 도움을 주었다. 감독들의 진출은 전에 없이 늘었다. 최초의 할리우드 메이저영화 진출은 뉴욕대 출신 신예 이승무 감독의 <워리어스 웨이>였다. 박찬욱은 <스토커>, 김지운은 <라스트 스탠드> 등으로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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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시장은 어떤가. 이번 베니스 그랑프리 수상은 김기덕 감독으로서는 새삼스럽지 않다. 김기덕은 한국 영화감독 중 3대 국제영화제 수상을 석권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어쩌면 국제 유명세를 따지면 김기덕 감독이 베스트 원임에 분명하다. 뒤이어 그 예술성을 인정받는 감독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으며 이제 한국 영화의 국제적 지명도는 의심할 여지 없이 상승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쓰라린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국내에서 푸대접받는 이유를 영화정책과 배급, 상영제도의 불합리에 있다고 푸념하곤 했다. 같은 국제적 명성을 누리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이창동의 경우는 상업성이 강해서 살아남지만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는 철저히 외면당하는 현실이다.

한국 영화의 미래는 어떠한가. 영화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영화인들의 생계문제다. 대기업 투자 이후 자본은 있어 영화가 많이 생산되지만 그 몫이 영화인들에게 이전보다 더 많이 돌아가는 건 아니다. 투자자만 바뀌었을 뿐 이익분배 시스템이 영화인들에게 유리하게 개선된 점은 없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최저생계도 유지하지 못해 영화산업의 미래는 갑갑하고 불안하다. 현재도 유능한 스태프들이 방송이나 광고 등 다른 영역으로 이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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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영화 현장인력은 경험이 부족한 스태프들로 구성되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산업을 유지하는 필수요소인 노동력에 대한 관리소홀은 결국 붕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비유하자면 한국 영화산업은 ‘사상누각’, 즉 모래 위에 지은 집이어서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극장은 또 어떤가. 멀티플렉스의 운영방식은 철저히 관객을 무시한다. L사 제작영화는 C사 극장에서 푸대접받고, C사 영화는 L사 극장에서 외면당한다. 관객들은 L이든 C든 어느 극장에서든 영화를 보고 싶어하지만 그런 관객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사 영화의 흥행을 위해 그런 전략마저 구사한다. 한 영화의 스크린 독점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것 역시 관객들이 그 영화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많이 상영한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사실은 흥행을 위해 다른 영화를 철거한 것이다. 잘되는 영화를 한 군데라도 더 상영해야 흥행을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의 요구는 극장의 횡포에 의해 무시된다. 이것은 극장문화와 관객문화의 향상에 걸림돌이 된다.

국가는 이런 문제를 수수방관하지 말고 국민의 정서고양을 위해서라도 멀티플렉스 스크린에서 다양한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제도(한 영화당 스크린 수 제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글·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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